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누군가를 껴안고 싶을때 이 그림을 보세요

패션 큐레이터 2008. 7. 8. 00:18


구이진_손 Hand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5×90cm_2007

 

미술에 대한 글을 쓴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미술이란 소재를 블로그란 그릇에 담으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죠.

제 자신의 모습이 변했고, 생의 주변부에도 다양한 그늘과 밝음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삶과 나를 둘러싼 풍경을 투과하는 시선의 방향도 바뀌었습니다.

미술관을 가는 일이 일종의 습관처럼 몸에 베어버린 지금,

여전히 그림을 보는 일은 행복합니다.

  

 

구이진_손 Hand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60cm_2007

 

오늘 소개하는 작가 구이진은 참 어렵게 알게 된 화가입니다.

사실 모 미술대학 교수님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알게 된 분인데, 그림을 보고

한번에 반해버렸습니다. (원래 누구 추천이랍시고 그림 보러가면 실망한 적이 많거든요)

 

 서점에 가보면 성인을 위한 동화책과 그림책이 있습니다.

 먼 기억속 각질처럼 굳은 유년의 기억을,  그 추억의 보자기를 풀며

응시하는 일은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나 자신을 성찰하고 충격을 가져다주고

자아있던 상상력에 새로운 불을 붙이기도 합니다.




구이진_손 Hand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70cm_2007


구이진의『잃어버린 것의 정원』연작은 바로 이런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오래된 우리의 모습과 아름다운 기억들, 그리고 그 기억들을

하나하나 이어가는 스토리로 풀어내고 있지요. 작가 구이진은 어릴 적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는

조그만 아이가 있었다네요. 아마 그림속 주인공으로 그려진 아이겠지요.

 그 아이는 그녀 자신일 수도, 아님 다른 어느 누구의 존재로 대신할 수도 있습니다.

 

문득 거울을 보다, 나 스스로 낮선 나 자신을 볼때가 있을겁니다.

눈물이 날때도 있고, 화가 날때도 있지요. 결국 세월의 겹 속에 차곡하게

쌓여진 내 안에 숨겨진 상처와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구이진_그녀의 마법을 풀거나 Break her spel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50cm_2006


작가 구이진의 작업은 동화적 모티브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동화 일러스트를 그린 작가답게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과 파스텔 톤의 색감,

가냘픈 다리, 세부적인 섬세함이 돋보이는 옷의 패턴, 이 모든것들을

매우 정교하게 그립니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에서 주목할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아이들을 감싸고 있는 손의 모습입니다.

 

아이를 감싸는 손의 모습은

아이들의 눈망울에 투영된 감정의 빛깔과 무늬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띱니다. 넓게 시원스레 펼쳐진 손, 수줍게 감싸 안은 손,

조심스럽게 오므린 손. 마치 그들 등뒤에 달린 날개와도 같아 보인다.

하늘에서 내려운 수호천사의 날개같기도 하고, 보이지 않지만

영혼의 창을 통해서만 보이는 힘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구이진_손 Hand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65cm_2007

 

구이진의 그림 속에서 제가 배우는 것은

바로 아이들을 껴안고 혹은 달래며, 격려하고 감싸는

손의 기능입니다. 아니 신이 인간에게 손이란 매체를 준 까닭이라 해야 옳지 싶습니다.

누군가를 때릴수도, 도울수도, 들거나, 이동시키기도

밀치기도, 돕기도, 껴안기도, 수도없이 많은 행위를 창조하는 이 손에대한

표현은 세상의 모든 백지를 채우고도 남을만큼 크고 깊지요.

 

누군가는 촛불을 들고, 또 누군가는 방패와 곤봉을 들기도 합니다.

손과 손이 배접되는 그 시간에, 우리가 만들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의 조합은 우리의 삶을

들여다 볼수 있도록 만드는 거울과 같습니다.




구이진_새 Bird 1,2,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60cm×3_2006

 
무늬결 따라 혼을 쏟는다 넓게 돗자리 펼쳐 놓고
까발려 놓은 문신 위로 합체한다

양손에서서 휘파람이 나온다 갑(나무)은 덩치는 크지만 약자고
을(손)은 비록 덩치는 작지만 강자다

갑과 을이 합해져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원하는 대로 개성을 살려 가면서 끼우고 문지르고 뿌려 대면
어느새 손에도 똑같이 묻어나면서 세워지는 나

비로소 새롭게 탄생하는 또 다른 나를 위해
나무(무늬)는 거짓 없는 몸으로 자신을 바친다.
 
전병철의 <손에 묻어나는 무늬를 위하여-목각인형> 전편



구이진_초콜릿으로 만든 방 Chocolate room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40cm×3_2005
 
나는 오늘 두 손으로 무엇을 했는지
그냥 제 자신에게 묻고 싶네요.......한편의 강의계획서를 작성하고
2쇄 발행을 앞둔 제 책의 틀린 부분들을 점검해 고쳤고
뜯겨진 옷의 솔기선을 마장하고,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책을 읽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상처받은 아이를
여전히 껴안지는 못하고 있더군요. 아니 귀찮은 걸까요
아님 내 안에는 이미 아이가 없다고 그냥.....넘겨 버리고 싶은 걸까요.
이런 것들이 궁금한 밤입니다. 누군가를 껴안고 싶은 날입니다.
용기를 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