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 <아들 쟝> 캔버스에 유채
예전 홀트를 다닐때, 아기들을 업고 다니는 걸 좋아했습니다.
아기들 포대기가 그렇게 편하더라구요.
예전엔 일주일에 한번씩은 다닌 보육원도 거의 가지 못하고
기껏해야 봉사단체와 함께 가는 일이 고작인지라, 미안한 마음만 가득합니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특히 아이들이 눈에 잘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 몇 점을 소개 하려 합니다.
그림 속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가 그린 자신의 아들 쟝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마 4살 정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목마 형태의 세발자전거가 눈에 띄지요?
누구에게나 세발 자전거 하나면 세상이 모두 내것인 시절이 있었지요.
이 그림에서 좀 재미나게 볼 부분이, (제가 복식을 공부하는지라) 남자 아이인데
여아용 옷을 입고 있잖아요. 유럽에선 여섯살이 되어야 비로소 바지를 입혔습니다.
고야의 그림에 보면 왕자들이 하나같이 원피스형 드레스를 입고 있다가 6살이 넘으면 품이 넉넉한
바지를 입어요. 물론 아이들 배변문제도 있고, 이때도 딸이 아들보다 이쁘다고 느낀건 똑같은지
여아용 옷을 입혀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고 해요. 물론 그 이후론 철저하게 남자로서의 교육을 받게 되지만요.
토마스 에이킨스 (필라델피아 1844-1916)
<블럭놀이 하는 아이들> 1876년, 캔버스에 유채, 81.9*122.9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아이들하고 블럭을 쌓으며 노는 일만큼
아이들의 상상력에 영향을 미치는 게임이 없다고 해요.
아이들은 게임을 통해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듭니다. 자신만의 성도 쌓고
건물을 허물어 뜨리고, 인형옷을 입혔다 벗기기도 하지요.
어른이 되면서 그림처럼, 문자가 새겨진 나무 블럭으로 지은 세상이 다가 아니란걸
배우게 되겠지요. 모든 게임엔 승자와 패자가 있다는 걸 배우게 되니까요.
미국 화가 에이킨스는 화창한 봄날,
아이가 나무블럭에 흠뻑 빠져 있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나무 블럭을 나르기 위해 붉은색 말이 끄는 마차를 사용한 듯 합니다.
화가 에이킨스는 이렇게 정확한 관찰에 근거한 그림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아이들의 소중한 순간들, 언젠가는 먼 추억 속으로 사라질 추억들이겠지요.
그의 단순명료한 화풍과 스타일이 어린시절의 추억을 더욱 명확하게
잡아내고 있습니다. 그의 큰 장점이죠.
프리드리히 폰 아멜링(비엔나, 1803-1887)
<잠든 마리아 리히헨슈타인 공주> 캔버스에 유채,
발더스 리히텐슈타인 컬렉션 소장
저는 개인적으로 이 그림을 볼때 마음 한구석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군요.
이 그림이 그려지던 당시 2살이었다고 하죠. 사랑스럽고 순백무구한
아이들의 잠을 절대로 깨워선 안됩니다. 쉬잇......
이 귀여운 천사가 잠들수있게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우선멈춥니다.
티치아노
<클라리사 스트로찌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15*98cm
베를린 회화미술관 소장
어릴적 강아지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최근까지도 중국산 시추와 치와와를 키웠지요. 물론 이제는 제 곁에 없습니다.
예전 집에는 독일산 쉐퍼드가 있었는데, 누나의 말을 빌리자면
그 당시 TBC인가 하는 곳에서 <달려라 린티>란 프로그램을 했데요.
그래서 이름도 린티라고 지었다던데, 병으로 죽었다고 하네요.
그림 속 주인공은 당시 메디치 가문의 딸이었던 클라리사였고
나이는 4살이었습니다. 입고 있는 옷을 보면 역시 당시 메디치 가문의 경제력이
그대로 드러나지요. 육중한 진주 목걸이에는 사파이어와 루비가 장식되어 그 화려함을 더욱 뽐냅니다.
