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당신의 가족은 안전합니까?-미술 속 영화 <조용한 가족>

패션 큐레이터 2007. 11. 19. 13:10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인사동과 사간동 거리를 걷습니다.

반 고흐전과 같은 블록버스터 전시가 곧 다가오고 있지만, 그래도 작은 갤러리들

마실 다니는 재미또한 솔솔합니다. 쌈지길 들러 떡매 치는 아저씨 모습도 담고요.

 

저번에 소개해드린 왕열 선생님 전시가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어서

그 곳에 갔습니다. 왕열선생님께 인사도 드리고 이미지가 담긴 예쁜 캘린더도 선물로 받았습니다.

<동행>시리즈가 인기가 많은지 저 또한 작은 소품이라도 하나 할려고 했는데

이미 다 판매되고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인사아트센터에서 매 정시마다 출발하는 미술관 순회 버스를 타고

평창동 지역으로 빠졌습니다. 오늘 소개할 전시는 꽤 특이한 느낌을 주는 조형작품들입니다.

키미 아트 갤러리에서 열렸는데요, 올라가는 길 늦가을 기운이 너무 완연한 탓일까

겨울에도 잘 하지 않는 머플러 사이로 바람이 스며듭니다.

 

 

신인작가 유진영의 개인전 <어서오세요/어서가세요>전은

무엇보다도 현대의 가족이란 개념을 다룹니다. 최근들어 한국사회도 가족해체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전통적 개념의 가족개념들이 점점 더 희박해 져가고 있지요.

 

 

작가는 사람들의 은신처인 집을 배경으로 가족의 진실과 허상을 그려낸 작품을 선보입니다.

작가의 이전 작품이 사회 속에 갇힌 인간상을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가정이란

울타리 속으로 작품세계를 이동시켜, 가정이라는 극히 제한 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통해

가족간의 내면을 심도 깊게 들여다 보는 것이죠.

 

 

전시가 열린 키미아트 갤러리도 일반 가정집을 갤러리로 전향한 곳인데요

집의 컨셉에 맞게 이번 전시는 3부로 나누어서 각각의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가족들의

상황을 표현합니다. 명절 때 찾아오는 손님들, 친지들, 그들에게 보이기 위한

화목한 가정의 이미지를 위해, 사람들은 서로에게 가진 감정의 응어리들을

억압하며 누르게 되지요. 그런 모습이 투명한 유리조각에 덧입혀진

화려한 꽃무늬를 통해 오히려 아이러니 하게 나타납니다.

 

 

저는 이번 전시를 보면서 시종일관 예전에 보았던 영화 <조용한 가족>을 연상했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은 당시 한국사회가 언급하기 꺼려했던

가족주의를 비트는 메세지를 영상을 통해 보여주었지요.

 

 

다소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한 가족들의 모습

가족의 결정을 위해 자신을 버려야 하고, 살인과 엽기적 행각을 서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 점점더 멀어져가는 가족 간의 유대관계를 논평하고 있습니다.

 

 

 

유진영의 조형에는 하나같이 화려한 꽃무늬가 새겨 있습니다.

그것은 각 인물들의 의상과 방 실내 장식, 커튼 등 다양하게 나타나는데요.

이 꽃무늬가 유려하기 보다는 뭔가 자신을 속이는 가면의 역할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매체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전체적인 느낌은 매우 암울합니다.

 

 

볕이 잘 드는 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이번 11월호 <퍼블릭 아트>지를 살펴봅니다.

Art In the Street란 표제로 온라인 상의 미술 블로거들이 올린 공공미술 관련 사진과 자료들이

정리되어 나왔습니다. 오른편 상단부의 조형물 눈에 익으시죠?

제가 하꼬네 조각의 숲 미술관에 대해서 소개할때 보여드린 사진이잖아요.

저에 대한 짧은 소개와 함께 사진이 실려서 기분이 좋았답니다.

 

 

유진영의 조형 속 가족의 의미들을 다시 한번 새기며 천천히 길을 따라 걷습니다.

공공미술의 힘이 조금씩 서울거리의 실루엣을 바꾸고, 도로를 걷고 싶은 곳으로 변화시키고

 그렇게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갈무리 합니다.

 

그러나 결국 돌아오는 것은 우리 자신의 내면과 그 풍경의 방식을 살피는 일이겠지요.

가족의 해체를 무슨 당연한 사회학적 수순이란 식으로 떠들어대는 학자들의 이념이 요즘따라

영 마뜩찮은 것도 이러한 이유일것입니다. 이 도시 한가운데에, 한장의 연탄이 아쉬운 사람들, 88만원 세대의 젊은이들이

삶에 대한 자조속에 그렇게 하루하루 꽃무늬 가면을 쓰고 겨우겨우 버티고 있습니다.

낮은 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하는 행복의 조건은.....다시 한번 낮은 곳으로 흘러야 합니다.

 

무상 임대 아파트 8층 복도,
한 덩이 어둠을 치우고 걸어 들어간다. 복도가 골목 같다.
이 골목은 일체의 벗어남을 허용하지 않는다.
복도가 직장이기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도를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
복도에게 사표를 낸다는 것은
극빈(極貧)의 뜻이고, 담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일층으로라는 의미를 지닌다.


저승은 일층에 국한되어 있었으므로,
고층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시 죽음과 내통하는 셈이다.
작년, 두 사람이 일층으로 순간 이동했다.
올해는 벌써 두 명분의 숟가락이 고층에서 주인을 퍼다버렸다.
몇 사람 더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으니
한두 집 더 공간이 늘어날 것이다.
밤하늘은 눈치가 빠르다.
미리 조등(弔燈)을 내걸었다.
사람들은 아파트 속에 조의금처럼 들어앉아 있다.
일부는 여전히 복도를 서성이다가
아무런 말없이 1층을 내려다보곤 한다.
이곳에서는 침묵도 하나의 종파(宗派)가 된다.
사람들은 침묵을 광신도들처럼 따른다.

 

이동호의 <조용한 가족>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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