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책 읽기의 황홀

당신은 어떤 집에 사세요?-좋은 집의 조건 12가지

패션 큐레이터 2008. 8. 21. 20:44

 

 오늘 무사히 라디오 방송을 마쳤다.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편해진다. 오늘 약속한대로 <왜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질까>와 <집을 생각한다>두권을 읽었다. 인간과 동물 모두 주거지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집에 대한 철학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 아쉽게도 땅값의 등락에만 관심이 있는 이 땅은 주택에 대한 철학이 부재하는 사회다.

 

하우스와 Home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전자는 물리적 주택을 후자는 그 곳에서 살아가는 정서적 실체를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후자가 중요하긴 하지만 전자 또한 무시해선 안된다. 우리는 어떤 물리적인 집을 땅에 짓고 있는가? 일본의 주택 설계 전문가인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집을 생각한다>를 읽었다. 한국에는 얼마나 많은 아파트 브랜드가 있나? 그런데 그 브랜드들은 이미지만 있고, 요소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다.

 

꿈에그린, 래미안, E-편한세상, 베라체, 경희궁의 아침, 아이파크, 힐 스테이트, 어울림, 미소지움, 푸르지오, 자이......물론 브랜드 네이밍을 통해 집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었겠지만, 꿈에그린 아파트에 들어가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가기엔, 아파트 각자가 실제로 보여주는 집에 대한 철학과 요소는 아예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30년동안 주택만을 주로 설계하면서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 어떤 요소를 갖추고 있을 때, 좋은 집이라 할수 있는가에 대해 오랜동안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어린시절 읽었던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서 고아인 주디가 친구 샐리의 집에 가서 느낀 집에 대한 감성이야 말로 좋은 집의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것이 아주 편안하고 포근하며 나윽합니다. 저는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각각의 방을 꾸며놓은 모양이나 벽 장식품을 보면서 황홀해 하고 있어요. 이곳은 아이를 키우기에 훌륭한 집이에요. 숨바꼭질하기에 딱 좋은 컴컴한 구석도 있고 팝콘을 만들 수 있는 벽난로에다가 지루하게 비가 오는 날 뛰어놀기 좋은 다락방도 있어요. 게다가 계단에는 미끈하고 촉감 좋은 손잡이 난간도 있답니다. 손잡이를 잡고 내려가다 보면 난간 끝부분에는 나도 모르게 만져보고 싶은 둥근 빵을 눌러놓은 모양의 나무장식도 있고요. 아 맞다. 게다가 햇빛이 쏙아져 들어오는 엄청나게 넓은 주방도 있어요" 다소 길게 인용을 해보았다. 저자는 소설의 묘사 속 분위기의 집이야 말로 최고의 집의 요소들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12가지 요소를 추출한다. 좋은 집을 구성하는 12가지 요소다.

  • 풍경-풍경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집
  • 원룸-방 하나하나에 건축가의 고심이 배어나오는 집
  • 편안함-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안락한 공간
  • 불-불과 친밀하게 마주할 수 있는 공간
  • 재미-특이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재미와 여유
  • 주방과 식탁-음식을 만들어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할 수 있는 곳
  • 아이들-아이들의 꿈이 커가는 집
  • 감촉-손에서 자라나는 애착이 배어나와 가족과 하나가 된다는 느낌을 발산할 수 있는 그런 집
  • 가구-적당한 격식, 그러나 효과적인 장식
  • 세월-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집
  • 빛-인공과 자연광이 조화롭게 어울릴 것

물론 성냥갑같은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놓여진 서울에서 이런 집의 철학을 요소를 이야기 한다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든 인테리어를 하거나, 개보수를 할때 한번쯤 고려해 보다는 뜻으로 썼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럽 출장을 다니다, 우연하게 고객의 집에 갈때마다, 단독의 경우, 화로가 있는 집이 그렇게도 부러웠다. 따스한 불의 온기가 나무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조용하게 우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게다가 목재로 만든 계단의 난간을 손으로 만지고 있으면, 그 집을 스쳐 지나간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느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파트에 대한 컬트만 있고,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촉감이 사라지는 시대는 이미 집과 주택에 대한 철학을 포기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지가를 모두 총합하면 캐나다를 37번 사고 남는다는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궁금했다. 그럼 우리나라를 팔아서 캐나다를 사려면 가능할까? 사람들이 잘도 팔겠다. 신도시 개발, 난개발로 얼룩진 이 땅의 도시계획과 그 속에서 성냥갑처럼 지어진 이 땅의 수많은 아파트들이 우리 삶의 성전이 되는 현실은 사실 매우 가슴 아프다.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집을 만드는 것. 이것은 한국이나 일본처럼 지가의 변동이 심하고 주택에 대한 의식과 가치관이 트랜드를 �는 사회에선 상당히 어려운 일인 건 인정한다.

 

집의 수명은 몇년인가? 라는 질문을 저자는 자주 받는 단다. 그때마다 어떤 것으로 짓든, 부실공사만 아니면 목조가옥일지라도 100년은 간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집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사기술이 좋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공간을 계획할 때, 이미 오래 살 집이란 생각을 하고 집을 짓는 다는 것이다. 그저 재건축 허가 나오면 집값이 올라가는 그런 마인드론 사실 이런 집을 짓기란 불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건축 컨셉 보다, 실제 거주자를 우선해 생활과 밀착될수 있도록 설계를 배려하면 오래 살 집을 지을 수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집의 외형에만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집의 소재를 생각하지 않아도 문제가 크다고 지적한다. 시간이 갈수록 멋이 깊어지는 재료가 좋다.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애정이 깊어지는 소재를 저자는 권하고 있다.

 

이제 결혼을 하면 나 또한 집을 얻을 것이다. 집과 가정은 다르면서도 같다. 외형과 내면의 또 다른 이름이니까. 두 가지는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한에서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 그게 바로 내가 집에 대해 갖는 철학이다. 이 책은 내게 그런 생각의 방식들을 바꾸어 보라고 부드럽게 권하고 있는 책이다. 라디오에서 이 책을 소개하면서도 그런 자신감 같은 것이 들었다. 정말 일독을 하고, 집에 대한 철학부터 세워보자고.......

 

우리집이라는 말에선 /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 "우리집에 놀러 오세요!"라는 말은 음악처럼 즐겁다 / 멀리 밖에 나와 우리집을 바라보면 / 잠시 낯설다가 / 오래 그리운 마음 가족들과 함께한 웃음과 눈물 / 서로 못마땅해서 언성을 높이던 / 부끄러운 순간까지 그리워 눈물 글썽이는 마음 / 그래서 집은 고향이 되나 보다. 헤어지고 싶다가도 / 헤어지고 나면 / 금방 보고 싶은 사람들 / 주고받은 상처를 / 서로 다시 위로하며 그래, 그래 고개 끄덕이다 / 따뜻한 눈길로 하나 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 언제라도 문을 열어 반기는 우리집 우리집 / 우리집이라는 말에선 늘 장작 타는 냄새가 난다 / 고마움 가득한 / 송진 향기가 난다

 

이해인의 시 <우리집>을 읽다가 그만 울어버렸다. 내게 집에 관해 쌓은 죄가 많은 탓이리라.......나도 언젠가는 우리집을 갖게 되겠지. 그때 난 어떤 아빠와 남편이 되어 있을까? 그 집에서 어떤 존재로 남을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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