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출발선에 섰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9288 킬로미터 표시가 보이시죠?
이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저 장구한 거리를 건너가야 합니다.
6박 7일이 꼬박 걸리는 거리입니다.
우선 블라디보스톡 보흐잘(기차역)에 가서 발권을 합니다.
발권 창구는 사진을 안 찍었습니다. 공공장소는 사진을 찍다가 혼나는 경우도 있고
사실 표를 구매하는데도 애를 원체 먹어서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카드를 받는 곳이 기껏해야 1군데 정도 밖에 없습니다. 러시아 여행을 계획하실땐
왠만하면 충분한 현금을 준비해서 가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보흐잘에서 우리가 끊은 표는 밤 11시에 출발합니다.
기다리다가 역내에서 만난 군인 아저씨와 한컷 찍었네요.
한국 담배 주면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키 차이가 굉장하지요? 거의 2미터 정도.
제게 5 센티미터만 주면 서로에게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우선 이번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의 전체적인 루트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한 기차는 이르쿠츠크를 갑니다. 물론
몽고와 중국의 하얼빈으로 연결되는 두개의 기차편도 있습니다. 그 중에 모스크바 라인을
타는 것이죠. 바이칼은 이르쿠츠크에서 2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답니다.
이번 여행은 전체적으로 블라디보스톡-이르쿠츠크-옴스크-예카테린부르크-모스크바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연결되는 장구한 과정입니다. 그림 속에 청색의 굵은 선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횡보를 나타내고요. 백색 실선은 연결편을 의미해요.
시간으론 꼬박 6박 7일 8개의 시간대를 통과해서 가야 합니다.
이번 열차 여행은 도시별로 여행을 해야 합니다. 이 경우 한국이라면
각 주요 도시마다 스톱오버(단기 체제)를 할 수 있는 종단 티켓이 있겠지만 러시아는 사정이 다릅니다.
다시 말해서 도시별로 티켓을 하나하나 다시 끊어야 한다는 점이죠.
더 재미난 것은 예약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최근에는 여행사나 에이전시를 통해 구매할 수
있습니다. 여기엔 예전 소비에트 시절, 스탈린이 표의 사재기를 막기 위해 원천적으로
예약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고 사람들 또한 여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인 셈입니다.
티켓 센타에 가서 드디어 이르쿠츠크로 가는 기차편을 샀습니다.
자 오늘은 실제적인 이야기들을 좀 하겠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역사나 뒷 이야기 혹은 재미있는 소사는 다음 편으로 하고요
러시아 여행하면서 표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너무 고생을 한 관계로
자신이 산 표가 제대로 산 것인지 적어도 확인을 하려면 기초적인 독법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누굴 초등학생 취급하느냐 하실지 모르겠지만 정작 표 살때 준비하지 않고 가시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되실거에요.
표를 보시면 기차 번호에서 출발일자/출발시간을 보실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도 주의점.....하나 : 러시아 횡단열차의 시간은 모스크바 시간을 기준으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흔히 프로보드니차(provodnitsa)라 불리는 승무원에게 여행중에도
그곳 시간을 물어보시고 시간을 맞추시는 게 좋습니다.
Carriage Number 라고 있습니다. 객차 번호가 되겠는데요
표에는 K라는 표시가 보이실거에요. 바로 Kupe 2등칸을 의미하고요
JI는 침실이 두개인 일등칸, M은 침실 4개짜리 일등칸, II는 플라츠카르타라고 해서 3등칸입니다.
침실(Berth)이 6개랍니다. 그리고 O는 옵시치라고 해서 그냥 좌석인데요.
대부분 하루코스 정도를 탈땐 이걸 타셔도 되요. 그런데 Bed가 달린것과 그리 비용이 차이가 안납니다.
Berth Number라고 되어 있는 것이 흔히 자신의 침대번호입니다.
이것 보고 잘 찾아가시구요. 이외에도 자신의 여권번호와 도착일자와 시간, 표값도 다 나옵니다.
(지금 그나마 영어로 적어놓으니 그렇지 현지에 가서 바로 러시아어로 쓰인 표 보시면 당황해요-꼭 익혀두세요)
보시는 사진이 바로 저희 4명이 탄 플라츠카르타 6인실입니다.
오른쪽 하단의 침대는 접어서 오전에는 테이블로 쓸수 있습니다.
쿠페와 플라츠카르타가 가장 크게 차이나는 건, 쿠페의 경우는 문이 달려 있어서
사생활이 안전하게 보장된다는 것이고요. 여기에 비해 플라츠카르타는 개방형이어서
좀 낮가림 심하시면 처음엔 좀 어렵긴 한데, 겨울이라 한산해서 그런지 저희는 재미있게 탑승했습니다.
실내는 항상 따뜻합니다. 반팔 여분 가져가시는 게 좋고요.
사진에서 보시듯 침대 4개가 상하로 붙어있고 가운데 테이블이 있어서
주로 이곳에 모여 식사를 하거나 책을 읽어나 그럽니다.
