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양식-어두운 세상에 밝음으로 오다
순수의 방식-평범속에 깃들은 신비의 색채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에는 밝은 색채의 그림이 보고 싶어집니다. 목질 캔버스 위에 갓 칠해진 빛깔의 정조가 가득한 그림들. 오늘은 템페라로 작업한 그림들을 보고 싶은 하루입니다. 템페라는 달걀 노른자와 아교를 섞은 불투명 안료를 사용하는 화법입니다. 템페라는 안료에 이러한 미디엄을 '혼합한다' 는 뜻의 라틴어에서 온 말이지요. 사람들은 이렇게 만든 템페라를 나무판자위에 칠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이 방법은 1410년까지 지속됩니다. 당시 템페라의 사용범위는 실로 광범위하여 세밀화에서부터 수사본과 미사전서의 삽화, 특히 중세의 패널화에서는 중요한 기법이었다고 해요. 템페라는 유화와 달리 부드러운 색의 흐름을 내기가 곤란하여 약간 딱딱한 느낌이 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채화의 맑은 이미지와 유화의 입체감을 동시에 표현하기 좋은 화법이지요.
오늘 소개할 작가는 이러한 템페라화를 현대적으로 복원시킨 ‘벤샨’ 입니다.
물론 마르크 샤갈이나 데이비드 호크니등 다른 작가들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벤샨’을 선택하게 된 것은
5년전 출장으로 갔던 뉴욕의 Jewish 박물관에서 열렸던 그의 전시회에서 기인합니다.
1976년 벤샨의 회고전이 열린 이후로 20여년이 훨씬 넘은 후에 열린 그의 전시회였기에
비즈니스 출장이었지만 꼭 가고 싶었던 희망 리스트 중의 하나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드디어 그때의 전시회에 대한 기억 아닌 기억을 되살려 글을 쓰게 되네요.
자 이제 시작할까요? 벤샨은 1898년 리투아니아의 코브노 지방에서 전통적인 유태인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함께 1906년 브룩클린으로 이민을 오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였고
정부타도에 대한 혐의로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나게 되면서 이별을 하게
되지요. 어린시절 미국에서 줄곧 자라나면서
그는 점진적으로 전통적인 유대주의와 결별하고, 현세적인 노동의 가치와 사회개혁의 의지를 기치로 들었던 1930년대의 시대적 흐름의 자장 속으로 본격적인 입사를 시작합니다. 석판화가의 도제로 시작된 그의 미술수업은 후에 벤샨의 성숙한 회화양식을 구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920년대 프랑스에서 잠시 미술수업을 받게 된 벤샨은 그 당시 사진과 워커 에반스와 함께 스튜디오를 사용하면서 1930년 자신의 첫번째 개인전을 열게 됩니다.
그 이후로 계속해서 대공황 시대의 사회, 경제적인 조건에 대한 예술의 응전방식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을 통해 표현하게 됩니다. 1932년 이탈리아에서 이주한 무정부 주의자인 쟈코와 반제틸의 처형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연작 시리즈로 당대의 정치적 참여작가로서의 면모를 굳히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시대에 대한 우울함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의 붓처치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냅니다. 시대를 살아가면서 내 자신을 비롯한 주위의 속살을 거짓의 눈으로 볼수 없기에 이런 그림이 잉태되는 것이죠,
1934년에서 1942년까지 그는 다양한 정부 지원 프로젝트를 맡게 됩니다. 뉴딜정책의 일환이었던 ‘이주민의 재정착’ 위원회를 위해 벽화 및 사진작업을 시도합니다. 그는 이 당시 펜실베니아와 델러웨어를 포함하는 열개의 남부도시들을 여행하면서 미국의 정체성과 삶의 다양한 양식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그가 초기의 미국적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갖는 한계였던 당파적 이데올로기의 투쟁에 대한 환멸과 세계 제2차 대전의 공포를 통해 견고해지면서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회화의 양식으로 변화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그의 동시대 작가들이 세계대전 이후 추상화로 그 방향들을 선회하고 있을 때에도 그는 내러티브 전통의 틀에서 작업을 개진해 나갔습니다.
다만 그들처럼 성서적이고 신화적인 테마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알레고리적 작품 속에서 세계 대전의 상흔과 개인적 경험이라고 하는 두 가지 명징한 상처의 무늬들을 보편화된 필치로 그려내게 되지요. 예술이 갖는 현실에 대한 복원력과 재탄생을 창조해 낼 수 있는 힘을 믿었던 작가였습니다.
예술이 갖는 복원력의 힘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의 밝은 템페라의 색조가 당대의 어두운 시대의 실루엣을 그려내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밝음과 어두움은 별개의 존재가 아닌 마치 한몸속에 구성된 이원적인 힘과 같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처럼 조용히 비가 내리는 날에는 벤샨의 그림을 조용히 응시하고 싶습니다.
그의 치열했던 생과 아련하게 바스러져간 삶의 결미의 장을 생각하면서 말이죠. 들으시는 곡은 조지 윈스턴의 연주로 듣는 Rain Song 입니다. 투명에 가까운 블루빛 하늘아래 떨어지는 빗방울 수만큼 여러분들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벤샨의 그림속에 오전 한나절을 다 보내버린 칼럼지기 홍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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