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일상의 황홀

범퍼카에 대한 추억-놀이동산을 걷는 시간

패션 큐레이터 2008. 11. 1. 23:52

 2008 년 11월 1일 토요일 날씨 흐림과 약간의 여우비

 

 

누구에게나 놀이동산에 대한 기억은

어린시절의 추억에서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어린이날이면, 아빠의 무등을 타거나, 혹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갔던 곳. 핑크빛 솜사탕을 사달라고 떼를 쓸때마다, 엄마는 옷에 뭍는다며

잘 사주시지 않았습니다. 기억속에 남는 놀이공원의 탈것이란

역시 회전목마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요.

 

6학년 때였나, 용인자연농원이란 곳을

처음 갔었습니다. 지방에 살고 있었던 관계로, 학교를 빼고

서울에 출장온 아버지를 따라 간 것인데, 그때 바이킹과 후룸라이드란 것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올 때였습니다. 회전목마나 청룡열차가 놀이기구의

정점인줄 알던 시절, 두개의 기구는 유독 내겐 무서웠습니다.

 

사실 제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범퍼카였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실물 자동차를 몰수 없는 욕망을 채워주는

이 놀이기구는 서로가 살을 부대끼며, 놀라움과 아이들의 고함소리로 채워지는

신기한 놀이기구. 서양에선 이미 1920년대에 이 놀이기구가 나왔다지요.

 

흉내낼수 없는 상황을 놀이에 접목시킨 이 범퍼카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듯 합니다만

최근에 등장한 화려한 탈것들에 비해, 영 인기가 시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용인자연농원에 처음 놀러갔을 때, 부모님과 함께 탄 것이 바로

이 전망차 입니다. 어느 놀이기구를 가도 이건 다 있지요. 롯데월드는 천정위에

풍선차 모양을 달아서 움직일수 해놓았고, 이번 대전의 꿈돌이 랜드에는 폴라리스 타워는

어린시절 탓던 전망차의 원형을 가장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전망이 탁 트이게 보인다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건지, 그때는 썩 내키지 않았고, 스릴이라고 찾아볼래야 볼수 없는

느려터진 전망차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죠.

 

 

후룸라이드 타러 가는 시간

초등학교 6학년때, 소년중앙에 실린 광고를 보며

이런 물건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통나무 배를 타고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그런 놀이기구가 있다고 아버지에게 이야기 했었지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보는 후룸라이드

놀이기구의 특성상 옷의 상당부분을 적셔야 하는데다

멀미가 심했던 우리 엄마는 놀이기구를 탄 후

영 마뜩찮은 표정으로 별 것 아닌걸 타러 오자고 그 성화였냐 물으셨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여전히 놀이동산에 가면 즐겁습니다.

10년도 넘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 하늘 아래, 연신 웃음을

날리며 고함을 지르는 여학생들의 표정을 읽는 일은 즐겁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요즘 여중생들의 노래는 빅뱅의 노래로

바뀌었다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겠지요.

 

 

청룡열차의 추억을 뒤로 하고 롤러 코스터란 이름의

탈것이 등장한 것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시간이 훨씬 지나서 였지요.

당시 미국에서 공부를 했던 사촌형에게 디즈니랜드에 가면 엄청나게 오랜동안

탈수 있는 청룡열차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360도 회전을 한다길래

'세상에 그런게 어디에 있냐?"며 되 묻곤 했습니다.

 

 

롤러 코스터의 길을 자세히 보면 문득 엄숙해집니다.

상승과 하강, 그리고 회전, 무엇보다 이 세가지 국면이 반복되고

정점에 이르렀다가 마지막에 속도를 늦추며 제 자리로 돌아오지요. 그 궤적은

하나같이 기하학적인 선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인생을 표현합니다. 

 

녹슨 바람이 허리를 감고 돌아
지금은 혼자의 기차놀이로 버거운 세상입니다.
훌쩍 커버린 소꿉장난 친구들은 뿔뿔이 헤어져서
달리고 싶어도 혼자여서 달릴 수 없는 기차놀이

그 단단한 새끼줄을 잡았던 손은 이제 어른입니다.
아직 남은 세월의 오르막길을 거머쥐고
씩씩하게 달리고 싶은 외로운 손입니다

 

박종영의 시 중에서 마지막

부분을 읽다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맙니다.

혼자만의 기차놀이로 힘든 세상, 어른이 되고서, 단지 즐거움만을 위해

속도와 휘도와, 순정품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다 흘러갔음을 깨닫게 될때, 유년의 시간,

놀이기구를 보는 응시의 빛깔엔 만추의 우수가 접어듭니다.

 

 

어느 가을 날, 놀이동산에서 보낸 몇 시간이

옛 추억의 기억을 되살립니다. 솔바람이 섞여부는 어느 가을날

황금빛 노을의 시간이 다가올때, 지나간 시간의 지층을 한꺼풀씩 캐는 광부처럼

바지런히, 나를 대신해, 유년의 뜨락을 채우는 아이들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아이들이 곱고, 가을 햇살의 양이 곱게 쏟아지는 날, 마음에 널어둔

지린 기억의 지도와 그 빗금 사이 골목길엔 이미 예전으로 돌아간 내가 있습니다.

 

그 기억속으로 느리게 거닐게 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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