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아침고요수목원에서-꽃에게 대화의 방법을 묻다

패션 큐레이터 2008. 7. 19. 16:53

 

 

어제 경기도 청평에 있는 아침고요 수목원에 갔습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휴일을 쪼개어 쓰고 있지요. 해외만 주로 다니다 보니

내 삶의 주변부들, 작은 풍경을 발견하는데 익숙하지 못한

저이기도 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로 딱 1시간 5분 걸리더군요.

집에서 강남으로 출근하는 지하철 소요시간보다 적게 걸리는 곳에

이렇게 예쁜 정원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아침고요수목원은 예전 영화 <편지>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황동규의 행복한 편지란 시가 떠오르고, 처음 이 영화를 보았던 신사동 뤼미에르 극장이 떠오르고

그 옆에 있던 우노필름(현 사이더스)에서 인턴십을 막 시작하던 때였지요.

꼼꼼히 보았던 영화였습니다. 그때 제 기억이 맞다면 남자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죽는

스토리구조를 가진 영화가 3편이 더 나왔습니다.

 

 

아침 고요 수목원의 7월엔 산수국이 한창입니다.

하늘빛을 담은 수국의 청초한 잎파리를 따다 쭈욱 누르면

하늘의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올것 같습니다.

 

 

입구를 지나는 길엔, 다양한 꽃들이 종류별로 지천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습니다.

 

  

발을 담그면 금방 발그레하게 변할 만큼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 그 사이로 설치된 다리를 건너

분재정원과 난 정원을 지납니다.

 

 

점심시간에는 허브 꽃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내 삶의 주변부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을 덮어 비벼봅니다.

 

 

꽃의 향기와 빛깔이 알알히 윤기를 더하는 밥에 베어나고, 아주 작은 양의

장만을 사용해서도 그 맛이 일품이지요.  식후에는 시가 있는 산책길을 거닐며

시인들의 글과 나무의 빛깔을 대조해보면 읽으면 좋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한국 정원과 천리향의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동양 3국의 정원 문화를 살펴보면, 그 속에 배어나는 민족의 정서와 감수성,

자연을 해석하고 배치하는 그 나라 특유의 철학을 할수 있습니다.

 

울타리로서의 정원에는 자연을 내 집의 한 부분으로 편입시키려는

인간의 욕망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예전 담양의 소쇄원을 간 적이 있습니다.

자글자글하게 끓는 햇살과 깨끗함, 성근 숲의 어둑시근한 빛들이

푸른 물감처럼 환하게 퍼지며 초록의 양명한 빛들과 조화를 이룹니다.

 

 

 유럽의 정원에는 철저한 위계질서가 있습니다. 베르사유 궁정의

정원을 보시면 이뜻을 알게 됩니다. 기하학적 형태를 띠는데, 이는 새로운 땅을 정복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치수를 했던 서유럽인들의 정서가 배어나오기 때문이지요.

원래 기하학 자체가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고 정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수식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정원은 자연의 거대함을 그대로 옮겨놓는 일에

치중합니다. 자연을 그대로 내 집의 일부로 옮겨와, 이를 대상으로 명상하고

시상의 원천으로 삼는 일이 바로 중국 정원의 특징입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정원의 모든 요소들, 바위를 배치하거나

그림자의 형태, 식물과 꽃의 상호조화와 관계성 등 다양한 부분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특히 바위의 배치, 바위로 둘러싸인 곳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신이 깃들은 공간을 미화시키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나무와 토양, 물의 빛깔까지도

인위적으로 변화시키고 분재를 이용해 배경을 바꾸는 등의 노력을 하지요.

 

 

이에 반해 한국의 정원은 항상 여백의 미가 존재합니다.

비대칭성, 조화미와 부조화의 미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것. 이것이

한국적 정원의 특성입니다. 천년향에서 볼수 있는 오래된 향나무의 외피를 보면

주변을 둘러싼 초록과 자주빛 식물들과 함께 여린 속살을 드러내며

오랜 세월을 버텨온 우리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위의 계단은 선녀탕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물이 맑고 차갑습니다. 오랜동안 발을 담그며 오전 내내 살갖을

투과한 햇살의 열기를 식혔습니다.

 

 

꽃의 빛깔들이 이중배색으로 이루어져 있네요.

 

 

무슨 꽃일까 / 궁금해 불쑥 다가갔더니
환한 빛의 덩어리네 / 색색의 꽃잎은 어디로 갔을까 했는데
눈에는 그림으로 /귀에는 말씀으로 들어와 박혔네
꽃 피는 일이란 / 지난 계절의 상처에 / 절경 그려넣는 일이네 / 불립문자 전해주는 일이네

사월의 꽃 피는 것들은 / 무엇 하나씩  감춰가지고 나오는 것이라고
아직 꽃 떨어지지 않은 동백은 / 그날의 피처럼 붉어서 직유네
매화는 가엾은 마음이라서 은유네 / 산수유는 그 열매가 사랑이라서 환유고
진달래는 잃어버린 사람이라 의인이고 / 복사꽃은 죽은 넋이 찾아왔으니 상징이네


개나리를 반어라면 한다면 / 벚꽃은 역설이라고 해도 될까
봄에 핀 꽃 하나마다 / 절창의 시 한 수 / 불후의 그림 한 폭 담겼으니
사월에는 꽃에게 다가가 / 저들의 생을 찬찬히 읽어보아야겠네

 

김종제의 <꽃의 화법> 전문

 

 

산책을 마치고선 원두막에서 한줌 가벼운 오침을 해도 좋을듯 합니다.

저도 한 30분 정도 잤는데 피곤이 쉽게 풀렸습니다.

 

 

 꽃에 취한 날엔, 그저 환한 하늘만 바라보기 보다는

꽃을 창조한 이를 통해 우리가 찾아야 하는 화법의 형태, 조화와 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라 믿어보게 됩니다.

 

요즘처럼 시대와의 불화가 강할 때일수록

여린 꽃잎파리 하나하나에 배어나는 자연과의 소통방식을

자연스레, 자연 속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의 화법(花法)이 곧 대화의 화법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오후였네요. 행복한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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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고요수목원
주소 경기 가평군 상면 행현리 산 255 아침고요 수목원
설명 대한민국 대표 정원 아침고요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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