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서양화 속, '글루미족'을 찾아서

패션 큐레이터 2007. 2. 6. 23:47

21988

 

요즘 '글루미족'이란것이 뜬다죠? 일종의 문화 현상처럼

우리 앞에 새로운 유행을 예고하며 나타난 이 글루미족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제 Daum UCC에 글루미족에 대한 이미지와 자료들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봅니다. 오늘은 서양 미술속에서

이런 도시 속 글루미족들의 이미지를 예리하고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해온 거장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살펴봅니다. 그의 그림 속 뉴욕의 풍경 속

인간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지금 현재 우리 시대를 강타하는

글루미족이란 용어도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잉태되어온 문화적 씨앗이

발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져보게 됩니다.

 

 

에드워드 호퍼

'볕이 드는 카페테리아에서' 1958년

캔버스에 유채, 102.2*152.7cm, 예일대학 미술관, 뉴 헤이븐

 

1년 전엔가 키이스 케라지란 경영 컨설턴트가 쓴 '혼자서 밥먹지 마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혹시 번역상에 의역을 했나 싶어 원전을

찾았더니 원어제목도 Never eat alone 이더군요.

 

지금까지 비즈니스맨으로 살아오면서 가장 어렵고도 힘든 부분은

누가 뭐라해도 '사람들의 숲'을 통과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사업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소개받거나, 혹은 도움을 주거나,

조언을 구하거나, 혹은 의견대립이 생겨 서먹하게 되거나 하는 수많은 일들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작가는 다양한 방법과 기술을 친절하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결국 결론은 하나. "혼자 밥먹지 마라, 당신의 식탁에 타인을 초대하라"는 것입니다.

 

호퍼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근대, 모더니티의 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그려진 그림들이 많지요. 그래서인지 강철로 지어진 기능주의의 도시, 뉴욕의

애잔한 소외감이 누구보다도 강하게 베어나옵니다.

 

 

에드워드 호퍼

'차량 C 칸' 1938년

캔버스에 유채, 50.8*45.7cm, IBM 기업 콜렉션 소장

 

요즘 글루미족에 대한 정의들을 찾아보니, 혼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여행이란 그 자체가 외로움의 산물은 아닐겁니다.

호퍼의 그림 속,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는 여인의 여유와 그 속에 묻어나는

왠지모를 쓸쓸함이 바래가는 초록빛 시트의 의자를 배경으로

일어납니다.

 

 

에드워드 호퍼

'자동판매식 식당' 1927년

캔버스에 유채, 72.4891.4cm, 드무안 아트 센터 콜렉션

 

자동 판매기에서 커피를 뽑아 편안하게 마시는 여인의 모습

뭐 지금의 우리들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글루미족을 가리켜 고독을 세련되게

즐기는 족속이라고 하더군요. 뉴욕 시 최초의 혼앤드하다트오토맷은

1912년 타임스스퀘어에 문을 열었습니다. 1924년에는 오토맷의 음식을 미리

포장하여 판매하는 최초의 포장판매 체인점으로 그 명성을 날리게 되지요.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 글루미족, 그들의 모습은

이미 1920년대, 대량생산과 산업체계를 통해 편이함의 방식을

설계했던 그 시대의 풍경 속에서 시작된 씨앗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에드워드 호퍼

'뉴욕 극장' 1939

캔버스에 유채, 81.9*101.9cm, 뉴욕 근대 미술관

 

1970년대 중반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였던 리차드 세넷은 <공적인간의 몰락>

이라는 명저를 세상에 선보입니다. 그는 책에서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사람들은 더욱 내면의 세계에 천착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공적 영역은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요. 사실 그의 분석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에서

많은 부분, 그 영향을 받았습니다.

 

개인은 이제 자신만의 공간 속에서 내면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기 시작합니다.

미술사가 이보 크란즈 펠터는 호퍼의 작품들 중 특히 영화관과 연극무대를 배경으로 한 그림들

을 가리켜, 친밀감의 독재란 제목을 달았습니다. 근대, 모더니티가 일상의 영역속에 파고들던

그때, 이미 우리들은 사람들과의 관계, 복잡다기하게 얽혀있는 생의 실타래로 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 자신만의 취미와 생각에 빠져가기 시작합니다.

 

 

에드워드 호퍼

'극장 속 고독한 여인의 좌상' 1902-4년

카드보드지에 유채, 31.8*23.3cm, 휘트니 미술관

 

사람들은 흔히 글루미 족이란 것이 사회적 관계망이 촘촘해져 가는

상황에서 좀더 자신만의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일부러 쓸쓸함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그 예전에 비해 우리의

사회적 관계들은 더욱 파편화되고 약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저 믿을 것은 나 밖에 없는 세상, 어느 누구의 간섭보다는 내 자신의 목소리에만

충실하려는 현대인의 초상이 그 속에는 오롯하게

실존의 붓을 통해 엮여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요........

 

아무리 외로워도 혼자 밥먹지 않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하네요

저는.....여러분의 생에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함께 먹고 그와 더불어 놀고 쉬라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은 한주의 시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