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자이다.
무슨 일을 하든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기다림 중에서
난 어린시절부터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는 걸 매우 좋아했다. 아직까지도 연두빛깔의 형광펜 보다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추천으로 사용하게 된 노랑 색연필을 선호한다. 물론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는 것은 일련의 단점 또한 포함한다. 혹시나 재차 책을 읽게 될 때 처음의 감성과 기억에 얽어 매여지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새롭게 재독을 하거나 세월의 흐름 속에서 다시금 읽혀질 가능성을 상당히 차단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을 때 그랬던 거 같다. 난 그의 비/희극을 다 좋아하지만 사실상 내가 특히나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가 쓴 작은 소품들이다.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이나 혹은 헛소동 같은 작품들이다. 어차피 생의 두 가지 큰 단면인 희락과 상처 중 고르라면 난 전자를 택할 테니까.
자 이제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자 어제 본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는 카롤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에서 그 주요한 모티브를 빌려온 작품이다. 물론 로맨스가 시작하는 원칙으로서의 만남에 관해서만 아이디어를 빌렸을 뿐이다. 사실상 영화상에서 드러나는 연극적인 미장센과 이야기 구성방식은 철저하게 짧은 호흡에 능통한 CF 감독의 감성 위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밑줄 긋는 남자’의 주인공 콩스탕스는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서 ‘당신을 위한좋은 책이 있습니다.’ 란 연필로 쓴 글씨를 발견하고 호기심에 그 남자의 안내에 따라 도스토예프스키와 니미에, 키에르케고르의 책을 읽어나간다.
그의 밑줄이 언제나 자기를 지켜보는 듯한 표현이며, 자기에게만 속삭이는 밀어라고 느낀 그녀는 마침내 로맹 가리의 책에 밑줄을 그으며 도서관을 무대로, 책을 수단으로 한 대화에 뛰어든다. 밑줄 긋는 남자와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추적에서 책과 독서문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20대 처녀의 사랑 이야기를 읽게 된다.
난 액자식 구성을 좋아한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가지를 치고 푸르른 틈새를 비집고 나간다. 두 연인을 배경으로 ‘예쁜 착각’과 집요함이 빛으로 그려낸 화면속에 가득하게 메워진다. 난 소품을 좋아한다. 옷을 입을 때도 항상 소품을 갖추는 것을 잊지 않는다. 영국식 니트의 드라이한 느낌을 메워주는 파스텔이나 브라운 빛깔의 머플러와 18세기 스타일의 모자들, 버튼은 떼어내고선 세련된 느낌의 진주장식이 박힌 커프스를 한다.
난 대학시절 그러니까 정확하게 군대를 기점으로 도서관의 전산화를 경험한 세대이다. 꿈이 많던 1학년과 2학년, 시험때가 되면 전공서적을 일부러 도서관에서 빌려오곤 했다. 이유는 중요부분에 덧칠해져 있거나 혹은 밑줄이 그어져 있어서 책을 읽을 시간을 단축시켜 주는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속의 이야기는 그리 남다르지 않다. 대학 2학년 초였지 싶다. 경영학을 전공하면서도 특히나 문학과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였기에 항상 많은 책들을 빌려 집에 놓아두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 날엔가 내가 빌리는 시집과 문학비평집 그리고 멀리는 미술사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여학생의 이름이 꼭 내가 빌리는 시점보다 한 포인트 빠르게 도서대출카드에 적혀 있는 거였다. 응용통계학과 한소연.....놀라운 것은 행간마다 조금씩 적혀 있곤 하는 독자의 서평이랄까 혹은 단상이랄까? 물음표가 그려진 짧은 문장과 노란색 밑줄은 나를 궁금하게 했다. 사실 그 노란색 밑줄에 이끌려 그냥 넘어갈수 있었던 문장이었지만 한번쯤 더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 싶다.
우연은 마치 필연을 가장해서 나타나고 싶어하는 법. 그날도 난 김원일의 소설집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에 갔었다. 대출중.....왠지 그날 그렇게도 '마당깊은 집'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설명할수는 없다. 하지만 사서가 오늘 반납되는 날이라고 해서 그냥 기다렸다. (사실은 하루 연체되었다고 한다) 혹시 또 아는가....나보다 항상 먼저 책을 빌려가는 그 여학생을 볼수 있을지....이름은 이쁘던데.
문제의 책이 오던 시간....드디어 그 친구를 보았다. 같은 학년의 친구였다. 내 친구 소연이를 만난것은 이런 사연이다. 이런 내 친구 소연이가 이제 9월이면 결혼을 한다. 그러고 보니 내겐 참 좋은 친구였지 싶다. 10년가까이 친구로 지냈다. 아마도 이번 결혼식에도 난 친구들을 위한 피아노를 쳐야 할 거 같다.
영화처럼 예쁜 연인을 만나진 못했지만 그래도 도서관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 이제 그 친구를 더 좋은 만남과 세상으로 보낼수 있어서 난 참 행복하다.....추운 겨우내 얼어붙은 생채기와 아픔과 배고픔 모두 잊어버린채 봄햇살의 따스한 환상속에 늘어지게 누워버린 봄 날의 곰처럼 말이다......
기다림은 하나의 주문이다. 나는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전화를 기다린다는 것은 이렇듯 한찮은, 무한히 고백하기조차도 어려운 금지 사항들로 짜여있다. 나는 방에서 나갈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전화를 걸 수도 (통화중이 되어서는안 되므로)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전화를 해오면 괴로워하고 (똑같은 이유로 해서), 외출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그 자비로운 부름을, 어머니의귀가를 놓칠까봐. 기다림 편에서 볼 때 이런 모든 여흥에의 초대는 시간의 낭비요,고뇌의 불순물이다. 왜냐하면 순수한 상태에서의 기다림의 고뇌란, 내가 아무것도하지 않은채, 전화가 손에 닿는 의자에 앉아 있기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기다림에서 다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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