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장애인의 날에-사진 속 농인들의 표정을 읽다

패션 큐레이터 2008. 4. 20. 05:16

 
양은주 <홍파복지원의 정신지체아이들>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채색 각 60×60cm 2006

 

오늘은 28회 장애인의 날이다.

가뜩이나 일요일이니 방송에선 장애인들의 이야기와

슬픈사연, 우리들의 책임을 이야기 하리라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채널을 꺼놓고 싶다. 하루뿐인 그들의 축제를 언제까지 봐야 할지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거리 인터뷰를 보여주려 하는가?

장애우란 단어를 남발하면서, 그들의 삶에 얼마나 공감하는 척 하려하는가.

 

청계천을 거닐다....이곳은 장애인들이 거의 걸을수 없는

구조란 걸 알게 되었다. 보행을 막는 쓸모없는 방지턱들이 종로판에 얼마나

많은지 새롭게 배웠다. 예전 가르쳤던 특수반 아이들, 그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성남훈_흑백인화_2003

사진작가 성남훈은 시력을 잃어가는 16세 소녀

혜선이의 일상에 참여, 함께 동행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돋보기에 의지해서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서로의 느낌을

배우고 익히고 확인하기 위해 손으로 몸을 더듬으며 그 감촉을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의 사진속 한 프레임 한 프레임 곱게 새겨진다.

 

보이지 않는 거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그 낯선 모습 속에서 안타까움과 아름다움이 함께 묻어나온다.

그의 사진에는 세상을 볼 수 없는 답답함이 여백의 억제를 통해 드러나지만

혜선이의 밝고 고운 희망의 이미지 역시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시력은 잃어가지만

꿈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는 혜선이의 마음의 눈이 우리의 영혼을 깨운다.

 

혜선아....사랑해!

 



엄은섭_느끼다_흑백인화_40×50cm_2003

 

장애인들은 신체적인 장애가 없는 이들에 비해

어떤 느낌, 사물에 대한 반응을 보일까?  사진작가 엄은섭의 작업은

바로 농아들의 표정을 담는다, 그 자체로서 언어의 기능을 하는 그들의 표정 속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엄은섭_느끼다_컬러인화_110×86cm_2003_부분


청인(hearing people)들에게

농인(the deaf)들의 대화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다.

청인은 수화를 보아도 이해하지 못한다. 청인이 수화(sign language)를 알려면 배워야 한다.

수화는 보이지 않는 세계, 느끼고 감지해서 표면 위로, 끌어 내어야 할 세계다.

 

농인들에게 수화란 손의 기호와 얼굴 표정, 제스쳐,

그들만의 문화가 합쳐진 언어다. 즉 수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연구를

사진을 통해 작가는 보여준 셈이다. 여기엔 그들만의 정체성이 담겨있다.




엄은섭_느끼다_컬러인화_110×86cm_2003_부분

 

우리나라에 농인들의 표정 자료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미국이나 유럽등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려가 있는 나라에서는

이미 이런 표정 자료집이 있고 일반인들도 그 표정 자료집을 보고 익힌다.

눈썹의 움직임, 눈동자의 방향, 입술 모양 하나 하나가 문법으로 인정될 정도로

정교한 체계를 갖고 있다.물론 우리나라에도 수화교재는 있다. 하지만 기존 수화교재를 보면

 대부분 수화만 표현하고 있고, 얼굴 표정 표현이 모두 같다. 심지어 기쁠때와 슬플때의 표정도 같다.

우리의 감정은 아주 섬세해서 쪼개고, 나눌수 있으며, 그 결이 미묘하게 다르다.




엄은섭_느끼다_컬러인화_110×86cm_2003_부분


그들에게도 표정이 있다. 분노하고 울분에 쩔고, 환하게 웃으며

새초롬한 질투와 애교를 보이기도 한다.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표정이

우리 정상인들만의 산물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거리 마다 생각없이 만들어놓은

방지턱들, 그 디자인 하나에도 그 나라의 건강성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는....그런 관점에서 참 건강하지 않은 나라다.

나이젤 휘틀리의 <사회를 위한 디자인>이란 책을 최근 다시 읽었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자들을 위한 디자인의 철학에 공감했다.

청계천 하천 복원 하나 하는데도, 장애인들의 동선 하나 고려하지 않는 나라에서

농인들의 표정자료집을 요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일까?

 

누군가의 표정을 읽는 다는 것이 배려임을 배우는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우리 사이에 놓여진 장벽이 허물어 지게 될텐데

그 행복한 순간이 꼭 오기를, 나는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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