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책으로 표현한 여인의 에로티시즘-線이 숨쉰다

패션 큐레이터 2009. 3. 20. 14:45

S#1-선은 언어다

 

이틀전에 인사동에서 국내 메이저급 출판사의 부장님을 뵈었습니다. 본업이 아닌 출판을 2번이나 한 인연으로 요즘은 부쩍 출판과 방송관련 분들을 만나 다양한 제안을 듣기도 하지요.

 

미팅 후에 보고싶던 몇개의 전시를 살펴봤습니다. 그래봐야 걸리는 시간은 40분도 채 되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대체 시간이 어떻게 나서 전시를 보러다니는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수많은 전시가 인사동과 가회동, 삼청동과 시청을 잊는 동선 사이에서 열리지만, 볼만한 전시는 많지 않습니다. 작품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림도 보는 이의 문화적 코드나, 선호를 따라가기에, 여기에 부합하는 작품을 딱 골라내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열린 박영주님의 첫번째 전시인데요. 석사청구전이긴 해도, 나름대로 사진이란 매체로 사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모습이 느껴지는 전시였습니다.

 

전시회 제목은 <선은 숨쉬다>입니다. 사진작가의 시선은 책이란 사물에 꽂혔습니다. 사진 속 주인공인 책의 형태와 그 형태를 담보하는 선들의 움직임이 마치 여인의 윤무처럼 우아하기도 하고, 칼날의 끝처럼 날카롭습니다.

 

사진 속 제일 왼편에 있는 작품의 제목이 바로 <칼은 선이다>입니다. 결국 칼끝또한 하나의 선으로 구성되죠. 상처를 주는 예리함의 끝. 그 위태로운 예리함은 결국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연결됩니다. 왼편에서 두번째 작품의 제목이 <펠리컨의 산란>입니다. 책의 낱장들이 마치 춤을 추며 자연 속 잉태를 위해 날개짓 하는 펠리컨의 모습을 연상시키죠. 작가는 책이 놓인 형태, 낱장 하나하나를 넘길 때 발생하는 자연발생적 선의 리듬과 우아한 율동감에 주목합니다. 책이란 사물의 외형에서 선을 발견하는 것은 바로 옆에서 그것을 오롯히 볼때입니다. 텍스트의 내용을 보지,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의 책의 외곽선을 살펴보는 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누군가의 옆 모습을 본다는 것은 은밀한 행위입니다. 배우의 프로필 사진에서 아련하고 때로는 정겹고, 그/그녀에게 있었을지 모를 과거의 상처가 배면으로 스며드는 기운을 느끼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입니다. 옆 얼굴의 선을 명확하게 볼수 있기 때문이지요. 작가 박영주님의 모습입니다. 요즘은 신인들의 전시회를 가면 한컷씩 이렇게 찍어서 남겨두려고 합니다.

 

 

사진 속 오브제인 책에서, 육중한 지식의 냄새보다, 낮선 율동감과 종이제본과 장정 사이의 선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리듬감을 느낍니다. 오른쪽 작품의 제목이 <책의 무덤>입니다. 검색이 용이하도록 영어사전 인덱스 부분을 알파벳 순으로 음푹하게 패어 만드는데, 옆에서 보니 정말 무덤형태의 선이 보이는군요. 신선한 발견입니다. 사전 속에 들어있는 언어도 결국 우리의 입을 통해 발화되지 않으면 죽은 존재인 것과 다름없지요. 그런 식의 해석이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예전 아끼고 아꼈던 복식사 책에 물을 엎질러 그걸 허겁지겁 닦아내고 말리느라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책이란 것이 한번 물을 머금으면 이전 형태로 돌아가지 않는 특성이 만들어지죠. 구불구불, 혹은 옆에서 보는 책의 선들이 변형되는 것입니다. 사진 속 선들의 움직임을 주목해 보세요. 일부러 책을 물에 적셨다가 수차례 말리는 작업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선과,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앞에 보이는 작업은 몬드리안의 회화 작품을 보는 듯 합니다. 작가도 몬드리안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책을 포개 만든 선의 구조를 사진으로 찍었다고 하더군요. 앞에 보이는 작품이 <검은선의 무게>란 작품인데요. 장정본 책 두권을 올려놓고 접사로 찍었는데, 책이 서로 융합하지 못하고, 책의 쓰여진 이론과 이론이 서로 충돌할 수 있음을, 서로에겐 침투되기 어려운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 합니다.

 

 

박영주 <종이에 대한 철의 권력> 디지털 C 프린트, 2008년

 

바인딩된 책을 다시 한번 보게 되더군요. 적어도 이 사진을 곰곰히 보고나선 말입니다. 사물의 미세한 입자와 표면, 그 선들의 조합을 살펴보면 우리들이 살아가는 소우주로서의 세계, 바로 책으로 표현된 세계가 보입니다.

 

 

박영주 <읽을 수 없는 책들이 있다> 디지털 C 프린트, 2008

 

사진을 보면 갈색 장정의 책을 두 권의 검정색 표면의 굵은 선을 가진 책이 옆과 위를 누르고 있죠. 이 세권의 책이 육법전서였다면 어떨까요? 최근 육군에서 금서목록에 오른 책에 대해, 위헌신청을 냈던 두명의 군 법무관이 파면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초유의 일이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요. 똑같은 법이란 텍스르를 공부해도, 읽을수 없는 책을 규정하는 각자의 시선은 다른가 봅니다.

  

 

박영주 <포도주빛 환상> 디지털 C 프린트, 2008년

 

전시회의 발문을 읽어봅니다. 『美는 선에서 나온다. 線들의 관계가 美의 출처다. 낱장의 종이 선이 함축하는 간결과 예리를 출발점으로 이제 다양한 변형들이 생겨난다 낱장이 겹겹으로 도열하면서 선들의 독자적인 활동공간이 확보된다. 선들은 결이 되어 흔들거리고 결들은 한 올 한 올 살아서 서로 조응한다 결들이 빚어내는 펼침과 접힘의 이중주 속에서 생명의주름이 잉태된다』라고 쓰여있네요.

 

 

박영주 <그대의 머리결에 잠들다> 디지털 C 프린트, 2008

 

마치 책의 낱장 하나하나가 여인의 고운 머리결을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책의 낱장 낱장이 만들어낸 선들의 유려함. 그 우아한 선이 조합되는 공간에는 마치 에로틱한 여인의 육체가 숨어 있는 듯 합니다. 빅토리아 시대 코르셋으로 몸선을 인위적으로 만든 여인의 육체가 담겨 있는 것 같아 아쉬움과 서글픔이 동시에 다가옵니다.

 

 

박영주 <리듬의 출처> 디지털 C 프린트, 2008년

 

주변의 풍경을 살펴보면, 세상의 모든 풍경은 점과 선과 면들의 조합입니다. 수천개의 점이 모여 선을 이루고, 그 선은 복수의 형태로 모여 그 속에 면이란 공간을 창출합니다. 낱장의 면들이 도열되며 그 와인빛 육체의 은밀한 매력을 드러내는 사진 속엔, 여인의 육체가 살아 숨쉬듯 호흡을 하고, 고혹적인 둔부를 아스하리 돌리며 남자를 유혹하는 형상이 담겨 있네요. 선의 형태를 보고 남자를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팜프 파탈의 형상을 느껴보긴 처음입니다.

 

오늘은 책을 집을때, 조심스레 잡아야 겠습니다. 그 치열한 아름다움에 손이 베이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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