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박물관 속 미술학교-러시아의 미술대학 풍경

패션 큐레이터 2008. 3. 27. 15:01

 

나는 미술관에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다

It is in a museum that I learn to paint  -르누아르-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의 말로 오늘 여행의 서문을 엽니다.

미술을 좋아하면서 몇가지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 습관은 한국에 있을때나

혹은 외국을 갈때 그대로 발현되지요.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을 가고 차선으로 상업 갤러리를

가는 것, 그리고 그 나라의 주요 미술대학을 가서 공부하는 모습을 훔쳐보는 것입니다.

 

미래의 거장들이 학습하는 모습, 그 열정을 보다 보면

이미 그 속에는 발아하고 있는 당대 미술의 방식과 형상이 녹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고하 자는 곳은

스티글리츠 장식  응용 미술관(Stieglitz Museum of Decorative and Applied Arts)입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하면 사람들은 크게 에르미타주와 루스키 무제이를 생각하지요.

하지만 장식미술과 응용미술 분야를 살펴보고 싶은 분들에겐

이 스티글리츠 미술관 만큼 탄탄하고 통일성있는 컬렉션을 가진 곳도 없습니다.

 

 

백만장자 자선사업가였던 알렉산더 폰 스티글리츠 남작은

자신이 세운 중앙 엔지이너링 디자인 학교의 학생들에게 미술에 대한 감식안과

심미성을 높이기 위해 이 박물관을 짓기로 하고 자금을 추렴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컬렉터였던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소장품들 가운데서 유리세공과 도자기, 타피스트리와 가구와 같은 장식미술에

필요한 컬렉션을 기부해 지금의 박물관을 만듭니다.

 

 

1885년부터 96년까지 11년에 걸쳐 지은 이 박물관은

원래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비슷한 테마의 박물관을 본따 만들었다고 합니다.

흔히 신 르네상스 양식이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15세기 피렌체에 건립된 건물들의 방식을

본뜬 것인데, 고딕이나 바로크와는 다른 느낌의 건물들입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발발과 더불어 소장품 3만여점은 혁명세력에 의해

에르미타주로 강제로 이양되었고, 아름다운 1층 플로어는 체육관으로 사용되는 수모를 겪습니다

 

 

가구 및 건축양식과 관련된 디테일들, 창틀이나

혹은 대문장식을 보는데는 여기만큼 좋은 곳이 없지 싶더군요.

 

 

러시아 전통복식도 보여서 한컷 찍었고요.

 

 

패션과 가구, 건축의 양식은 시대별로 비슷한 형태로

진화하기 마련입니다. 고딕의 시대, 교회를 추종하며 모든 걸 신의 뜻이라고

여겼던 그때 여성들은 에넹(Henin)이라 불리는 고딕 건축의 첨탑같은 모양의 모자를

쓰고 다녔답니다. 보시는 사진 속 시계도 1900년대 초의 디자인이고요.

 

 

가구를 구성하는 텍스타일과 패턴들이 아주 곱습니다.

의상 디자인이나 가구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아주 좋은 컬렉션입니다.

이 스티글리츠 박물관 2층은 바로 디자인과 미술학교 학생들의 수업장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유럽국가들을 가보면 미술관 안에 부설 미술학교들이 있습니다.

굉장히 입학하기 어려운 학교들입니다. 세계사에서 길드(Guild)란 단어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장인밑에서 도제생활을 하면서 배우는 것인데

이것이 미국이나 유럽에 여전히 예술학교엔 그 전통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혹은 만들어내려는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새로움이란 거장들의 어깨위에 서서 사물을 볼때 만들어집니다.

아래 사진처럼 학교 내벽에 장식된 부조양식들과

건물의 열주양식들, 세부사항들을 하나하나 다시 그려가면서

고전적인 양식을 자연스레 익혀가면서 새로운 생각과 미감이 덧붙여지는 것이죠.

  

 

디자인쪽이 강한 학교여서 그런지 미대 저학년들의

기초미술수업 장면들을 담아보았습니다. 한국같으면 석고로 만든 아그리파나 쥴리앙

을 놓고 그릴텐데, 이 학교 친구들은 그럴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의 결합에도 항상 순수미술의

강한 배경이 힘이 되듯, 학생들은 1-2학년 동안 사진에서 보시는

저 지독한 베끼기, 모사 수업을 한다네요. 모사가 없는 새로움이란 사실 찾기 어렵지요.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은 이럴때 쓰나 봅니다.

 

 

미술관인지 미술대학인지 구분이 안가지요.

이런 환경이 부럽습니다. 사진 속 계단이 보이시죠? 아르데코풍 계단이라

멋져 보여서 올라가봤는데 조소과 학생들 실습실이 있더라구요.

 

 

(마네킨 같은 여학생이 증명사진을 찍어서 약간 얼었습니다. 얼음 땡!)

 

스티글리츠 박물관을 들어가려면

입구에 상업 갤러리를 통과해서 가야 합니다. Sol Gallery라고

상트 빼쩨르부르크에선 대표적인 상업화랑입니다. 세계적인 영국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이곳의 단골이래요. 한창 머물며 그곳의 마케팅 이사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학교 학생들 작품도 바로바로 화랑에 걸어놓고 팔더군요.

 

 

 

오른편 가운데 있는 그림이 바로 패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좋아하는 작가라네요. 드미트리 폴라루쉬라는 작가던데, 저도 궁금해서 이사님께 이야기해서

도록을 얻어왔습니다. 내일은 이분 그림을 한번 올려보도록 하지요. 따뜻하면서도

옷의 물성을 캔버스에 잘 살려서 그린 그림들이 많더라구요.

 

4월이 다가옵니다. 연두빛 하늘은 아니지만

청명한 봄빛이 내 몸속을 투과해 들어옵니다. 제 블로그를 보시고

기대치 않은 선물을 받은 것 같다며 기뻐하는 분의 감사 메일을 받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Hiko의 연주로 제 마음 전합니다. Unexpected K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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