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빛으로 그린 그림

그곳에 가고싶다-뭍의 끝에 서다

패션 큐레이터 2006. 11. 24. 20:37

 

 

땅 끝에 가본적이 있는가?

예전, 호주 전역을 여행할때, 내 마지막 기착지는 바로

호주 동부의 마지막 땅끝마을이었다.

 

땅끝에서, 마지막 뭍의 흔적을 밣고 서서

펼쳐지는 바다의 풍광을 바라보다, 그만 서럽게 울어버린 적이 있다.

이 끝에서 더이상 갈수 없음이 서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이상 파편으로 만들어 낼 대지의 분수령이 없음에 대한

회한과 어리석음.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이 다시 시작하는 것임을 알기에

바다와 닿지 못하는 내 생의 계면은 푸른 바다빛을 감싸안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처연히 땅의 빛깔위에 조그만 융기 하나 만들고 돌아오고 말았다.

 

 

오늘은 프랑스 출신의  신예 사진작가

스테판 로쉐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작품집 이름은 '땅끝....여행'

작가는 덴마크에서 세네갈에 이르는 11개국의 땅끝마을들을 촬영합니다.

 

세상의 모든 저녁 3

또 하루가 어두워지려 한다
출구를 자기 뒷모습에 두고
유리창에 팅팅 몸을 부딪는 날파리처럼

헤비메탈을 부르다 뽕짝으로 창법을 바꾸는
그런 삶은 살지 않으리라

간성 가는 길, 淸問亭에 앉아 저무는 동해를 본다
저 바다를 어찌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나무는 서 있고, 슬픈 육체여
지나온 사랑의 출렁거림 앞에서
난 아직도 망연자실하다

어스름 해변엔 청춘들이 모여 기타를 튕기고
제비새끼같이 노랗게 벌린 입 속의 떨리는 목젖
다들 자기를 튕겨 저녁에 안기는 법을 알고 있을까

목숨의 등대인 듯 안간힘으로, 노래가 불을 켜들 때
구멍 난 세상의 캄캄한 울림통 속에서
내 가슴도 멍멍하게 따라 울렸다

 

땅끝에서는 모든 것이 망연자실에 빠지고 맙니다.

더이상 나아갈수 없음에 대한 슬픔, 하지만 이 돌아올수 없는 무한의 끝선에서

우러나오는 '다시 돌아가야 할 곳'에 대한 희망을

새롭게 만들며, 그렇게 왔던 길을 되돌아, 생의 준거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길은 여러겹의 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입니다

때로는 고혹적이고, 애로틱한 여인의 몸을 보기 위해 시작한

이 걷기의 유장함, 한장의 옷을 벗기면, 그 옷자락에만 새겨있는 사연의 구불거림을

담아내기도 어렵다는 걸, 그래서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같이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퇴근길.....명멸하는 도시의 실루엣이

우리가 지어놓은 모더니티의 도시, 자연과 대척의 지점에 선 이 장소적 개념에서

새롭게 감춤과 드러냄의 욕망을 보일때마다,

 

아직 우리에겐 가야할 땅의 끝이 있고

그곳에서 다시 돌아와야 할 내 생의 축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은 그냥 열심히 내 정신의 기갈에 미만한 빛 목을 축이고 이렇게 돌아오고 맙니다

 

문득 어디론가 참 떠나고 싶은 때입니다.

무녕하십시요, 그리고 풍경 속에  베어있는 상처들의 무늬들을

감싸안고 이 겨울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또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

 

 유이치 와타나베의 연주로 듣는 Encounter 입니다

길의 끝에서, 우리가 좌절하지 않는 것, 우리의 생의 끝에서도

여전히 희망의 근거를 믿는 것은, 그 끝에서 새로운 '만남과 조우'를 꿈꾸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저녁 되세요, 이상 홍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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