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현대 미술관으로 가는 길
비록 복장은 여전히 겨울이지만, 살갖에 와닿는 햇살의 느낌에
점점 더 다가오는 봄기운이 실립니다.
오늘은 아이들의 놀토 프로그램 <미술관 가기>에 자원봉사를 맡았습니다.
요 며칠, 갑자기 담이 결려서 목을 제대로 쓰질 못하고 있었는데
원체 아이들을 좋아하는지라, 거절을 못하고 집을 나섰죠.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서울 내에서 과천 현대 미술관만큼
좋은 데이트 코스도 없지 싶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 나오거나
오늘처럼 둘째 주 토요일은 미술관 무료입장에 가족들을 위한 미술 강의와
음악회가 또한 무료로 제공되니 이 보다 좋은 코스도 없지요.
아이들에게 동양산수에 대해서 재미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산만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이상하게도 장난하는 듯 하면서도
들을 설명은 다 듣습니다. 노트에 열심히 받아적는 아이들도 많구요.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인 쟝 팅겔리의 <회귀의 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술사에서 흔히 키네틱 아트의 거장입니다. 키네틱 아트란 움직임을 주 요소로 하거나 중요시한
미술운동 입니다. 특히 팅겔리는 인간의 행동을 풍자하는 조각을 많이 제작했지요.
사진 속 작품도 15분 마다 원형의 바퀴들이 돌면서 위에 동물 해골 두상이 아래로
움직입니다. 사물의 변화와 그 시간 속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작가는 가장 삶과 예술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어요.
그림 설명을 마치고 휴식을 취한 후 스케치 수업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색연필과 크레파스로 조롱조롱 그리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요.
아이들이 스케치 작업을 하는 동안 저는 2007년 신 소장품전을
다시 보러 들어왔습니다.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긴거죠. 후엔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 미술관에 가야 합니다.
보시는 작품은 김혜련 작가의 <가을사과>입니다.
낙과기의 과일, 사과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모하는 과정을 그려냄으로써 시간 속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인간의 한정된 삶과 모습을 비유적으로 보여줍니다.
문인상 선생님의 생성 연작입니다.
장지에 채색한 작품인데, 꽃을 소재로 보편적인 태어남과 생성, 피어남을 설명합니다.
연탄찍기 창틀 철망에 지토 92.5×59 1986년
1980년대 후반 민중미술의 한 장을 보여주는 작가 황재형 선생님의
연탄찍기란 작품입니다. 청관재 관장님께서 이번에 7점을 미술관에 기증하셨다고 하더군요.
이런 소식을 들을때마다, 한 시대의 미술작품을 구매해서
소장하고 있다가, 후학을 위해 기증하고, 후손들은 공공재가 된 작품을 보면서
시대의 모습을 다시 그려보는 선순환이 그려지는 것이 너무나도 좋네요. 물론 컬렉터로서의
사회적인 의무감도 많이 느낍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야지요.
이 작품 개인적으로 굉장히 눈길을 끈 작품입니다.
바로 이형구의 Lepus Animatus란 작품인데요. 줄에 걸려 있는 동물은 바로 토끼입니다.
Lepus는 토끼의 학명이구요. Animatus는 만화영화 혹은 애니메이션의
라틴어 어원으로 '움직임' '생명을 불어넣다'란 뜻입니다.
작가는 인간의 신체를 비롯, 살아있는 존재들의 사체를 해부하고 이를 소재로 삼아 작품을 만듭니다.
바로 조각속의 토끼는 어린이 만화의 주인공 벅스 버니입니다.
작가는 2차원의 만화 속 주인공을 현실로 불러들여 이를 삼차원의 조각으로 만든 것이죠.
이렇게 만화 속 주인공인, 톰과 제리나, 도널드 덕과 같은 존재들을
해부학적으로 새롭게 옷을 입힘으로써, 완벽한 골격을 가진 독자적인 생명체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로 작가의 독창성이 드러나는 부분이죠.
벅스 버니의 앞이빨을 제대로 나타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에서 말씀드린 쟝 팅겔리의 <회귀의 벽> 전면 사진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상단부에 뿔 모양이 보이시죠?
바로 동물들의 해골 두상을 형상화 시켜서 15분 마다 바퀴가 돌면서
함께 움직이도록 해놓았습니다. 시간의 변화와 흐름 속에서 자유롭지 않은 우리들의
영혼의 모습을 아련하게 담아냈지요.
간단하게 관람을 마치고 아이들과 함께 아동미술관으로 갔습니다.
여기엔 초등학교 학생들의 작품을 상시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림과 조각, 찰흙조각, 공예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고 있어요
냄비와 국자를 조형으로 만든 어린이의 작품을 보세요.
평소에 밥을 잘 안 먹어서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데. 정말 냄비와 국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준다면 정말 밥을 잘 먹고 싶겠지요?
부모님과 함께 있으면 너무 행복해서
시계를 바라볼때마다 웃고 있다고 느꼈다네요....그 착한 마음이 좋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내부의 거의 상징이다 시피했던
백남준 선생님의 <다다익선>이 보수공사 관계로 철망을 쳐 놓았더군요.
5명의 아이들이 팀을 이루어 그려낸 다다익선 그림을 보고 놀랐습니다. 어찌나 잘 그렸던지요.
왼쪽 작품은 초등학교 4학년 생이 그린 그림인데, 행복한 방과 외로운 방이란 작품입니다.
엄마가 워킹맘인지, 엄마가 있을때와 없을때의 방의 분위기를
조형으로 만들었더군요. 아이들의 손길과 분위기를 포착하는 시선이
어찌나 정확한지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오늘 몸이 불편한 상태였지만, 아이들에게 미술 도슨트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나니, 차라리 아픈 곳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의 수준이 결코 낮지 않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보는 어른들의 작품에
대한 감상이 오히려 제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최근들어 아동미술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창의성과 통합 교육이란 화두를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풀어갈 수 있는 장르가
바로 미술이기 때문입니다. 미술 블로거로 글을 쓰다보니
종종 '우리 애가 미술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식의 원론적 질문을
던지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잘 한다는 기준이 뭔지, 부모님 스스로가 깨달으셔야 합니다.
아이들이 아이들의 시선과 손끝으로 만들어낸 작품 보다, 자꾸 어른들을 흉내내고 밀도깊은
스케치나 채색을 칭찬하는 부모님들이 주위에 너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매체로서의 미술을 아이가 가질수 있도록
격려하고 북돋워 주는 것이죠. 의무로 하는 체험학습은 차라리 하지 마세요.
르느와르가 그랬다지요. It is in the museum that I learn to paint.
내게 그림을 가르친 곳은 바로 미술관이라고 말입니다.
자주 미술관에 아이들과 함께 가서 좋은 전시들 보러 가시고, 그냥 느끼는 것들
편하게 나누고 안아주고 그러세요.
오늘 경험을 기회 삼아
특히 아이들이 있으신 블로그 독자분들, 좋은 전시회 골라
주말에 함께 가서 도슨트 해드리면 좋을 듯 해요.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
오늘 참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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