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러시아인과 보드카 마시는 법

패션 큐레이터 2008. 3. 31. 11:22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온지 4일째,

혼자 하는 여행이 점점 몸에 붙기 시작함을 느낍니다.

오전엔 보드카 박물관에 갔습니다. 보드카의 역사와 러시아의 맛을 규정한다는

그 술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Sennaya Ploshchad 역에 내려 걷는 길, 비가 내렸지요.

술 공부(?)를 하기엔 아주 제격인 날씨인 셈입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박물관은 아닙니다. 단 영어 가이드 투어가 있기에

러시아어를 못하는 제게는 큰 도움이 되었고, 가이드가 끝나면 보드카를 한잔 준다는 정도.

술을 못하는 통에 썩 끌리지도 않았지만, 입장료라고 해봐야 100루블 남짓이니

한번 경험하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러시아 내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보드카와 텀블러 등

관련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화해서 선 예약 후 360루블을 내면

특별 가이드 투어를 한다는데, 들어보니 세 종류의 보드카와 박물관 내 선술집에서 파는

안주 한 가지를 맛볼수 있다네요.

 

 

보드카는 러시아 문화의 심층부를 구성합니다. 그만큼 보드카가 없는

러시아는 생각하기 어렵지요. 보드카는 Voda(물)의 지소형인 Vondon Ka에서 온 것이라네요.

보드카가 샘물처럼 맑고 투명하다고 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답니다.

 

19세기 말에 들어 정부는 국가 차원의 보드카 제조 관리에

들어갑니다. 당시 많은 공장들이 난립하고 있어 품질상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1860년 5천여개에 달하던 공장은 1890년에 절반 이상이

줄었고, 보드카의 품질이 높아집니다. 이때 그 유명한

주기율표를 만든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어떤 도수에서 보드카가 가장 최상의

맛을 유지하는가를 연구해 논문에 실었습니다. 그때 결론은 40도. 그래서 오늘날의 보드카는

40도로 통일이 되었다고 하네요.

 

 

 

동유럽의 보드카 소비율은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 보니 러시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의 보드카가 있는데요. 오른쪽의 루브카 보드카는 폴란드에서 만드는 보드카입니다.

병 디자인이 아주 특이합니다. 60불이 넘는 고가랍니다.  원래 16세기 폴란드 궁정에서 즐기던 보드카에서

영감을 얻었다네요. 폴란드산 호밀과 맥아로 빚어 세번 증류한 프리미엄급 보드카입니다.

원래 감자나 호밀로 술을 빚는데 호밀로 빚은 것이 더 순하고 맛이 좋답니다.  

 

보드카 제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입니다.

순도가 깨끗한 단물을 이용하는데 이것은 100밀리미터의 물에 이온 수치가 10도 이하인

상태를 일컫는데, 러시아 보드카는 그 수치가 2-4도 사이라니 그 품질이 더욱 좋겠죠.

놀라운 것은 화학제조가 아닌, 모스크바 상류에서 퍼온 물이라니 놀라울 뿐입니다.

 

 

러시아 내의 알콜중독 수준은 매우 높아 국가적인 관리가 시급하지요.

오늘날 학교나 병원 주변에서는 더 이상 보드카를 팔지 않습니다.

최근엔 와인과 브랜디가 인기를 끌면서 보드카의 점유율도 떨어지고 있다네요.

 

왼쪽 사진에 보이는 아라라트 상표로 대표되는 코냑은

구 러시아 시절의 아르메니아산인데, 프랑스 코냑과 싸울 수 있는 품질을 가진 유일한 제품입니다.

아라라트는 성경에 나오는 아라랏 산입니다. 노아가 대홍수를 피해 정착한 곳이지요.

일종의 성지인 셈인데. 한국으로 치면 <백두산표 소주>정도랄까요*^^*

 

1945년 얄타회담 시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이 코냑에 반해

영국은 이 술의 주요 수입국이 되었다는 군요. 항간에는 프랑스산을 먹는 꼬락서니가 싫어

일부러 러시아 산을 키웠다는 말도 돌지만, 뭐 그거야 제가 확인할 길이 없지요.

 

한국은 감기에 걸렸을때 소주에 고추가루를 타서 먹잖아요.

러시아에선 보드카에 후추를 넣어서 먹는답니다. 뭔가 닮은꼴이 많지요?

보드카는 일단 한번 병을 열면 그 자리에서 다 마셔야 합니다.

"다 드나 네 아스타블랴이체즐로(한 방울도 남기지 마라,재앙을 남기면 안되)"

러시아 인들이 술을 마실때 하는 말이라는데. 너무 마셔서 재앙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부활성당까지 걸어서 왔습니다. 맞은편에 작은 산책로가 있습니다.

입구 대문의 철제 디자인이 아주 인상깊어요.

 

 

날씨가 흐렸던 탓에 허기가 빨리 지네요.

운하를 타고 약간 걸어오면 상트 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습니다.

잘 모르다 보니, 배는 고프고 해서 들어갔는데, 깨끗하고 현대적인

느낌의 카페입니다. 음식맛은 별로였네요.

 

세계 어디를 가든, 도시 이름을 따거나

 유명 관광지의 이름을 딴 식당은 품질이 별로인것 같습니다.

 

 

보르쉬 스프로 허기를 달래고 맥주 한병을 시켰습니다.

닭고기 사쉴릭도 시키고요. 함께 간 나탈리아도 원체 잘 먹는 스타일이라

금방 비웠습니다. 원래 보드카를 먹을 때는 '쵸르느이 이크라'라고 해서 철갑상어알을

버터 바른 흰빵에 엊어서 먹습니다. 이외에도 러시아식 피클이나

고기 족편을 안주로 하면 좋습니다.

 

 

세계 1인당 알콜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가 러시아입니다.

물론 춥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걸 빌미로 오랜동안 습관처럼 몸에 밴

술 버릇이 끝내는 사회문제가 된 것이죠. 최근 정부에서 음주에 관한 강력한 대처와 통제를

선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상황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에도 우리나라 처럼 폭탄주가 있습니다.

한국에 소맥이 있듯, 여기는 맥주에 보드카를 섞어 마시는데요. 이걸

요르쉬라고 합니다. 원래 이 요르쉬란 것은 볼가강에 사는 물고기라는데 물리면 아주 강력한

독성이 몸에 퍼진다네요. 이 물고기의 이름을 따서 폭탄주의 애칭을 붙인걸 보면

역시 러시아나 한국이나 끝장을 보는 술문화가

참 많이도 닮았음을 느끼게 됩니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가을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정호승의 <술한잔> 전편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입니다. 봄 기운에 취해 너무 많은 음주는

피하시고요. 행복함을 위한 건배만 기억하시길요.

자 드루지바(우정을 위하여), '다 드나(잔을 비우자)'......

 

자 한잔 꺽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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