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8일 화요일 날씨 : 맑음
이번에 새로운 폴더를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일상의 황홀'입니다. 이 폴더를 만든 계기는 그저 하루하루 빼먹지 않고 일기를 쓰기 위해서 입니다.
문화의 제국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이 그날 본 문화 이벤트나 책 소개, 혹은 영화 리뷰, 전시회 풍경을 쓰는 일이 주가 되다 보니 그저 내밀하게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작은 일상이지만, 행복했던 일을 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 블로그를 10년 전에 시작했을 때, 저는 이 곳이 온라인 일기장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화의 제국>이란 무거운 테마를 다루는 공간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충실히 살아갈때, 그 속에서 비루함을 던져버리고, 우리가 시선을 달리하면 찾을 수 있는 그런 일상의 황홀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황홀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황홀'이라고요. 최근 주부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인구가 늘고, 베르테르 신드롬이 한국사회를 강타했습니다.
저도 압니다. 지금 살아가는 이 시간이, 너무 비루하고 버겹고 힘든 연속의 나날인 것을. 그렇다고 한숨만 쉬면 살아가기엔 너무 아름답다고 감히 말해볼랍니다.
시나브로 햇살에 속살을 쬐이며 붉게 물들어가는 잎파리 하나에도 생의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또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이 양반아.....댁이야 답답한거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이니 그렇지 우리한텐 너무 힘들다.....요즘 살아가는게 말이여" 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 저 또한 사면초과입니다. 글을 쓰는 시간은 29일 새벽 1시 40분. 잠을 자지 못합니다.
내일아침까지 라디오 방송 원고를 써야 합니다. <패션과 미술>을 주제로 패션잡지에 기고할 글에, 두번째 책 원고에. 살인적인 스케줄과 원고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행복해야 할 글쓰기가 일종의 의무감이 되는 것도 썩 마뜩찮은 일입니다.
게다가 회사 사정이 좋질 않습니다. 물론 아주 힘든 건 아니지만 품목의 특성상 시즌을 많이 타는 것들이 많고요. 최근 미술시장또한 매우 침체기를 겪고 있어서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은 결국은 성실의 문제이고, 마음의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그날의 날씨와 일자가 적힌 일기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오늘 오후에 일을 보고, 예술의 전당에 갔습니다. 지금 한가람 미술관은 11월 1일 부터 시작될 전시 준비로 부산했고, 디자인 미술관에선 가구와 의자를 디자인했던 거장 찰스 임스의 사진과 어록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어록들이 좋습니다. 그는 사진도 참 잘 찍는 디자이너 였나 봅니다. 그에게 일상의 황홀이, 사진으로 포착되는 순간은 디자인을 위한 영감으로 변했다지요. 그의 어록중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산과 바다, 인간과 기계, 예술의 각 분야와 그 속에 숨쉬는 오브제, 중요한 것은 연결의 질이다. 그것이 우리의 창조적 삶을 좌우하는 시금석이다"
소란스럽지 않은 나무들의 숭고한 의식이 거행되는 가을
저마다 한장 두장 단풍잎을 떨구어 바닥에 눕히는 모습이 숭고하다
한 여름 땡볕과 거센 비바람에 흔들리는 아픔을 겪고서 빚어낸 고운 빛깔에도
스스로 수행의 부족함을 느끼는지 미련없이 털어낸다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움도 하나의 겉치레에 불과한것을 입증하듯
다시 찬 바람앞에 빈 몸으로 안거준비를 한다 부질없는 욕심으로 살아온 세월이
부끄러워 나무보다 작아진 내 모습으로 가을이면 세상앞에 다시서는
나무들의 조용한 다짐을 듣는다.
한상숙의 시 <떨어지는 단풍잎을 보면서>를 올립니다.
예술의 전당에 기운을 써버린 잎파리들이, 가을의 소잔한
햇살아래, 뜨락아래로 낙하하고 있었습니다. 떨어지는 잎파리 하나에도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연결성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연결이라고 해서
흔히 아무하고나 다 이어지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엔 선별과
집중, 그리고 곰삭임의 시간이 필요하지요.
가을 햇볕과 햇살, 햇빛......언제부터인가
빛의 양들로 구분하기 시작한 단어의 차이가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예술의 전당 쉼터 자리에 감나무가 있는지는 오늘 알았네요. 짙은 오렌지색으로
환하게 달려있는 과실들을 보니 자연 속 나무도, 순정품의 빗물과
햇빛과 투명한 바람의 흔적을 업고 달래며, 껴안아야만 서로의 분자들이 연결된다는 걸
또 그렇게 배웁니다. 이렇게 연결성의 질이 과실의 질을 만들어내지요.
전시 준비로 부산한 미술관, 작품을 걸고 있는 작가들을 보고 왔습니다.
사실 전시작가 중 한명의 작품을 이번 두번째 책에 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아쉽게도 실제 작품을 보니, 글로 옮겨 내기가 싫어졌습니다. 무겁고 어두웠어요.
거기에다 시니컬한 느낌까지 들어서 마음 미술관과는
거리가 멀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여러분과 저는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요.
그 연결성의 질은 과연 어떤것일지......자문하고 싶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이곳을 지키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부족 투성이의 블로거일 뿐이죠.
그래도 저는 여러분이 일상의 황홀을 함께 느껴갈, 만추의 친구가
되어주길 이렇게 늦은 새벽에 불러봅니다. 초혼을 부르는 마음으로요.
영혼의 밥한끼.....꼭 같이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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