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행을 한지도 그러고 보니 1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사이에 간혹 한번씩 비즈니스 관계로
파리를 가거나 혹은 영화사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칸느에 가기도 했지요. 사실 프랑스는 온 도시의 빛깔이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코발트빛 바다와 직선으로 하강하는 벽돌빛 태양의 우아함을 가진 곳. 작은 시골 마을의 한적함 속에서 느껴보는
작지 않은 행복의 무게들. 이 모든 것들을 프랑스 기행에서 느낄수 있었다고 하면
과장이라 말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곳은 작은 시골마을. 망통이란 곳입니다. 이곳에 갔던 게 1996년 이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사진은 이곳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Citrus Festival, 레몬축제에 관한 것입니다.
망통 거리에 즐비하게 놓여있는 수많은 레몬 트리. 손에 쥐면 마치 사이언 블루빛에
온통 물들어 버릴것 같은 아름다운 바다, 코트 다쥬르. 이 지방 최고의 특산물인 레몬을 알리기 위하여 시작한
이 망통 레몬 축제는 올해로 71주년을 맞습니다. 작은 프랑스식 어촌과 그 삶의 고단함은 축복스러운 레몬의
상큼한 향과 더불어 새롭게 옷을 입게 되지요.
하지만 매년 열리는 이 망통 축제는 천혜의 선물인 레몬을 단순히 전시하는 축제가 아닙니다.
69회때는 피노키오를 그리고 70주년 기념에는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같이 다양한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추어 이 고장에서 산출된 레몬으로 작품들을 만들어 선보이게 되지요.
그해 주제가 정해지면 여기에 따라 주민들은 갓따낸 싱싱한 레몬을 가지고 자신의 작품들을 만들어 갑니다.
바로 이 마을에서 가장 부산한 비오베스 공원에서 선보일 자신들의 열정을 위해 땀을 흘리게 되지요.
대형작품과 소형작품군으로 나누어 전시가 되는데 보통 7개에서 8개에 이르는 대형작품들이
오랜 시간을 통해 만들어 지게 됩니다. 높이 7미터에 둘레가 20미터에서 50미터에 이르지요.
보통 1미터를 레몬으로 채우는데는 200여개의 레몬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보통 대형 작품 하나당
130톤의 레몬이 사용되는 셈이라네요.
매년 2월말부터 3월 중순까지 열리는 이 축제는 세계의 대표적인 친 환경 축제이기도 합니다.
행사가 열리는 동안 거리에 한정적으로 운영되는 가게에서는 레몬을 가지고 만든 다양한 잼과 비누과 차등을 팔기도 합니다.
미국의 호박축제와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와 더불어 세계 3대 축제로 불리워지는
이 레몬축제가 신선한 시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축제의 테마를 선정하고 이를 관리하는 방식에서 부터
축제후에 넘쳐나는 레몬 쓰레기들을 새로운 레몬 생산을 위한 비료로 사용하는 전 과정에 거치는 시스템적인 안정성입니다.
그러니 모든 축제의 전 과정이 환경과 조화된 인간의 지혜가 드러나게 되는 셈이지요.
축제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 가까운 곳에 놓여진 선물을 통해 나를 둘러싼 환경에
다시 환원시키는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비운만큼 우리는 가벼워지고 기민해지기 때문이지요.
사실 이 축제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망통은 그리 내세울 것이 없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레몬 축제가 국제적인 축제로 부각되고 발전되면서 축제를 보기 위해 오는 수많은 관광객들과
휴가객들로 인해 마을의 경제는 한층더 부유해지고 풍성하게 된 것이지요.
축제에 사용되는 레몬이 천만개가 넘고 조달 비용만 해도 백만유로가 넘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축제를 통해 벌어들이는 입장수익이 이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하네요.
그만큼 나를 예쁘게 드러내기 위해 시작된 축제가 그들 자신을 새롭게 먹여 살리는 매개가 된 셈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하고 싶었던 말은 이 축제에 단순한 칭찬이나 소개는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마을에서 소출로 거두어낸 선물을 문화적인 상품으로 잘 포장해 낼수 있는 바로 이러한
문화 마케팅적인 능력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배양하고 있는가에 대한 인식이었던 셈이죠.
고추축제니 인삼축제니 한국에도 다양한 지역 중심형 축제들이 열리기는 합니다.
물론 이중에는 보령의 머드 축제처럼 국내적으로 상당한 인기와 언론 매체의 시선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을 거둔 축제도 있습니다. 하지만 레몬 축제처럼 세계적인 수준의 축제로 성장하는 데는
많은 부분 간과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 세계 개발은행의 제3 세계 개발담당역을 맡았던 아일린 블럼의 글을 최근에 읽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글에서 밝혔던 제 3세계의 발전과 개발에 대한 철학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 지역밀착형 가내 수공업들을 벤쳐기업화 하는 것' 입니다. 그녀의 개발전략은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 응용되면서 많은 결실들을 맺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작은 어촌 마을. 하지만 지금은 세계의 모든 관광객들이
오고 싶어 하는 삶의 축제를 만들어낸 사람들. 그 성공의 배후에는 바로 이러한 지역밀착형
산업들을 축제라고 하는 문화적 기호로 발전시켜낸 그들의 노력과 땀이 있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에게 우리를 보여줄 거리가 혹은 문화적 축제들이 있는가 하고 물어야 합니다.
단순히 축제는 우리에게 우리의 문화를 보여주고 거기에 대한 급부로서 경제적인 환원을 얻어내는
기회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이념, 인물 혹은 사건 같은 지나간 것을 공동의 기억 속에 저장하고
그것을 현재의 차원에서 규칙적으로 특정한 시간 내에서 다시 불러내어 기리는 공동체적인 행사를 갖는데,
이 때 우리는 그러한 공동체적 행사를 “축제”라고 일컫습니다. 지나간 것을 간직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시간에서 다시 불러낸다는 점에서 축제는 따라서 기억(회상)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지요.
그렇기에 우선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은, 넓은 의미에서 축제란 기억의 형식이라는 것입니다.
문화 인류학자인 얀 아스만의 구분에 의하면, 기억은 네 가지 형태로 구분되며 그 가운데 의사소통적 기억과
문화적 기억이 기억 행위의 핵심적인 형태로 간주됩니다. 전자는 생존해 있는 이들이 동시대인들과 함께 공유하는
과거에 대한 집단적인 기억을 말한다면, 후자는 “문화적 형식”들에 의해 전수되는 집단적인 기억을 말합니다.
의사소통적 기억은 대체로 구두 언어로 이루어지지만,
이와 달리 문화적 기억은 “문화적 형식”이라는 매체를 필요로 하며 이 가운데
문자에 의한 기록 행위, 제식(Ritus), 축제가 그러한 문화적 기억의 핵심 매체로 간주됩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기억의 형식을 이야기 할때, 우리만의 기억을 응고시킬만한 문화적 기억과
집단적인 기억이 있는가를 묻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와있습니다. 월드컵 때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런 의문은 강하게 듭니다.
레드 데블스란 문화적 기호아래 하나로 뭉쳤던 그 환희와 기억을
저는 제 기억의 저장고 속에 고스란히 보관해 보고 싶습니다. 상큼하고 새콤한 저 레몬트리의 기억처럼
우리에게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우리민족의 기억'들이 축제란 형태를 통해
바로 우리의 일상에서도 오롯하고 멋지게 펼쳐져 보여지길 바래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아름다운 삶의 축제를 되살리는 날, 빛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계속되리라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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