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과 사회

장경동 목사의 불교계 막말-너나 잘하세요

패션 큐레이터 2008. 8. 23. 02:08

 

미켈란젤로 <피에타> 대리석에 조각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소재

 

S#1-예수의 독설이 필요한 까닭

 

최근 장경동 목사의 불교계를 지목한 막말파문이 일파 만파 퍼지고 있다. 예수의 죽음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항상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일각에선 기독 장로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 것에 고무된 채, 교회는 정치력을 더욱 풍성하게 확장시켜 가기를 꿈꾸었다. 그들이 지켜봐 달라던 새 정부 등장 이후의 허니문 기간인 100일이 월등히 지난 지금.

 

이 나라는 지금 종교논쟁으로 뜨겁다. 서울을 제대로 하나님께 봉헌하지 못해서인가? 그 여파를 예측하기 어렵다. 불교계 언론에선 대통령의 친 기독교적 성향과 종교편향성을 비판했다. 지도상의 사찰 누락, 조계종 총무원장 검열은 작은 일에 불과하다. 목사들은 대통령을 향한 용비어천가를 주일 기도로 바치고, 반대세력을 가리켜 '사탄'이라 불렀다.

 

S#2-장경동 목사, 그는 누구인가?

 

푸근한 일상의 주제를 통해, 성경을 말하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하루에도 지방 여러 곳을 다니며 설교하는 부흥목사로 인지도가 높다. 청년들 사이에 한국교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 7위에까지 랭크 되었다니 그 인기는 말할 필요가 없다. 2만권이 넘는다는 그의 서재, 더불어 예화를 개발하는 열정도 난 높이 샀다. 그런 그가 최근 뉴욕순복음교회의 순회 설교 시간에 '내가 경동교(장경동교)를 만들면 안 되듯, 원불교나 통일교도 만들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이 내용 자체는 성경에 비추어 타당하다. 문제는 이 말이 우리 기독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거다.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우라는 명령을 예수교를 컬트화 하라는 명령으로 해석했다면 실수한거다. 이래서 신학하는 교회가 필요하다. 속성 은혜반, 속성 성경반이 판치는 교회라 그런지 가르치는 자도 속성으로 이야기 한다. 속성 은혜에 찌들은 기독교의 내부엔 수많은 사회적·정치적 현안에 개입할 적절한 세계관도, 개개인의 소외·고독과 대면할 성숙한 철학도 결핍된 교회의 실체가 들어있다. 교회신앙이 오히려 예수와 대중의 소통에 심각한 장애물이 되어버린 현실. 은혜도 속성으로 받아야 하고, 긍정의 힘도 속성으로 받아야 속이 풀리는 소비자 중심의 교회에 더이상 역사적 예수의 오롯한 가르침은 없다. 당시의 안식일법과 오늘날 국가보안법 모두 당대의 편집증적 광기에서 나온 것이다.  성서 속 나병환자와 창녀의 고통이 우리사회의 노숙자와 기지촌 매춘여성의 아픔으로 연결되며 로마제국, 헤롯 정권, 율법학자, 유대교회당의 모습은 오늘날 미국, 이명박 정부, 관변 지식인, 대형교회의 모습과 닮았다.

 

"스님들 쓸때 없는짓 그만하고 예수 믿어야 " 라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사고가 지금 기독교 내부에서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회 내에서의 종교의 역할과 기독교의 화합' 운동을 깡그리 무너뜨리는 짓임을 그는 알고 있을까?  KNCC를 무너뜨리기 위해 군사정권 시절 정치적으로 이용된 한기총. 이들의 주장은 유독 근본주의적 속성이 강하다. 근본주의란 말만 듣고 그저 "하나님이 우리의 근본"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면 착각이다. 이 신학은 1920년대 공산주의와의 이념적 대치상황에서 나온 미국적 신학이다. 반대파를 숙청하는 이념의 방식으로 출발한 신학이다.

 

장경동 목사가  칭찬하는 김홍도 목사를 비롯, 한국의 1.5 세대 목사들이 다 근본주의의 세례를 받았다. "김홍도 목사님의 기도가 있어서 한국이 잘 되었다"고 했다지. 기도가 무슨 목사 개인의 힘으로 결과가 발휘된다는 식의 사고가 어디에서 나온걸까? 기도만큼 대화주의적인 장치가 어디에 있나? 이런 영광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전적 은혜라고 가르쳐야 하지 않나?  목사 개인에게 환원되어선 안될 문제다. 대형교회를 비롯 장경동 같은 자들의 사고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일제시대의 부역에 침묵하고, 개인의 영혼 구원만 강조한 장본인이자 그 부산물 세대다. 골방신학을 탄생시킨 이들이다. 미국 근본주의 신학의 정치적 관점을 알고 있는가? 그들은 핵전쟁을 찬양하고 사회적 불순분자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우세력이다. 성경상의 '남은자' 쉐하르가 바로 자신들이며, 이교도와 동성애자를 비롯한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은 깡그리 지상에서 불로 태워 없애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다. 이들이 공화당의 골수 매파를 지향하고, 이들에게 자본을 대는 자들이다. 한국의 근본주의 방식 또한 이들과 연계된다. 어찌보면 장경동 목사도 김홍도란 목사한테 잘 못 보이면 안되기에 이런 이야기를 한게 아닌가 싶다. 물론 신학교에선 근본주의가 지양해야 할 신학적 방식임을 가르치긴 한다. 문제는 학교에서 배울때와 현실에서 목회를 할때, 그 태도가 달라진다는 거다. 장경동의 말처럼, '목사에게 잘하고' '십일조 생활 잘하고' '목사님 비방하지 말고' '오로지 순종하면' 결국 편하게 되는 주체는 목사요, 그가 전횡하는 교회다. 

 

장경동은 스스로를 경동교로 만들면 안된다고 자기고백을 했지만 정작 교회 내부에선 예수처럼 대접받고 싶어, 쇼맨십을 끌어들여 자신은 살짝 면죄부를 준다. 그러니 자기 모순이다. 어차피 김홍도와 같은 부류가 되었으니 비판은 애초부터 힘들고 그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노선에 발을 담글 수 밖에. 장목사는 "정교분리는 있을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말에 모든 신학생들이 찬성할까? 아니다. 그런데 비판하지 못한다. 왜 교회 자체가 공안정국이다. 교회숫자에 비해 졸업생이 많다보니, 말 그대로 잘못 보이면 안된다. 성도를 양육하는 것 보다 청와대 조찬 기도회가  영광스러운 자들. 정권과 결탁된 종교가 과연 그 본질적 횡보를 잘 해낼 수 있을까? 정교분리의 원칙은 다원화된 신앙의 형태를 사회적 공존을 위해 포섭해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이다.

 

자기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는 집단은 항상 외부로 시선을 돌린다. 내부가 모순으로 가득할 때, 이단논쟁이 나오고, 이교도 숙청으로 연결된다.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듯, 그러나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우월감으로 무장한 명품신앙을 강조하는 곳. 이것은 신앙의 선진화가 아니다. 사회적 배제를 배제로 모르는 인간들, 이들이야 말로 예수의 사랑과 그 혁명을 철저하게 전용하는 자들이다. 사회내에 공존하는 종교 간 대화는 커녕 배제를 근간으로 삼는 행동은 지양했으면 한다. 설교는 속성으로 하는게 아니라, 숙성되어져 나오는 것임을 알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