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러시아 국립 미술관에서-놋뱀의 공포와 만나다

패션 큐레이터 2008. 4. 25. 01:38

 

아주 오랜만에 러시아 여행기를 올립니다.

봄이 되면서 부터 겨울 풍경을 올리는 것이 영 마뜩치 않아서

포스팅 하지 않았었는데, 독자분들이 러시아 여행기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 봄이 가기전에 마무리 해달라 하시네요.

 

이번에 러시아 여행기는 잡지사 한곳과 또 다른 저널 한곳에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쁜 일이고, 여러분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이루어진 일이라 할수 있을 겁니다.

 

사실 러시아 여행기, 그 중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기억을

써내려 가려면 아직까지도 10회 이상을 써야 하는데, 되집어 보니 모스크바에서

방문했던 두곳의 미술관도 다루질 않고 넘어왔습니다.

우선 오늘 러시아 국립 미술관에 대해서 다룬 후에 천천히

러시아의 4대 미술관에 대해서 작품과 함께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러시아 국립 미술관에 3번을 갔었습니다.

우선 Cloak Room에서 코트를 벗고 입구에 있는 샵의 모습이에요.

여기서 러시아 국립미술관 가이드 한권을 사서 돌아다닙니다.

저는 습관적으로 전시를 볼때, 전시 전에 도록을 사서 우선 어느 정도 읽어본 후에

본 전시를 보러 갑니다. 그래야 그림을 보다가 궁금한게 있으면 찾아볼수도 있고

더 생각의 여지를 많이 만들어 올수 있거든요.

 

1898년 3월 알렉산드르 3세의 명으로 시작된 러시아 미술관은

이후 에르미타슈와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소장품을 이관해 보관하면서

그 규모를 키웠습니다. 개인적으로 러시아 작가들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최적의 미술관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러시아 미술사 책을 들고 갔는데

좋은 정리의 기회가 된 셈이었지요.

 

 

러시아 절대주의 회화의 거장 카시미르 말레비치의 작품이 있는

방에 들어갑니다. 말레비치를 미술사에서 읽고 공부하긴 했지만, 사실 서구의 학자들이

써 놓은 미술사에선, 말레비치의 위치는 폄하시켜놓은 것이 많죠.

러시아에서, 그의 위치는 거의 레전드랄까요. 요즘 아이들로 말로......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삼각형과 원형, 원통과 같은 단순형의 입체로

재현해 낼수 있다면이란 사고로 시작한 절대주의의 그림들입니다.

 

 

 근대 모더니즘 회화 부터 시작해서 역순으로 살펴봤어요.

전시장은 아주 조용합니다. 왜냐구요? 만약 수다를 떨거나 그림 앞에서

함부러 플래쉬를 터트리면, 왼쪽에 있는 바부쉬카, 러시아 할머니들의 불호령이 떨어져요.

얼마나 무서운지는 직접 가서 한번 해보시고 느껴보시면 좋아요*^^*

 

 

5만여점이 넘는 컬렉션을 한번에 다 소개하긴 불가능하고

오늘은 러시아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 불리워지는 것들만 선별해서 올려봅니다.

위에 보시는 작품은 피델리오 브루니의 <놋뱀>이란 작품입니다.

보시는 순간 뭐가 떠오르시나요? 하늘에서 뱀이 떨어지고 지상의 인간들의 절규가

그림을 보는 이곳까지 들리는 듯 합니다. 엄청나게 큰 그림이기 때문에 실제로 보면

영화 화면으로 그때의 상황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지요. 이 그림은 성경의 민수기에

나오는 사연을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이지요.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 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죄를 범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잼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민수기 6-9절)

 

역사화가 였던 화가의 명작을 보면서 떠올립니다.

어느 시대나 우리가 떠들고 있는 <위험사회>란 꼭지가 붙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삶의 위험을 견디기 위해, 우상을 만들고 섬겼던 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이제는

자본이란 우상, 신자유주의란 우상을 섬기면서, 그저 경제합리주의란 미명하에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간과하고 그저 고개를 돌려 피함으로, 자신의 양심을 속여야 하는지 말입니다.

죄 지은자의 마음으로 그림 앞에 서니 꼭 뱀에 물려 죽을것 같은 환영에 빠집니다.

 

 

이 작품은 이곳 블로그에서도 자주 다루었던 러시아 최고의 화가

일랴 레핀의 작품입니다. <1901년 5월 7일 백주년 기념 정례 국가 평의회>란 작품인데

차르의 영광이 찬란히 빛나던 시절의 러시아의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마린스키 궁전에서 열린 국가 평의회는 차르가 지명한

정 관계 및 군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 황제에게 자문하는 기구였습니다.

권력의 핵심과 그의 가신들, 붉은 벽과 카펫에서 느껴지는 강한 카리스마가

지금까지도 느껴지지요. 물론 혁명으로 철저하게 허물어진 역사지만 말입니다.

 

 

이 그림......너무 좋았습니다.

수리코프란 역사화가의 작품인데, 러시아 미술관이 자랑하는 걸작 중 하나지요.

수리코프는 시베리아의 일당 노동자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시베리아를 정복한 카자흐의 후손이었던 그는 정부의 무거운 세금과

강제노역을 피해 변경으로 달아난 농노들을 일컫는 말이었지요.

