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만큼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패션 단품은 아마 없지 않나 싶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패션 아이템을 고르라면 이 청바지를 주저없이 뽑는다.
청소재는 기존의 바지를 넘어서 다양한 아이템과 결합되면서 새로운 패션을 만들어 내고 있다.
최근에는 가죽의류와 결합되기도 하고, 무스탕 소재와 연결되기도 한다.
아래처럼 여성용 비키니를 만드는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원래 우리가 알고 있는 청바지는 그 소재의 특이성 때문에 더욱 알려져 있다.
데님(Denim)이란 소재를 쓰는데, 이것은 불어인 세르주 드 님의 단축어다. 이것은 돛을 만들던 능직을
의미하는데 그만큼 튼튼하고 견실해서 작업복으로는 안성마춤이다. 원래 직물은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며 만들어 내는
일종의 그림이다. 데님은 날실이 표면에 드러나는 능직구조를 취하고 있고,
날실에만 인디고 블루의 빛깔을 염색한 것이다.
1970년대 프랑스의 학생소요 시 학생들의 패션-청바지를 입고 있다
원래 미국에서 리바이 스트라우스란 상인이 당시 골드러쉬에
몰려든 사람들을 위한 작업복을 이 데님소재로 만들어 생산하면서 청바지는 세상에 나타난다.
청바지가 노동자의 의복에서 젊음과 저항을 표현하는 하나의 코드로 작용하게 된 것은
1950년대의 헐리우드를 위시로한 문화적 세례때문이다.
리바이스 501 디자인-리바이스 라인의 가장 보편성을 드러낸다
1950년대란 결국 유럽과 미국 양쪽에서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
기존의 도덕주의에 대한 강한 불신이 팽배해 있던 시대였고, 여기에 영화나 TV 등 대중 매체의 보급에 따라
스타가 탄생하게 되는데, 당시 유명 스타였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제임스 딘(James Dean) 등이
착용하였던 가죽재킷과 청바지 ‘리바이스 501’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되기 시작하였다.
랭글러니 리바이스니 하는 브랜드들이 이때 이미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후 청바지는 또 다른 세대적인 변혁을 겪게 된다.
남녀 공통이 입는 의상에서 세로운 섹슈얼리티와 성적의미를 갖는 패션으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1970년대 후반 등장하기 시작한 캘빈 클라인의 광고는 특히 성적인 메세지를
강하게 담아냄으로써 매출을 올리는데 일조했다.
이후 다른 디자이너들까지도 그의 광고전략을 수용하여
이때부터 대부분의 패션 청바지는 섹시컨셉에 기초한 이미지들을 창조하게 된다.
왜 청바지가 인간의 성욕 혹은 섹슈얼리티를 상징하는 문화적
코드로 발전하게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여기엔 데님 소재 자체의 거칠음에
일차적인 의미들이 만들어진다. 도시는 거세된 욕망으로 가득찬 공간이며
그 속에서 청바지는 길들여지고, 완화된 인간의 성욕을 특유의 거칠음으로 욕망의 표면까지
토해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뿐만이 아니다. 데님은 각 나라로 그 유행의 범위를 넓혀가면서
각 나라의 토착의류 및 소재와 결합하면서 에스닉한 민속풍의 뉘앙스까지 풍기는 옷으로 발전한다.
1970년대에 들어가면서 이러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쿠튀르 진이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한다.
당시 리바이스보다도 70퍼센트나 비싼 가격이었지만, 디자인의 특이성으로 인해 진 패션 시장의 한 부분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카테고리로 발전했다.
위에 보시는 작품은 일본의 디자이너 미즈라가 2006년 발표한 기모노 진이다.
기모노 소재를 사용하여 부분 부분 트리밍 처리를 해서 거친 데님의 질감에
일본 고유 복식인 기모노의 우아함과 여성미를 결합시켰다.
캐롤린 캘빈 <사랑과 평화-리바이스 501> 2006
캐롤린 캘빈은 가로 12피트/세로 22피트에 달하는 거대한 캔버스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는 35벌의 청바지가 사용되었다. 흔히 말하는 <입을수 있는 예술, 웨어러블 아트>라고 불리는 것이다.
작가가 세계를 여행하며 수집한 다양한 개인소품들을 이용하여 빈티지 버튼을 만들어
붙여 그 예술성을 더욱 높였다.
가츠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
캐롤린 캘빈의 작품은 원래 위에 보시는 일본 에도 시대의 대표적인 미술인
우키요에의 12 거장 중, 한명인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작품을 청바지를 이용하여 패러디 한 것이다. 호쿠사이는
풍경과 아련한 여인들의 초상화를 잘 그린 화가였다. 다감한 시인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서구 문물이 물밀듯 들어오던 에도막부 시대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파도의 포말과 형태들이 눈길을 끈다.
캘빈의 작품에는 이런 파도를 넘어 존재하는 사랑과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난 생각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리바이스를 위시로 한 미국적 문화 제국주의가
평화란 이름으로 위장된 채 나타나는 것 같다. 거대한 파도처럼 우리 앞에 말이다.
최소영, 포구정경, 캔버스에 데님, 2004,
청바지는 이제 예술의 장르에 까지 도입된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신의 포구와 마을정경을 청바지를 오려 다양한 패치워크로 표현해낸
작가 최소영의 작품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사실주의풍 작업들을
좋아한다. 물론 예전에 알고 있던 시절보다 그림값도 수백배 뛰어버린 작가이기도 하다.
최소영 부산 비엔날레 설치작품 <옷을 입어보자> 데님 소재. 2006
작년 부산에서 열린 비엔날레에서 그녀가 선보인
데님 소재로 만든 설치작품이다.
최소영 <옷 속의 우리마을> 2004년, 데님 소재
난 최소영의 작품을 아낀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데님이란 거친 표면의 질감을 통해서도
이렇게 따스한 인간의 마을을 사실적으로 표현해냈다는 점이 놀랍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에는 항상 이러한 따스함이 온 도처에 녹아 있다.
아내는 오늘도 청바지를 입는다.
환율이 무엇인지 주식이 무엇인지 도대체 오르내림엔 감각이 없는 우리 가족,
포플러 잎 넓어진 이 여름날 할아버지 생신잔치 가는 길,
아내는 또 숱한 생각으로 범벅이 된 가슴에서 그 빛 바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아침마다 나보다 먼저 일어나 방 세 칸짜리 집을 그리며 공장에 나갈 때도
지난달 누가 더 궁색한가 고만고만한 친구들끼리 만나던 동창회 날에도 아내는 청바지를 입었다.
아이들이 물으면 색이 바래 더 멋있는 거라고 웃음을 삼키는 아내,
허리에 살 오르지 않아 몇 년째 입어도 꼭 맞는다고 눈가에 주름 숨기며
내게 늘어놓는 자랑이 어설픈 아내,
숱 많지 않은 머리에 반짝이는 하얀 새치가 이쁜 아내,
오늘도 텅 비어 사랑만 드나드는 옷장에서 청바지를 꺼내 입는 아내,
내 눈물 마른 가슴에 꽃을 심는 아내
김승동 <아내의 청바지> 전편
지금까지 청바지에 녹여있는 다양한 문화적인 코드를 읽어보았다.
옷 하나에는 참 다양한 얼굴들이 감추어져 있다.
김승동의 시에 녹아 있는 아내의 노곤함이....노동자의 힘든 생의 무게가 그렇게 베어 있는 옷
이 청바지를 내일도 입고 출근을 해야 하나보다....아참 블랙진이지 내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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