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Healing/내 영혼의 갤러리

[스크랩] 그녀의 미소를 사랑하다

패션 큐레이터 2006. 12. 18. 22:39

 

부산한 일과를 정리하는 시간.

후배들은 하나같이 연말이란 핑계로 연초의 계획 세우기에 필요한

숫자작업과 통계, 각종 보고서는 이 착한 팀장에게

다 맡겨 놓고선 '사랑해요 팀장님' 한마디를 던진채 길을 떠납니다.

 

이틀째 폭탄처럼 내린 눈으로 대지는 온통

하얀색으로 물이 들었지만, 습하고 음험한 시간이 드리워질수록

따스한 생의 여울목 마련하지 못한채, 추운 음지에서, 차가운 거리의 벽면을

소재삼아 지내야 하는 분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눈이오는걸 좋아하는 이유는 눈이라는 것이

우리를 둘러싼 풍경에 가하는 일종의 힘 때문이지요.

그것은 우리 눈에 펼쳐지는 시각적 정보의 폭력을 깨끗하게 흰색으로 갈무리

해버림으로써 사물의 모든 것을 단순화 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연말이 되면, 회환과 망각이란 두개의 심리적 기제를 이용해

지나온 시간의 결을 더듬거나, 불쑥 튀어나오는 상처들, 세월의 힘 속에서 미처 묻어두지 못한

것들을 처리하는듯 합니다. 그래서 한잔의 술에 취하고,

또 다가올 시간의 희망의 끈을 접합하지요.

 

오늘 점심시간에 간단하게 직원들과 스파게티를 먹으로

나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서 별렀던 한권의 책을 샀습니다.

소설가 김형경의 <사람풍경>이란 책입니다. 여행과 심리학의 기본적인 용어들이

잘 버무려 진것이, 무엇보다도 좋고 그녀의 여행과정들이

제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사실 제가 이 책을 사게 된 것은 <사람풍경>이란 제목 때문입니다.
저는 풍경이란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뭔가 내가 어울리고 있고, 나를 둘러싼 생의 테우리가
있다는 것 같아 좋습니다. 동양에서 흔히 내면의 풍경을 진경산수라 부르는 것은
풍광에는 여러개의 층위가 있음을 고백하는 말일수 있겠다 싶더군요.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과연 그들에게
어떤 풍광으로 다가갔을까? 나는 얼마나 그들에게 유의미한 타자였을까
이런 생각에 빠져 보다, 문득 여러분께 꼭 소개하고 싶었던 젊은 작가의 그림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하며 사람들을 만날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표정일 겁니다
화가 육명심은 전통적 한지에 이 땅의 동시대의 여인들의 표정을
맑게 걸러낸 밝은 톤으로 그려내는 작가입니다. 이미 유명세를 탓고
그녀가 그리는 여인들의 이미지는 브랜딩 작업을 거치고 있지요.
 
저는 그녀의 그림 속, 화장하는 여인들이 참 멋져 보입니다.
당차 보이고, 뭔가 소통이 될 것 같은 생각에 빠져 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자기존중감이 강한 여인들처럼 느껴져서 참 좋습니다.

 

나다니엘 브랜던이란 학자가 있습니다.
40년 이상을 자기 존중감에 대한 연구를 한 분인데요
그는 <나를 존중하는 삶>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있으며 인생살이에서
만나게 되는 기본적인 역경에 맞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며
 
 우리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고,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주장할 자격이 있으
며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또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건강한 바램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곧 희망이란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하게 하는 힘이 된다고 하더군요
화가의 그림 속, 스트라이프 무늬의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모습이 단아하면서도
올곧아 보이는 소롯한 느낌을 발산하는 것은 그녀의 긴 손끝 아래
모이는 여성의 미와 그 힘일 거라는 생각에 잠겨 보게 됩니다.
 
사람을 만나되, 질질 끌려다니지 않으며
'내가 사랑하는 나'를 위하여 때로는 도도하고, 도드라지고,
자존심도 세울수 있으며, 당연히 Non 이라고 말할수 있는 사람.
 
활기 있고 기쁘게, 자발적으로 다양한 감정을 깊이있게 체험하는 능력
자기를 활성화 하고 자기 주장을 할수 있는 능력
고통스러운 감정을 진정시키고 슬픔을 애도하는 능력
인생에서 전념할 만한 일을 정해 매진하는 능력
 
이것이야 말로 <참자기>의 기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화가의 그림 속
살포시 미소를 띠우되, 뭔가 멋쩍어 하기 보다는
거짓 겸손이나 우월감없이 느껴지는 그 미소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혼한 부모 아래서 자랐지만
능력있는 어머니 아래서 자존감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줄 아는
방법을 배운 동시대의 화가, 그녀는 저보다 한살이 어리더군요.
그래도 한지속에 채색된 생의 약동이랄까
혹은 사유하고 있는 여성미는 자신이 끊임없이 동일시하는
희망의 근거일듯 합니다.

 

 
 
그렇게 자신있게 비루하고 때로는 남새스럽기만 하다고
스스로 몰아붙였을지도 모를 그녀의 그림을 향해
" 자 제 그림좀 보세요" 하고 말을 건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자기 존중감은 천부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습득해서 터득해야 하는 삶의 기능이라고 합니다.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 삶에 책임을 지고,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고독을 참아내고
성실성과 정직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능. 자기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시작하는 것.
 

 

 

올 겨울......한 해가 다가기 전에
뭔가를 잊으려고 취하기 보다는 명활한 감성으로
제 자신을 한번 다시 바라보고 싶습니다. 글쓰기에 있어 과연 나는 몇점의
진경산수를 그렸는지, 얼마나 위선떨지 않고, 추적스럽지 않은
명멸하는 내 영혼의 껍질들, 모아다 따스한 실타래로 엉켜 내었는지
그렇게 다시 한번 바라보려 합니다.
 
여행을 할때마다 항상 사람과 마주치며
그 풍경 속에서 내가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날들이었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한해가 지나갑니다. 화가에게
친구들이 소중하고, 타자들이 소중했던 저에게도 여러분
이 블로그를 지켜준 모든 분들이 제겐 가장 소중한 친구입니다.
참 많이 감사합니다. 수직으로 내린 눈이 만들어낸 풍경 속에
하나씩 포개어 기억하려 합니다. 저는 망년이 아닌 기년을 하려 합니다.
 

 

 

 
출처 : 김홍기의 사랑이 머무는 자리
글쓴이 : 김홍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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