 

이 작품에서 배 위에서 머리에 손을 괸채

깊은 생각에 빠진 한 남자가 보입니다. 그의 이름은 스테판 라진,

러시아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농민반란의 지도자였지요. 착취당하는 도시민과 가난한

카자흐인들을 규합해 반란을 일으켰던 인물이었습니다. 끝내는 정부군에게

잡혀 사지가 절단되는 운명을 맞았지만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죽어간 영웅이기도 했지요.

 

 

이 작품은 <로마 황제 네로의 죽음>이란 작품인데

사실은 네로의 죽음을 은유적으로 이용해서 제정군주 시대의 마지막,

그 종말을 그린 작품입니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네로의 모습이 인상적이죠.

 

 

다음은 러시아가 자랑하는 낭만주의 화가 미하힐 브루벨의 작품들입니다.

그는 밝은 세상을 등지고 사는 존재, 악마에 대해 관심이 많았나 봅니다. 그가 주로 활동했던

세기말은 퇴페적인 아름다움, 또 다른 한편에선 혁명의 붉은 기운들이 서로 대립하던

시대였지요. 그러고보면 참 아이러니 한것이 이런 그림이 나오던 시절, 바로 파리에선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려낸 자칭 '아름다운 시절'의 그 화려하고 질펀한 풍경들이 그려졌다는 것지요.

 

화려함 뒤에 숨은 상처입은 영혼들의 모습이랄까? 브루벨의 그림 속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생의 비애가 항상 넘쳐 흐릅니다.

 

 

브루벨은 <앉아있는 악마>란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이번 러시아 미술관에서 그의 다른 작품들도 볼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깍지 낀 손으로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악마. 그에게는 타마라란 사랑하는 공주가

있었지만, 악마의 존재인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지요.

공주 또한 마음을 열고 그에게 사랑을 보여주지만, 하루만에 싸늘한 죽음이 되어

천국으로 끌려갑니다. 악마를 사랑한 인간의 숙명인 셈이죠.

그 숙명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 악마 또한 그 숙명이 너무나도 싫었던 탓일까.

우수에 잠겨 그저 속으로만 상처들을 삭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악마주의> 혹은 악마를 그리는 작가, 악마를 찬양하는 작가

란 식으로 어떤 예술작품들을 폄하하기 쉽습니다. 미적 체험이 약한 크리스천들이 흔히

이런 교조적인 행동을 보이기가 아주 쉬운데요.

 

악마를 그렸다고 해서 작가의 영혼이, 혹은 그의 행실이

어땠으리라 추정하는것은 정말 어리석은 감상의 태도가 아닐수 없겠지요.

악마란 소재를 다룬다는 것은 그만큼 그 반대급부의 힘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 것일수도 있거든요.

위에서 보시는 브루벨의 또 다른 그림 4명의 성인은 성경에 나오는

4명이 제자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자 드디어 일랴 레핀의 명작 앞에 섰습니다.

러시아 미술전을 보신 분들, 혹은 제가 블로그에서 다룬 내용들을 기억하신다면

이 원작을 기억하시겠지요?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이란 작품입니다.

1868년 노동자들이 바지선을 끄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노동자의 현실에 눈을 뜨지요.  이와 반대로 강변을 산책하는 유한 계층의 우아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보면서 사회의 모순에 정면으로 그림을 통해 저항하는 작가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 그림은 발렌틴 세로프라고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귀족 여인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고요. 제가 복식사를 좋아하다 보니 여인들의

패션과 복식이 그려져 있는 초상화를 자주 볼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좋아하게 된 작가에요. 공주의 머리쓰개가 아주 인상적이죠?

 

 

 

농촌 여성들의 축제복과 혼인 예복을 찍었습니다.

러시아 복식사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러시아 민속복식을 보다 보면 화려한 색감도 좋지만, 수공예적인 자수기술과

금사로 처리한 표면들이 아주 곱고 미려합니다.

 

 

복식에 관심이 많다보니 예전 러시아 여성들이 입었던

옷을 그린 그림들을 여러번 살펴봤네요.

 

코자흐의 복식에서 부터 그림 속 자수를 뜨는 여인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햇살아래 인상주의 풍으로 그려진 여인들의 모습이 곱습니다.

 

 

러시아 국립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로 귀족들, 아름다운 공주들의 화려한 복식과

그들의 사치스런 생활들이 나오고, 또 다른 한편에선 역사 속 저항과 반항의 시절을 드러내는

사실주의 그림들이 크게 한 축을 이루면서 대칭을 보이거든요.

그래서인지, 화무십일홍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마음속에 새겨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벌써 한주의 마지막이네요. 이번 일요일엔 친구가

피아노 연주회를 엽니다. 언니와 함께 듀오로 연주를 하지요.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들을 수 있는 기회라, 꼭 가보려고 합니다.

 

미술관 이야기를 오랜동안 미루다 다시 쓰려니

쉽질 않네요. 러시아 미술관의 작품들만 900컷 정도를 넘게 찍었습니다.

작품을 일일히 설명하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이렇게 간편하게 정리하고 우선 넘어가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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