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모로코에선 겨울에 벚꽃이 핀다-브루노 바르베의 사진을 보다가

패션 큐레이터 2008. 10. 23. 13:56

 

 

 

 

비가 오는 날엔 두 가지의 이미지를 생각합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과연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삭막한 도시의 옆면에

바투 박아넣은 못에, 내 생의 무게 덜어내줄 외투를 걸어놓듯

예쁜 무지개가 뜰가 하는 문제와, 빗물어린 거리를 걸으며

과속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뿌리는 빗물을 피할까 하는 것이죠.

 

 

오늘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가는 길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과속으로 달린

자가용이 물웅덩이에 괸 물을 제게 온통 쏟아버렸답니다.

 

오늘은 <김선우의 사물들>이란 에세이와

김경욱의 <장국영이 죽었다고>란 소설을 소개했습니다.

가을의 표면은 갈색에서 진고동으로 이동하는데 무거운 내용의 인문학

서적보다는 에세이가 끌렸답니다.

 

어제 고객을 엠베서더 호텔에서 고객을 만나고

시간이 남아 갤러리 M으로 갔습니다. 이곳은 유로 크레온이란 곳에서

운영하는 사진 전문 갤러리로서, 매그넘 사진의 한국 에이전시

이기도 하지요. 이번 11월호 <탑클래스>호의 인터뷰에 제가 소개되었던

지면에 실린 지난 10월호의 주인공은 사진작가 브루노 바르뷔입니다.

저를 인터뷰했던 천수림기자가 이곳 갤러리 M의 관장으로

계신 이기명 대표님을 소개해주신다고 했는데

어제서야 인사를 드렸네요.

 

 

한가람 미술관에서 했던 <매그넘 사진전>을 기획했던 분께

많은 이야기도 듣고, 도록도 하나 얻었습니다.

바르노 바르뷔가 포착한 모로코의 풍경이 곱습니다.

몽환적이고, 사실적인 사물의 외곽선과 빗살무늬를 조형하는

해와 비와 바람의 힘, 그 대조되는 풍광은 우리를 황홀하게 만들지요.

 

모로코가 가진 자연의 특이성으로 인해

산에는 눈이 덮혀 있지만 대지에는 온통 미만한 빛깔의 봄을

잉태한 나무숲의 형상이 눈에 들어올때쯤이면 브루노 바르베란 사진작가가 정말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년시절을 모로코에서 보낸 작가의 눈에

비친 모로코의 풍광에는 자유롭되 질서의 여백을 지켜내는

색채의 아름다움이 아로새겨져 있지요.

 

스위스에서 사진과 그래픽 아트를 전공했던 작가는

유년시절 자신이 보냈던 모로코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담아내지요.

외국의 침략을 자주 당했던 나라다보니, 모로코에는 좁다랗게 가지를 친 골목길이

많답니다. 은닉과 피신에 유리하기 때문이겠지요.

 

백색 벽면을 한 집들 사이로, 골목의 여린 속살을

살포시 드러내는 카메라의 눈이 전통복식을 입은 여인과 아이의 모습을

더욱 강하게 끌어냅니다.

 

 

하늘색 문과 백색의 전통의상

아이가 입은 감청색 복식이 있는 풍경을 관통하는 건

사하라를 달구는 뜨거운 햇살이 야자를 투과하며 만들어내는 

빗금친 그늘의 풍경입니다. 빛과 그림자의 대조가 잘 드러나 있지요.

 

이기명 관장님이 너무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사진을 보는 시간이 행복했답니다.

위의 사진에서 백색 무늬로 그려진 작은 토담벽과 입구는

모로코식 찜질방이라고 하네요. 그 속에 들어가는 여인내의 둔부가

마침 지나가는 조류의 움직임과 닮아있네요. 그만큼 우연한 느낌이 전해주는

유머러스함이 잘 살아 있는 사진입니다.

 

 

모로코에서는 손은 행운의 상징이랍니다.

나무 외피에 손을 댄채, 몸을 숨긴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노역의 금이 패인 노인의 손일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당신의 행운을 빕니다.

 

테라코타 빛깔의 토담벽엔 수많은 손바닥이 

그려져 있습니다. 말씀드렸듯, 손바닥을 그리는 건 행운의

상징이지요. 거리에 앉아 자신을 가린채, 사람들을 향해, 손등을 보이는

이 여인에게도 행운을 기대해 봅니다.

 

 

흐린 하늘의 잔영이 제가 있는 사무실 창가의 속살까지

드리웠습니다. 이런 날엔 요가체프 커피의 신산한 느낌이 딱인데

다이어트 때문에 꾸욱 참고 있습니다.

 

만추를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리는 날엔

괜스레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으나, 송신만 했던

이름과 주소를 무신경하게 찾아보게 되네요. 소통이 날로 

어려운 시대, 그럴수록 '그리움'을 탐색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