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종일 꽃과 허브, 향기속에 취한 날이었습니다.
제 블로그 독자인 강처럼님이 오랜만에 한국에 오셔서 친구분들과 함께 했습니다.
김포 마송에서 원예작업을 하시는 블로거 불목하니님이 운영하는
멋스런 식당에 갔습니다. 식당의 이름도 그곳에서 정성스레
키워지는 꽃들의 운명마냥, 참 단아합니다. <향기로운 세상>입니다.
커다란 돔형의 단지 안에는
영혼의 정원을 키우는 손으로 하나하나 세겨낸 다양한 수종의
꽃들이 자신만의 소우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불목하니님은 인도와 네팔을 오랜동안 여행하시고
그 기록을 블로그에 남기셨는데요. 저도 이 여행기를 읽다가 독자가 되었답니다.
노자 읽기를 즐겨하고, 인도에 대한 그리움도 있고
사랑하는 꽃의 운명을 읽을 줄 아는 멋진 블로거시기도 하지요.
요리를 너무 잘하시는 사모님 덕에 청신한 재료로 채워진 한방오리를
먹었더니 하루 종일 속도 마음도 든든했답니다. 더구나 약재를 써서 우려낸
국물이 깔끔하게 입속에 젖어들더군요.
꽃들의 고요.....그 속을 산책합니다.
수종마다 피워내는 빛깔과 무늬를 자세히 보고
어떤 손맛을 통해 키워졌는지 타진해 보기도 하지요.
마치 비밀의 정원 속을 걷는 것 같아,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식사 후, 차를 타고 봉선사에 들렀습니다.
서기 969년 고려 광종 20년에 법인 국사께서 창건한 운악사를
모태로 하는 봉선사에서, 연꽃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연못 위에 띄워놓은 종이 연꽃들의 색깔이 곱더군요.
날씨가 후덥지근 했지만 입구에서
맑은 약수 한사발 들이키니 몸의 감각들이 새롭고
깨어나는 것 같아 힘이 났습니다. 사찰의 주변과 풍경을 담았습니다.
춘원 이광수가 머물며 집필을 했고, 가수 조용필씨가 비밀결혼을 했던 곳이라고
함께 했던 지인께서 알려주시더군요.
널브러진 연못과 그 위에 찬연하게 짙은 초록빛 물을 토해내는
연꽃마당에 섰습니다. 온통 연꽃 향기로 가득하며 제 코를 간지럽히더군요.
적요한 향기가 폐부 속 허튼 생각과 울렁거림을 삼켜버렸습니다.
물에 젖지 않는 둥그런 잎사귀, 방사형으로 자신의 기운을 뻣는
잎맥, 단 한송이의 연꽃을 생성하는 꽃대는 아무에게나 미소짓지 않는
도도한 여인의 기품을 닮았습니다. 길게 뻣은 꽃대궁에는 썩은 물에서도
그 아취와 정결함을 간직하는 부처의 마음이 깃들이 있습니다.
아쉽게 여우비가 자꾸 내려 �은 물 안개가 주변에 피고
구름이 사선으로 내리쬐는 햇살의 입자를 가로막은 탓에, 낮은 색온도로 인해
그 고운 빛깔 곱게 프레임에 담아보지 못했습니다.
연꽃무늬를 가리켜 연화문이라 하지요.
우리 옛 조상들의 토기에는 이 연꽃무늬가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갑니다. 연꽃을 보고 있노라니, 어디선가 시원한 미풍이 불어옵니다.
16엽의 연꽃 잎파리, 그 표면에 작은 긴장을 일으키며
떨림과 함께 살포시 고개를 돌리는 여인의 뒤태가 보입니다.
바람은 여인의 옷을 벗기지 못하고, 그저 적멸하고 맙니다. 연꽃과 바람의 긴장이
마치 연주가 끝나면 사라지는 음표의 혼처럼, 자연사를 해버리고 말지요.
가야금의 현처럼 여린 잎파리의 속살을
어루만지는 바람 앞에서 흔들릴 지언정, 당당하게
수표위에 떠 있는 우윳빛 살결, 연꽃의 무늬는 바로 흔들림없이
담담한 우리 내 삶의 희망을 닮았습니다.
블로그란 공간을 통해 참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제 경우엔 특히 블로그 독자분들이 나이가 상당하신 분들이 많아서
만남을 주저하거나, 만나도 눈치를 보게 될까 많이 망설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에선 꽃이 핀다고 하지요.
온라인이란 이 공간의 경계에서 만나는 인간의 만남에도
기실 똑같은 무늬의 꽃이 피는 것 같습니다. 더 자연스레 소통하게 되고
한번쯤 따스한 글도 남길수 있고, 안부를 물을수 있으니 더욱 좋지요.
이런날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기가 돌지 않는 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르는 오후였습니다.
연꽃무늬 속에 아로새겨진 사람과 사람의
향이 제 마음을 감싸고 돕니다.
행복한 한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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