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미술 속 여인들의 풍경-피겨의 여왕 김연아를 만나다

패션 큐레이터 2007. 11. 16. 01:44

 
김혜연_은반의 여왕_요철지에 채색_204×146cm_2007

 

저번 주 시간을 내어 인사동에 나갔습니다.

어슴프레 젖어오는 늦가을의 햇살이

그리움에 쩔은 듯 다가오는 어둠의 향기를 껴안는 시간

늦었지만 전시를 보고 싶어 우연히 들어간 갤러리에서 아주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했습니다. 작가 김혜연의 그림 속 여인들은 하나같이 화가 자신의 자화상입니다.

 

물론 <은반의 여왕>은 피겨 스케이트의 여왕 김연아를 그린 것이지만

 얼음을 신나게 지치며, 화려한 폐곡선의 우아함을 드러내는

김연아의 멋진 스케이팅 장면을 '자기자신'과 동일화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빠져봅니다.

그녀의 그림 속 긴 팔과 다리를 가진 김연아 선수도 그리 나빠보이지 않는데요.

 



김혜연_전철풍경Ⅲ_요철지에 채색_102×72cm_2006

 

요철지에 수간채색을 통해 단순하면서도 왜곡된 형태를 그려내는 그녀의 작품 속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여인들이, 작가 자신의 다양한 면모를 빌어

재현되어 있습니다. 아침 전철 속, 출근을 준비하는 여인의 모습, 잠들어 있는 아이와 할머니

문득문득 지하철의 고요를 깨우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녹아 있음을 발견합니다.

 



김혜연_머리하는 여자_한지에 채색_108×84cm_2006

 

길게 늘어난 얼굴과 손과 발 그리고 요철지에 드리운 부드러운 질감.

 그 아래에 깊은 침잠 속에 젖어들어가는 색채의 톤, 어둡고 단순하게 처리된 배경 속의 신산함

산란하는 빛처럼 여러개로 퍼져있는 시점들이 공존합니다.

 

그녀의 그림을 보다보면 마치

 이집트 벽화를 보듯 평면성을 강조하면서 얼굴 정면 보다는 측면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의 일상에 대해 매일 매일 기념하는 비석을 세우듯, 비루하고 소담하게 배치된

일상의 무늬에 아로새겨진 사람들의 미묘한 심리와 육체적 형상들이

왜곡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요. 머리를 마는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김혜연_미용실 풍경_요철지에 채색_73×136cm_2007

 

미용실에 갈때마다 여인들의 수다를 듣습니다. 때때로 퍼머를 하고 가열기에

머리를 엊고서는 조용히 잡지를 읽거나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는 여인들의 풍경도 눈에 들어옵니다.

작가의 그림 속 여인들의 머리하는 모습이 지금 우리시대를 채색한 풍속화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녀의 그림이 갖는 또 하나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김혜연_가족사진_요철지에 채색_204×146cm_2006

 

김연아의 그림으로 오늘 포스팅을 시작했습니다만

사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치열한 삶의 전투를 천 송이의 꽃으로 말하다>였습니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에게 그 도전의 과정이 치열한 전투였고, 우승을 따낸 그녀가 국민 여동생이 되는

그 값진 결과가 일종의 꽃이 되어 피어가는 과정.

 



김혜연_카드를 쥔 여자_요철지에 채색_100×72cm_2007

 

비단 피겨 스케이트의 여왕 김연아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이 땅에서 주체적인 삶을 꿈꾸며, 자신의 얼굴을 가꾸어 가는 많은 여성들을 만날때마다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여기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꾼다는 것은

단순하게 성형중독에 빠져있거나, 명품 화장품에 빠진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굴, 그 중에서도 눈동자는 사람의 영혼을 읽어내는 창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눈빛을 통해 그가 살아온 궤적과 삶의 방식

태도 및 입장, 타인에 대한 배려 모든 것들을 읽어내니까요.

얼굴을 가꾼다는 것은 내 영혼의 창인 눈빛을 벼린다는 뜻입니다.

 

삶의 모든 국면에서 남자와 대등한 삶을 꿈꾸고, 의사결정권을 가지며

다양한 선택의 카드를 가진 여성. 이제 우리 시대는 그런 여성의 탄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김혜연_구두가게_요철지에 채색_100×83cm_2007

 

구두를 산다는 것이 그저 된장녀의 표징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은 나를 드러내고 나를 말하는 생의 소품 정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김혜연_우뚝서다_한지에 채색_148×102cm_2005

 

생의 면면, 자신의 삶과 일과 사랑을 소중하게 여기며

우뚝서는 여인들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우뚝선다는 것은 혼자만이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것이

아닙니다. 절반의 타자, 남성의 삶도 이제는 제대로 지켜보고, 그들과 함께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짐을 함께 지고, 견뎌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양성평등을 지향한다는 거짓말을 하는 지금의 여성주의를 싫어합니다.

 

양성성의 시대에서는 더 이상의 여성주의는 힘을 잃습니다.

대학에 나가서 아이들 앞에서 말을 할때, 혹은 여자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이야기 합니다.

여성으로 살기전에,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자고, 투쟁위주의 이념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내 몸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배우자고 이야기 합니다.

 

 

화랑에서 잠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작가로서 어떠한 횡보를 보일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견고한 미소 속에

손을 모으며 그림을 그리는 일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작가의 변에는

이 부족한 미술 블로거의 마음을 한번에 사로잡고도 충분한 힘이 느껴집니다.

이런 투명한 만남이 저는 참 좋습니다.

 

작가의 미래가 그녀가 그림 속 여인들처럼, 그것이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한 만큼

피겨의 여왕이어도 좋고, 가정을 지키는 여신이어도 좋고, 자신을 가꾸는 여인이어도 좋습니다.

우뚝선 모습, 당찬 모습, 그런 여인들의 눈빛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

그 눈빛을 가진 여성들 모두, 제 2의 제 3의 김연아가 될것 같습니다.

좋은 전시를 본 날은 항상 기분이 충전됩니다.....환한 가을빛으로 말이죠.

 

오늘 들으시는 곡은 1978년 아주 오래전 나온 영화의 OST 입니다

바로 Ice Castles란 영화였는데 여기 주인공이 피켜 스케이트 선수였거든요.

사고로 시력을 잃지만 사랑을 통해 다시 재기하는 이야기였어요. 참 오래전 영화지만 기억에 남네요.

가사가 참 좋습니다. 들어보세요. 김연아 선수의 아름다움 꿈을 응원합니다......

  

31967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