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잔뜩 무거운 구름이 하늘을 덮었습니다.
연일 황사로 지쳐버린 대지에 난 생채기들을 씻어주려는 걸까요.
잔잔하게 봄비가 내렸습니다. 이번 주 엄마와 함께 계속 병원에 다녔습니다.
모처럼 만에 요리나 할겸, 엄마에게 스파게티를 만들어 드리려고 냉장고를 열었습니다.
링귀니도 있고, 홍합도 있고 오징어와 새우살도 있는데, 어찌된게 토마토가 없네요.
하긴 제가 원채 다이어트 핑계로 많이 먹어서 떨어진걸 몰랐나 봅니다.
장을 보러 할인마트로 나오는데 빗줄기가 떨어지네요.
과일과 야채를 원체 좋아해서, 엄마가 요즘 과일값 비싸다며 먹는양을 줄이라는
잔소리를 들을때면, 하늘에서 토마토나 딸기가 비처럼 쏟아지면 좋겠단 환상에 빠져듭니다.
작가 이영조를 알게 된 것은 꽤나 오래전입니다.
96년이지 싶은데, 그때 이후로 그는 계속해서 비내리는 풍경을
캔버스에 그립니다. 문제는 그 비가 야채인 토마토란게 특이할 뿐이지요.
이영조_익명인-여우비_anonym-sun show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97cm_2007
작가에게 토마토는 도시의 익명성에 찌들린
현대인의 상처를 씻어주는 상징이랍니다. 사실 토마토란 야채의 연원을 따져 가면
이런 상상력은 역사에 기초해 있다고 과장을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요.
16세기 남아메리카의 마야족은 토마토를 그때부터 요리에 사용하고 있었고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토마토를 먹는 것은 신성한 행위로 간주하고 있었으니까요. 상처의 치유와
영혼을 어루만치는 신성행위로, 토마토를 먹었답니다.
이영조_익명인-봄비_anonym-spring rai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3cm_2007
현대 사회 속에서 물질적 풍요로움은 만끽하지만
점점 더 소외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 가는 현대인을 그린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생각지 못했던 여우비가 내리면, 어디에선가 귀신처럼 나타나
일회용 우산을 팔지요. 비가 그치면 그것으로 우산의 효용은 끝나
쉽게 버려지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합니다.
도시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그 우산의 내면을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닐겁니다.
익명인-도시에 비_anonym-rain in the cit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97cm_2007
익명인-장대비_anonym-heavy rai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60.6cm_2007
청색 토마토가 하늘에서 비가 되어 내린다면 어떨까요?
내 마음 속 캔버스에 온통 회색으로 덮힌 마음에 청신한 빗물이 내리며 번져갈것 같습니다.
이영조_익명인-단비_anonym-welcome rai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3cm_2008
부스스하던 봄꽃들은 상큼한 비소식에 머리를 감고 장밋빛 꿈에 부풀어
누런 잔디밭 언저리서 싱그럽게 도란거립니다.
낙숫물에서 음계가 태어나 왈츠 보폭으로
톰방톰방 뛰어다니는 처마 밑을 걸어본적이 있지요.
이 봄비는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하고 우리에게 다가왔을 겁니다.
황사가 지겹도록 싫었던 누군가에겐, 목젖을 씻어낼수 있는 상쾌함으로
또 누군가에겐 겨우내 해빙시키지 못한 추억으로 말이죠. 이럴때
우울보다는 찬란한 색의 토마토가 마음속에 내린다고 주문을 걸면 어떨까요?
이영조_익명인-마음의 비_anonym-rain of spiri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94cm_2007
마음에 비가 내립니다.
그 비가 시원하다는 생각......요즘은 그렇습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들이 굳이 그리 우호적이지만은 않은데도
이 삶이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희망은 여전히 내 앞에서 깨끔발을 하고
다가와 환하게 웃어주네요.
Randa의 연주로 듣습니다. Rain is over.
이 봄비가 그치고 나면 연두빛 햇살이 우리를 향해 쏟아지겠죠.
봄기운에 너무 젖지 마시고 웃으며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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