안성하_담배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04
오늘 다음 블로거 뉴스의 인기 의제를 봤다.
내 포스팅을 보시는 분은 알겠지만, 여간해서 다음이
제공하는 의제설정을 따라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사안 만큼은
'담배'가 있어서 궁금하기도 하고, 나름 할말도 있다보니
쭈욱 읽어봤다. 명랑통신원이 쓴 <담배피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에서
<담배 끊은 남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주장이 일관되게 요약되어 있다.
나는 비 흡연자다. 담배를 끊은 것이 아니라, 아예 배우질 않았던
케이스고, 술도 아주 조금만 먹는 스타일이라, 담배란 사물, 혹은 이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리 논할만한 자격은 없다. 몸으로 체득된 지식은 없으니까.
그냥 예전부터 다루고 싶었던 작가 안성하의 담배 그림이나 걸어볼까 한다.
안성하_담배_캔버스에 유채_194×88cm_2004
명랑통신원의 주장을 읽다보니 담배가 언제부터인가
웰빙 바람과 더불어 무찌르자 공산당의 취급을 받는다는 식의
80년대식 페미니즘의 시선이 드러나는 부분을 발견한다. 대통령도 거꾸로 가고
이 땅의 페미니즘 담론엔 80년대 독일에서 풍미했던 방식이 여전히 등장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오래 우려먹는다란 말을 하고 싶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명랑통신원은 정치가들, 대통령 때문에 담배를
한대 물고 싶을 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엔 그녀(?) 또한 80년대식으로
복귀한 구태스런 페미니스트에 불과하다.
마약과 같은 취급을 당하는 담배라고 주장하던데
이는 칼럼니스트가 잘못 안것인지, 혹은 흡연 행태에 대한 남/여의 구분을
80년대식의 전투방식으로 나누며 담론적인 물타기를 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마약보다도 중독성이 더 강하다. 이미 임상적인 결과치가 그걸 말해주고 있고 말이다.
안성하_담배_캔버스에 유채_73×73cm×2_2002
안성하는 하이퍼 리얼리즘, 극 사실주의 계열의 그림을 그린다.
그것도 담배꽁초를 참 잘 그린다. 작가가 그려낸 투명한 유리 그릇 속 담배들의
행태는 요지경이다. 꺼멓게 타들어가서 버려지는 것들을 견고하고 투명한 용기 속에 담아
버려져야 할 운명에 처한 것들을 '간직'하고 '담아'낸다.
작가는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회한, 내적인 폭력을 담지할 수 없는
인간의 신체를 유리그릇을 통해 포현했다고 한다. 그만큼 깨지기 쉽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깨끗하게 정화 및 순화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육체가 아니던가.
물론 버려지는 것들은 담배꽁초만 있는게 아니다.
안성하가 그리고자 했던 담배꽁초엔 탁한 우리 안의 기억들과
수많은 감정의 기복들, 상처들이 담겨 있다.
안성하_담배_캔버스에 유채_227.3×109.5cm_2004
담배를 피지 않다보니, 사실 냄새만 맡아도 역겹다.
흡연자들은 말로는 비흡연자 앞에서 양해를 구하고 핀다고 하지만
사회적 양태에서, 그런 양해에 대해, 속내 그대로 피지 말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 관점에서 본다면, 흡연자에 대한 비흡연자의 사회적 약자의 관점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다. 90년대 초 '이프'라는 페미니즘 저널에서
필진으로 있을때, '왜 여자는 담배를 피우면 안되는가?" 류의 글들이 그래도 비교적 공감을
얻었던 적이 있었다. 요즘은? 글쎄다. 사회 전반적으로 혐연권에 대한 인정과
비흡연자에 대한 배려를 우선하기에, 과거의 주장을 줄창 반복했다간
욕 먹기가 우선이다. 그리고 참고로 말해두자면
내가 만났던 여성주의자란 사람들
어디 한번 내 앞에서 양해 구하고 담배를 피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이름을 한번 대볼까? 툭하면 텔레비전에 얼굴 잘 비치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4자 짜리 이름가진 친구들 말이다.
안성하_담배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02
안성하의 그림을 볼 때마다 내 육체의 연약함과 투명성에 대해
사유하고 반성해 본다. 그만큼 내 안에 맑고 깨끗한 것만 담아도 쉽지 않은 세상에
그저 세상이 담배를 피우게끔 한다는 식의 '자기 합리화'는 하고 싶지 않다.
담배 피우지 않아도, 세상과 대면하고 하하 웃을 수 있고 심인성 습관에
불과한 흡연이 남과 여를 구분해서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세상이
점점 더 깨달아 가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
가슴속 밑바닥 응어리진 한숨을 연기로 뱉어
내 부서진 삶에 완성되지 않은 생의 설계도를 그려보는 것......
담배를 피는 이들은 끽연의 아름다움을 참 멋진 수사를 동원해 포장한다.
난 그런 수사를 썩 좋아하지 않기에 우선 반대표를 그림을 통해 던져본다.
안성하_담배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04
담배피는 여자가 싫다라는 말을
그저 가부장적인 발언으로, 혹은 '여자가 어디서'란 말로
공격해서 '흡연'의 정당성을 키우던 시절은 갔다.....말 그대로 이제는
안먹혀든다. 문제는 페미니스트들은 여전히 이중잣대를 운운하며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고
난 담배피는 여자도/남자도 싫다. 단호하게 말한다. 내가 안피기 때문이고
이걸 이기주의라고 말하는 자들이야 말로 정말 '나쁜'인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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