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Education/엄마는 나의 멘토

배냇 저고리에 홀리다-내 아기를 위한 옷

패션 큐레이터 2008. 8. 20. 10:54

 

S#1-좋은 건 모두 너에게 줄게

 

나는 한복의 선을 좋아한다. 이영희 선생님의 한복도 좋고, 이효재 선생님의 작품도 좋다. 갤러리 차이의 김영진 실장님이 만드는 현대한복도 좋아한다. 김 실장님의 경우는 매듭과 규방공예 작품들을 컬렉터로서 수집하고 계신터라, 그녀의 갤러리에 갈때마다 눈이 호사를 누린다.

 

생각해 보면 내가 만난 한복 디자이너들은 다들 미인이다. 어찌 그리 단아한 느낌을 주는 분들이 많은지, 이효재 선생님은 키가 훤칠하셔서 서구 미인같고, 김영진 실장님은 쪽 머리를 하고 있으면 천상 여자같다는 느낌을 준다.

 

하후 상박의 전통적인 한복의 선을 보고 있으면, 빅토리아 시대의의상만큼, 고혹적이고, 여성의 신체를 잘 드러내게 디자인한 옷이 있나? 하고 물어보고 싶다. 한국의 한복은 자세히 뜯어보면 매우 에로틱하다. 은근한 성적매력을 풍긴다는 뜻이다.

 

성인여성의 한복만 고운게 아니다. 아기가 태어나 3-7일이 지난 후 목욕을 시키고 처음 입힌 배냇 저고리에도 귀여움과 더불어 따스한 정이 뚝뚝 묻어나온다. 아이 아이들의 옛 전통 한복, 배넷 저고리에는 아이의 삶 전체를 관류하는, 아니 아이와 교통하고 관계를 맺는 엄마의 질긴 정성이 배어나온다.

 

왜 배냇 저고리라 하는지 아시는 가? 엄마 배(뱃속)에서 내어질때 입는 옷이라 해서 배냇 저고리라 한다. 소매를 길게 하고 깃과 섭(앞이 완전히 트인 웃옷에서 앞자락의 옷깃 아랫부분)을 달지 않는다. 왜 일까? 궁금하지 않은가? 그만큼 배넷 저고리를 입는 동안은 아이의 삶이 불안정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00일 잔치가 왜 있겠나? 그만큼 그 전에 죽는 아이들의 비율이 높다는 뜻이기에, 그때까지를 버티면, 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리라. 여기에 아기의 수명이 실처럼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슴을 한차례 둘러 줄 수 있도록 길게 실고름을 달아주었다.

 

 

오늘 <좋은 건 모두 너에게 줄게>란 베냇 저고리 전시회에

잠시 들렀다. 저번 코엑스에서 열린 한 스타일 박람회에서 어떤 부스에 갔다가

전시 초대장을 받았다. 그땐 잘 모르고 넘어갔다가, 시간을 내어 한번 찾아간 것이다.

 

갤러리를 찾아다니는 일에 이골이 날법도 할 텐데

약간 서늘한 기운이 도는 인사동의 오후 미풍을 맞으며 익숙하지 않은

이름의 갤러리를 찾아갔다.  생긴지 4개월 밖에 안된 작은 갤러리지만, 스튜디오겸

전시회장을 겸하고 있었다.

 

 

배냇 저고리를 입혔다가 100일이 되면 기념으로 100조각으로

만든 저고리를 입힌다고 한다. 옅은 분홍과 라벤더 빛깔이 은은하게 퀼트처럼 누벼져서

미려한 느낌이 더욱 강하다.

 

 

남아에겐 청색, 여아에겐 보통 분홍색을 입힌다.

타래버선을 응용해 만든 발싸개가 곱다. 100개의 조각을 누벼 만든

명주 이불도 느낌이 따스하다.

 

 

 원래 배냇 저고리는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것이

옳은데, 사실 요즘 누가 그리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처럼 전용함을 만들어 보관하는 것이 의례다. 하긴 인터넷 사연들을 보니

대학시험 보러 갈때, 이 배냇 저고리를 꺼내 부적처럼 가져가라고 쥐어주는

어머니들이 꽤 되는 모양이다.

 

 

보통 배냇 저고리는 한달 정도 입힌다.

왼쪽에 보이는 건, 속싸개와 턱받이다. 출산과 관련된 문화적인 내용들

그리고 이것이 잉태하는 의복 문화는 동서양이 상당부분 비슷하다. 하긴 동일한 경험에

독특한 반응이 있을리 만무하지 않은가. 요즘 유아복은 면도 좋지만

오가닉이나 한지, 대나무를 이용해서 만든 걸 쓴다. 아이의 건강에 더 좋기 때문이다.

 

 

주인장이 테디베어를 좋아하는 지

인형에 한복을 많이 입혀놓았다. 나 보다 한살 어린데, 참 곱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한복을 입고 쪽을 진 모습과 편안한 옷차림의 느낌이 다른 사람은 처음이다

내 또래의 사람들 중에 한복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말로는 한류를 칭송하고, 우리의 것과 스타일을 이야기 하지만

정작, 깊게 들어가면 언제 그랬댜는 듯, 멀뚱 쳐다보는게 한 스타일이다.

물론 사람들은 그런다. "한복 좋지요. 그런데 너무 비싸요"

미안하지만 이건 주객이 전도된 이야기다.

 

그만큼 수요가 줄어들면서 한복산업이 될수 있었던 것이

소규모의 공방이나 옷집 정도로 줄어들면서, 원가 경쟁력을 잃은 것이라고 봐야한다.

  

아기가 태어나 입히는 배냇 저고리는 보통 3벌 정도는 있어야 좋다. 아기가 태어나면, 토하기도 하고 자주 갈아입혀야 하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에서 퇴원할 때 한벌 입기 때문에 도합 4벌 정도로 한달을 버티는 거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에서도 아동복의 역사를 썼지만, 사실 서양 유아복의 역사에 대해서도 쓰고 싶었다. 원고가 있었는데, 아쉽게 편집이 되었고, 유아복과 아동복 사이의 연관성이랄까, 연결고리를 만들어 독자분들에게 보여드리지 못해 송구하다.

 

우연하게 찾아간 전시회지만, 주인장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눈매가 서글하고, 쪽진 모습이 참 고운 사람이다. 한복 작업하는 걸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 이런 디자이너 참 만나기 쉽지 않은데, 기분 좋게 이야기 하고 나왔다. 다음에 규방공예전을 하게 되면 찾아가 볼 생각이다.

 

잠든 아기의 손톱을 깎으며
창 밖에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본다
별들도 젖어서 눈송이로 내리고 아기의 손등 위로 내 입술을 포개어
나는 깎여져나간 아기의 눈송이같이 아름다운 손톱이 된다

아가야 창 밖에 함박눈 내리는 날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린다
흘러간 일에는 마음을 묶지 말고 불행을 사랑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했다
날마다 내 작은 불행으로 남을 괴롭히지는 않아야 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들이
서로 고요한 용기로써 사랑하지 못하는 오늘밤에는 아가야
숨은 저녁해의 긴 그림자를 이끌고 예수가 눈 내리는 미아리고개를 넘어간다

아가야 내 모든 사랑의 마지막 앞에서 너의 자유로운 삶의 손톱을 깎으며
가난한 아버지의 추억을 주지 못하고 아버지가 된 것을 가장 먼저 슬퍼해보지만
나는 지금 너의 맑은 손톱을 사랑으로 깎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정호승의 <아기의 손톱을 깍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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