오른쪽의 사진은 사모바(Samovar)라고 해서 주전자란 뜻인데
여행하는 동안 항상 뜨거운 물을 마실수 있도록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이 주전자가 있어서 저희로서는 사발면과 햇반을 문제없이 먹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침대칸을 타면 흔히 린넨(Linen)이라고 흔히 한국말로 호청이라고 하죠
이불이랑 베개랑 공동사용하다보니 겉에 씌워서 쓸수 있도록 하얀색 천을 줄겁니다.
표를 보여주면 그때 승무원이 하나씩 챙겨주지요. 비닐이랑 잘 챙기셨다가 하차하실때 반납하시면 되요.
아차.....그리고 사진에서 남자분이 앉은 침대칸 아래는 짐을 넣을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습니다. 여기에 베낭과 음식물들 정리해서 넣으셔야 하고요. 열차를 타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 음식들을 한짐 싸서 탄다는 점 잊지마세요.
테이블위에 저희들이 싸서 간 식량들을 조금식 정리해서 놓았습니다.
아주 일부란 점 잊지마시고요. 제가 45리터 짜리 베낭을 들고 갔는데 그 중에서 옷을 제외하곤
대부분 먹을거리였다는 점 잊지마세요. 굉장히 긴 나날을 열차에서 보내셔야 합니다.
컵라면은 부피를 줄이기 위해 일일이 포장을 뜯어 해체한 후 락앤락에 담아갔습니다.
이르쿠츠크를 가는 과정에도 수십개의 역에 잠시
하차해 손님을 받기도 하고 차체 정리를 합니다. 이때 많은 남자분들은 나와서
담배를 피거나 스트레칭도 하고요. 저도 나가서 가볍게 산책하고 몸도 풀고 그랬답니다.
시베리아를 관통하는 횡단열차다 보니 중간 중간 내려서
승무원들이 열차의 이상유무를 점검해요. 제가 사진으론 안 올렸는데
뜨거운 물을 계속 부어서, 눈에 얼어붙은 기관 부분들을 녹이더라구요. (이 사진이 너무 특이해서
다음에 보여드릴께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가다가 작은 간이역에 내려
식료품을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값은 상당히 저렴합니다. 잔돈을 좀 많이 준비해서
가시면 좋을 듯 해요. 아래 사진에서 보시듯 내리면 여러명의
상인들이 임시 가판대를 만들어놓고 물건을 판답니다. 주로 먹거리인데
음료에서 러시아식 소세지, 빵과 과자, 과일 등 아주 다양하고 구운 생선도 팝니다.
개인적으로 빵을 좋아하는 지라, 파삭파삭한 크리스피 느낌이 층층으로 진
케익을 하나 샀습니다. 4명이 먹으려고 샀는데 1200원 정도니까 정말 저렴한 셈이죠.
즐비하게 서있는 자작나무 숲이 보입니다.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의 8할을 차지하는 건, 러시아의 대표 수종이자
국수인 자작나무입니다. 거의 20미터 까지 높다랗게 자라며 가지런히 질서감을 유지하며
서 있는 저 자작나무는 동토의 제국, 러시아의 앙상한 겨울 풍경을 메워주는 정신의 풍경입니다.
흰빛을 띠는 나무껍질은 옆으로 얇게 벗겨지는 데, 그 속에서 발산되는 수액은
러시아인들의 반주를 빚는데 사용되지요. 타원형으로 우아하게 뻗는 자갈색의 잔가지와
달걀형의 잎은 러시아인들의 영혼을 위무하는 자연의 옷가지 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자작나무는 특히 항균작용이 좋아서 러시아인 특유의 스팀 사우나인
반야(Banya)에선 이 자작나무 가지를 서로 들고가서 상대방의 등을 쳐줍니다.
그렇게 하면 죽은 세포조직이 활성화 된다고 하네요.
열차를 타고 가는 도중 만나는 수많은 산촌들의 풍경
적요한 러시아의 방대한 대지를 수놓은 초록빛과 황색, 하늘빛의 지붕들이
마치 산재된 섬들처럼, 우리들의 망막에 입혀질때쯤
기차는 바이칼을 향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적지 내가 끌고 온 길은 온전히 하나일 수 없는 두 가닥의 레일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철로의 운명이
어느 순간 기적이 되어 울음을 터트린다는 것이다
왜 단 한번도 불이 되어 타오르다, 재가 되어 사라지지 못했는가
차라리 얼음덩이가 되어 온전히 배반하지 못했던가
불도 얼음도 아닌 단 한번도 이탈하지 못한 자의
지리멸렬한 감옥을 몇 번이나 지었다 허물었는가
날개를 달아주지 못한 새들의 울음을 저 숲은 기억할 것이다
차창 밖 화려했던 개화의 시절도 잊고 고꾸라진 연밥의 풍경을 스쳐지나면서
내 생의 함께했던 아름다운 이름들과 다가올 신생의 봄날을 생각했다
이정자의 <기차를 타다> 전문
바이칼로 향하는 3일동안 기차에선 많은 풍경들을 만나고 조우하고
헤어집니다. 세상의 모든 풍경은 내 안에 있는 풍경이란 걸 다시 배우고 말지요.
다음 시간엔 오늘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그리고 1등칸, 2등칸, 화장실 사용법
사람들 사귀는 법, 재미있는 러시아식 인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계속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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