자신의 애견인 스파니엘 종 강아지에게 바나나를 먹이고 있는 모습이 보이죠?
아기답게 통통한 장비빛 볼우물과 짙은 검정색 눈동자가
어린시절의 매력을 더욱 강하게 드러냅니다.
파블로 피카소
<나의 첫 성찬식> 1896년 캔버스에 유채, 166*118cm
피카소 미술관, 바르셀로나
이 그림이 피카소의 작품이라고 설명하면 언뜻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어요
왜냐면 항상 입체파 그림들만 자주 본 탓에, 이런 고전풍의 그림들을 보고나서 이 사람이
그렸나 하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피카소가 이 그림을 그렸을때가 15살 사춘기 소년시절이었죠.
그는 화가이자 드로잉 교수였던 아빠를 따라 코루나란 지역으로 이사를 하고
여기서 그 또한 미술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이때만 해도 여전히 아카데미풍의 그림들이
지배적이었고, 피카소 또한 아카데미에서 형태와 선, 드로잉에 대한 기본적인
기술들을 철저하게 익히던 시절입니다. 그때의 작품이죠.
제가 첫 세례를 받았던 것이 중학교때니까, 그림 속 주인공하고 비슷하다 싶네요.
나의 첫번째 성찬식......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호아킨 소롤라(발렌시아 생 1863-1923)
<해변의 아이들> 1910년, 캔버스에 유채, 118*185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호아킨 소롤라는 참 행복한 작가였습니다.
유복하게 자랐고, 그저 그림이 좋아 그림속에 빠져서
작품들을 완성했죠. 그에겐 항상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웃으며 즐기며
살았습니다. 광기에 어린 천재라든가, 화가로서의 신화......
이런것과는 거리가 먼 작가입니다.
그래서일까? 사실 그림 속 화면들이 밝고 색채가 생동감이 넘치죠.
파도치는 모래사장과 모래를 덮은 아이들. 물기젖은 몸을 표현하기 위해
바니시(varnish)처리를 해서 윤택까지 나네요.
물기어린 모래에 투영된 햇살이 황색과 청색, 보라가 뒤섞이며
<장밋빛 인생>의 한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지요.
이때로 한번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예전 부산에 살았거든요.
누나랑 함께 해운대에 놀러가면 얼굴이 까매질때까지 놀곤 했었습니다.
테르 보르흐(1617-1681)
<사과껍질을 벗기며> 패널에 유채, 36.3*36.7cm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가 바로 일상의 풍경과
소시민들의 모습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 시대 웅장한 규모의 종교화와
그리스 신화에 매어 있던 때와 달리, 네덜란드는 상업교역으로 발전한 도시이자 최초의 시민공화정 답게
사람들이 꽃처럼 곱고, 소중하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죠.
이 세상을 움직이고 바꾸는 것은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우리들이니까요. 작은 우리들이 큰 차이를 만드는 주체란 것을 이제서야 알게된 모양입니다.
그림 속 테르 보르흐 또한 풍경화 보다는 실내의 정경과 아이들의
모습을 담는 걸 좋아했다죠. 검정색 오건디로 만든 케이프를 머리에 쓴것은
이 여인이 과부임을 나타냅니다. 야케트라 불리는 네덜란드풍 자켓을 입고 있는 엄마의 모습
그 시선은 왠지 그리 행복해보이진 않습니다. 편모가정의 아이들과 그 모습.
사과껍질을 벗기며 아마 속으로 울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볼이 통통한 아기의 눈빛은
엄마가 울지 않도록 괜히 더 쳐다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우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내일은 일찍 예배를 마치고 보육원에 가봐야 겠네요.
아이들에게도 이 그림 보여주려고 도판들을 따로 만들어서
컴퓨터에 저장해 놓았답니다. 7살 정도 되는 아이들인데
이런 그림들을 좋아할지 모르겠네요.
그림 속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왠지 마음 한 구석이 뭔가를
잃어버린 듯한 상념이 들기도 합니다. 나의 장밋빛 인생은 과연 그때가 전부였을까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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