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형_탄천의 노을_캔버스에 유채_227.2x162cm_1990
제게는 듣기 싫은 말 한마디가 있습니다.
'막장인생'이란 표현을 들으면 화가나고 분노가 치밉니다.
말 그대로 탄광에서 일하는 분들의 삶을 가장 비열하게 폄하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60년대를 거쳐 80년대 초반까지 산업역군이란
이름 하에 자신의 건강을 뒤로하고 패인 손 마디마디에
그 힘든 노역의 금이 세겨질때마다 아버지의
가슴에선 자식들을 위한 사랑의 상처가 이슬처럼 맺혀있습니다.
황재형_삶의 무게_캔버스에 유채_93x74cm_1999
오늘 소개하는 작가 황재형은 대학 졸업반 시절 사실적 기법으로
광부의 옷을 그려낸 작품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노동하는 인간의 삶과 내면을
다루는 그의 그림 속에 시대를 살아간 민중들의
고통과 삶의 아픔들이 아로새겨 있습니다.
도시락통에 석탄을 담아 설치한 작품을 광주비엔날레(2002년)에 출품
광부의 삶에 대한 진한 사실적이면서도 따스한 시각으로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지요.
그런 그가 돌연 83년 가족과 함께 태백의 탄천에 터를 잡으며 탄광촌 마을의 풍경을 그려나갑니다.
오랜세월 한국 산업사회의 동력으로 기능하던 탄광촌 마을은 과거가 되었고
카지노와 호텔이 들어서는 현재의 모습까지 다루었습니다.
황재형_기다리는 사람들_캔버스에 유채_74x117.5cm_1990
작은 삶의 희망, 그 한줄기의 빛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을 누가 '막장인생'이란 표현을 썼습니까? 그들이 캐는 석탄으로
연탄을 만들고 온돌방 따스하게 뎁혀주는 그 소중한 산물을
쥐어준 그들을 누가 감히 <막장인생>이란 표현을 쓰는 것입니까?
아마도 그들의 땀과 노역을 역이용한 자들이겠지요.
산업화를 빌미로 독일탄광으로 저들을 보내고
그들이 응당 받아야 할 급여를 가로채고, 이를 산업화란 미명하에 사용했지요.
사람들은 그럽니다. "그때는 그럴수 밖에 없지 않았느냐고" 좋습니다.
그 이후에 그들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이용만 하고 버리진 않았습니까?
그들은 아직도 기다립니다. 정부와 산업자본가들은 면죄부를 부여하며 회피하지 마십시요.
2008년 서울시 추가경정예산에 대한 심사가 이뤄진 지난 4일
서울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 회의장에서는 도무지 이해불가한
일이 발생합니다. 예결특위는 ‘청와대 앞길 및 주변 관광명소화 사업’을 위한 예산이
추가편성을 필요로 할만큼 시급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도, 50억원을
일방적으로 배정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한달에 25일 밖에 배달되지 않아
금요일이 오면 두개의 도시락을 월요일 아침까지 나눠 먹어야 하는
결식 노인들을 위한 예산 '2억'을 전액 삭감합니다. 그나마 주말결식에 시달리는
노인들은 더욱 힘든 상황에 놓여지게 된 것이죠. 이런 와중에 예쁜 청와대 길을
만들겠다는 서울시의회의 결정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저는 양은 도시락에 익숙한 세대가 아닙니다.
유년시절, 코끼리 표시가 있는 4단 보온 도시락에
국과 밥과 반찬을 담아 다녔습니다. 어느날, 버스에서 졸다가
내리면서 보온밥통을 두고 내린 다음날, 어머니는 양은 도시락에
밥을 싸주셨습니다. 겨울이라 여전히 초등학교엔 난로위에 올려 덥힌 후
먹는 재미가 남다르더군요. 따스함의 수준이 다르달까요.
노인들에게 이 궁핍한 시대를 견딜 최소한의 물질적 배려도
가차없이 삭제하는 이 정부의 행동이 저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청와대길을
아름답게 가꾸시겠다고요? 길을 꾸미는데 예산이 50억으로 줄어 유감이시라고요?
길이란 목적지를 향한 소통의 통로입니다. 그나마 배달되던 도시락도 못먹는 결식 노인들을
무슨 면목으로 보란 말입니까. 민간 차원에서 '자선과 기부'를 극대화 하기 위해
발을 빼시는 겁니까? 어떤 변명을 늘어놓으실지 궁금합니다.
황재형_식사_캔버스에 유채_91x117cm_1985
새벽같이 나선 길에 짙뿌연 안개의 허기 몰려와
자꾸 눈앞을 가리는데 뉘집 제삿날인지
저만치 바닥에 감이며 대추며 석류에 사과까지 한 상 넉넉하게 차려놓았다
어젯밤에 지붕 떨어져 나갈듯 바람 사납게 불었기 때문이리라
유리창문 깨져버릴듯 요란하게 폭우 쏟아졌기 때문이리라
찬은 저것으로 넘쳐나니 밥은 길가 화분의 꽃으로 담고 국은 맑은 하늘이다
참 오랜만에 받아보는 독상이라
혼자 먹기 너무 송구스러워 몇 숟가락 들다
나보다 노숙으로 더 배고픈 것들에게 슬쩍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우루루 달려드는 목숨 가진 것들
연신 맛있다며 배를 채운다
아침에 밥상 받는 것이란 生을 나누는 일이다
한낮의 햇볕을 이겨내는 일이다 한밤의 달빛을 견뎌내는 일이다
집으로 온전하게 돌아오는 일이다 그러니까 아침 밥상은
불끈 일어서는 힘 같은 것이다
정부와 서울시의회에 권고합니다. 결식 노인들에게
아침 밥상을 차려주지 못하는 당신들이, 청와대로 향하는 아름다운 길을
운운하는 것이야 말로 <막장인생>의 정신상태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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