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천왕폐하를 위하여-조선일보의 옛 기사를 뒤적이다가

패션 큐레이터 2008. 7. 15. 15:08



이시우_노동당사 복도에서-오성산 전투참전용사_사진_60×42cm_2001
홍성담_국가폭력과 인간의 권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73cm_2006

 

올 5월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약칭, 민변이 탄생한지 20주년이 되는 달이었다.

5월에 이 전시를 보고 올렸어야 했는데, 너무 늦어버려서 폴더속에

접어둘까 하다가, 최근 지배언론들과 네티즌과의 광고 불매건으로 검찰의

압력이 거센 지금, 다시 한번 인권과 언론의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오늘의 포스트를 올린다.

 

촛불집회자들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무자비한

행정력 발동으로,국민적 지지와 사회적 신뢰를 철저하게 상실했고

떡검이란 별명을 얻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왜 이렇게 그들은 조선일보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일까? 우연히 옛 조선일보의 기사를 뒤적여보았다.

 

 

동상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어딘가를 향해, 팔을 뻗어 뭔가를 던지려는 것 같다.

바로 그는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던 이봉창 의사다.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정의 김구 선생님이

양성하는 항일 독립운동 조직 한인애국단에 가입, 일본 천황 히로히토를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괴수(傀首,우두머리)를 도살하기로 맹서하나이다."

라고 선서한 후1932년 1월 8일, 이봉창은 만주국 황제 푸이와 함께 도쿄 교외에서 관병식 참관 후

돌아가던 히로히토를 겨냥 수류탄 2개를 던졌다. 효창공원 내에는 수류탄을

던지는 순간의 이봉창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도 세워져 있다.




송현숙_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똥물사건<인천>_종이에 유채_100×160cm_1979
이철수_하늘나는새를보라_목판화_58×69cm_2003

 

이 당시 사건에 대해 두 개의 언론사가 내놓은 입장을 읽어보자

우선 중국의 국민당 기관보 청도(靑島)민국일보는 韓人 李奉昌 狙擊日皇 不幸不中

 즉 "한인 이봉창이 일황을 저격했으나 불행히 명중하지 못함" 이라고 논평했다.

동일 사건에 대해서 조선일보의 논평은 한줄의 동일한 문구인 듯

보이나 천양지차의 의미를 보여준다.
"이봉창이 천황께 폭탄을 던졌으나 다행이 명중치 않았다."

 

불행히와 다행히의 차이는 똑같은 부사의 역할을 하지만

전체 사건에 대한 신문사의 입장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달라지는 지점을 보여준다.

왜 조선일보는 천황을 향한 폭탄투척 실패를 '다행'이라고 논평한 것일까?

송현숙의 그림 속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총회를 열었던

30여년전 이맘때, 깡패들을 시켜 똥물을 뿌렸던 사건. 경찰이 총 동원해 모든 집회를

방해하던 그때와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리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을 둘러싼 사회적인 관점은 그때와 하나도 바뀐것이 없다.

 

파독 간호사로 근무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독일에서 활동하던

송현숙은 1978년 동일방직노조의 여성노조원에게 똥물을 뿌리고 강제로 먹인 사건에 대한

충격과 분노를 작품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똥물사건<인천>」으로 표현했다.




박불똥_나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부(끄)럽습니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116cm_1987
이태호_막걸리 보안법_혼합매체_70×70×190cm_2002

 

이태호의 「막걸리보안법」처럼 막걸리를 마시고 취기에 불평을 늘어놓았다는 이유로

인신 구속이 가능했던 건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과연 지금은 과거에 비해 얼마나 달라졌을까?

오늘 언론소비자주권 카페의 카페지기를 비롯, 6명의

운영자들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제 기사에 대한 댓글에 대해서도 형사처벌이

가능하게 하겠다고 검찰은 발표했다. 70년대의 막걸리 한사발과 불평이

2008년의 인터넷과 키보드 불평으로 바뀌었을 뿐, 사안을 바라보는 정부의 관점은 매우 비슷하다.

모든 것을 북한과 연계시키고, 정부전복이란 잣대를 들이대는 것, 너무 진부하다.



이상호_권력해부도_천에 아크릴채색_167×117cm_1989
신학철_모내기 1987~1993_캔버스에 유채, 디지털 프린트_170×150cm_1993

 

국가보안법은 일제 식민통치시절에 독립운동을 박해하기 위해 적용한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1948년 12월 1일 제정된 것이다. 대한민국을 거대한 감시체계 아래 가두고,

비민주적, 반민주적인 체제에 저항하는 민주인사들을 ‘간첩’으로 몰아 최고 사형까지 시킬 수 있는 이 법은

과거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와 같은 정보기관이 자행한 불법구금과 비인간적인 고문 등의

인권탄압을 묵인, 용인, 조장하는 근거이기도 했다. 




임옥상_그대 영전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7.5×215.5cm_1990


마이클 클러셰스키 주제네바 미국대표부 참사관은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실시된 유엔 인권이사회의 '보편적 정례 인권 검토' 회의를 통해,

한국이 모호한 국보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개인을 체포·구금·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며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최민화_시간속으로 I_캔버스에 유채_131×162cm
전정호_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0×100cm_2008

 

유엔에서 조차도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이제는 수정하라고 강력한 권고를 했지만, 지배언론, 조중동은

이러한 국제기관의 권고에 대해서 한 마디 논평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기사화하는데 게을렀다. 국가보안법은 적어도 한국에서, 무소 불휘의 법이었다.

정부의 관점에 무조건적 복종을 하지 않을 경우, 지식인과 종교인 할것 없이

좌파, 빨갱이란 인식표를 붙이기 위한 가장 좋은 법이었던 셈이다.

 

 
 
최근 인사동에 갔다가 권은주란 신인 작가의 그림을 보았다.
<권력해부도>란 연작들인데, 미디어를 통해 인기를 얻은 이들, 정치인들의
모습을 해부학을 통해 한꺼풀 피부를 벗긴 모습들이었다.
 
사회학자 안토니 기든스는 근대사회가
권력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힘으로 경찰/검찰을 비롯한 군대조직을
필수적인 요소로 지적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는
자꾸 수사학적 차원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조섞인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요즘이다.
 
오늘 포스트도 쓰면 잡혀가려나?
천황을 향해 독립을 외치며 꽃다운 나이게 사형대에
놓였던 이봉창 의사를 향해, '다행히'란 한 마디의  표현으로
그 시대의 언론의 사명(?)을 다한 조선일보에게 묻고 싶다. 너희들의 속살은
과연 어떤 빛깔이냐고? 권은주의 그림 속 주인공들보다도 더 두꺼워서 아예 껍질이
벗겨지지 않는 사이보그는 아닐까? 많은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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