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ing Sole....혼자나는 기쁨
아마도 96년이었나 싶습니다. 캐롤 앤더슨이란 분이
쓴 이 책을 읽었던 때가 말이죠. 2년후 또 하나의 문화란 출판사에서
'단독비행'이란 책으로 번역이 되어 나왔습니다.
당시 페미니즘 운동의 전방에 서있던 사람들이 읽었던 시기보다 더 앞서 있는 셈이죠.
더구나 남자였으니....하긴 이 당시 제가 열심히 활동했던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한분이
'뭘 그런것까지 다 읽고 댕겨서 사람 반성하게 만드느냐?"는 핀잔까지 들어야 했지요.
이 단독비행이란 책은 사실상 '독신'으로 살아가는 즐거움에 관한 책입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 Joy of Flying Together 함께 나는 즐거움을 외치고 다닙니다.
많은 정신적 변화가 있었던 거죠. 자 에드워드 번 존스의 '재앙의 머리'란 그림을 한번 보세요
이 그림에는 페르세우스와 그의 아내가 될 안드로메다가 보입니다. 영웅 페르세우스는
영웅 페르세우스는 자기가 죽인 '메두사'의 머리를 수면위에 비추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수면위에는 연인과 함께 메두사의 머리, 이렇게 세명의 얼굴이
아련한 잔영이 되어 반영되어 있습니다.
에드워드 번 존스
'재앙의 머리' 1885
캔버스에 유채, 153.7*129cm
사우샘프턴 시립 미술관
긍정성으로 대표되는 페르세우스, 수동성과 나약함의 상징 안드로메다
그리고 파괴적 본능의 메두사, 이 셋의 이미지가 왜 수면위에 동시에 비추이고 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이 모든 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요?
그 만큼 우리안에 나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물에 비추어 보듯
그렇게 한발자욱 물러서서 관용하고 포용하는 것은 어떤가 하고 말이죠.
저는 모 신문사 커뮤니티에 연재되는 '형경과 미라에게'라는 Q&A 글들을
종종 읽습니다. 소설가 김형경의 텍스트를 대학시절 부터 좋아했던 터이고 게다가
박미라님은 제가 한때 열심히 활동했던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편집위원이셨는데
이 분과는 참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꽤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분이고요.
오늘도 시간을 내어 상담글들을 읽는데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남편을 55%만 소유한다 생각하세요'란 제목입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글을 올리신 분은
결혼 1년차의 주부십니다. 남편은 첫사랑이었고 잘생긴 외모에 유능한 회사원이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남자는 절대로 외도는 안할거고 그런 남편을 위해서 헌신하고
보약 해먹이고...그랬던 남편이 며칠동안 계속 외박을 하고 늦고, 옷에선 여자
화장품이 묻어있고...물론 남편은 술집에서 일어난 일을 자백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잠이 안온다. 마음이 흔들린다...내 남편을 손에 쥐고 사는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남편이 어떻게 외도를....이 사연의 내용입니다.
존 워터하우스
'에코와 나르키소스' 1903
캔버스에 유채, 109*189cm
리버풀, 워커 미술관
이글에 답하는 김형경씨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100% 하나됨은 ‘환상’ 이죠…왕처럼 떠받든 헌신 바탕엔
사랑 잃을까 불안감 없었나요…먼저 자신감을
가지세요
저는 소설가 김형경님의 답변을 옮기기 전에 오늘은 저 그림 속 배경을 설명하는것으로
답변에 대한 새로운 답을 올리려고 합니다. 라파엘 전파의 화가 존 워터 하우스의
'에코와 나르키소스' 그리스 신화의 소재를 빌려 왔지만 여전히 우리시대의 우화에
적용되는 그림이죠. 나르키소스는 바로 여러분이 '나르시스즘'이라고 불리는 증후의 배경
이 되는 신화상의 인물입니다.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끝내는 상사병으로 죽어버리고
마는 인물이지요. 이러한 나르시스즘은 사실상 자기애의 형태이자, 자신의 사랑이
너무나도 특별하다고 믿기에 여기에는 꼭 집착의 형태가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딸은 무조건 피아니스트로 성공시켜야 한다...딸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고
우리둘은 떨어질수 없는 '우리'일 뿐이다. 주변에 음악가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이런 이야기를 한두번 들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 남다른 유별남이 자녀를 음악가로 성공
시키기도 하지만 파괴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배운것은 나이가 훌쩍 들어서 였습니다.
님은 혹시 사랑을 ‘상대방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것이야말로 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착각이며 망상입니다. 그런 환상은 엄마와 행복한 공생관계를 유지했던 유아기의 체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엄마로부터 분리,
개별화되는 단계에서 완벽한 공생에 대한 희구를 내면에 간직하게 되는 거죠.
님은 지금 그 유아적 환상이 깨어지는 고통을 겪고 있는 듯합니다.
사랑의 환상을 투사했던 남편과의 지나친 의존 관계에서 벗어나 심리적 독립을
성취할 수 있는가는 오직 님에게 달려 있군요. 하나됨의 환상을 벗고
남편을 55% 정도만 소유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님의 남편이 다닌다는
대기업도 주식의 55%만 소유하면 그 회사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게 됩니다.
생활과 감정의 55%만 공유한 다음, 님도 남편도 45%의 자유와 주체성을 나누어 가지는 겁니다. 사실 저 퍼센티지는 서로 바뀌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프레데릭 레이턴
'정염의 6월' 1885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김형경님의 답변을 그대로 올려봅니다. 우리가 믿는 '상대방과 완벽한 하나'가 된다
는 것이 일종의 환상임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계시더군요. 사랑을 한다는 것이
우리시대의 종교가 되어버린 이 '사랑의 문법'에는 바로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의
자유를 구속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배울수 있습니다.
프레데릭 레이턴의 또 다른 그림 '정염의 6월'이란 작품을 바라봅니다.
온통 오렌지빛 드레스로 주변까지도 환하게 비추어 내는 여인의 모습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그 모습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오렌지색은 항상 희망의 빛깔이라고 하지요
재생과 새롭게 태어남을 상징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인지 인도 스님들이 입고 계신
주황색은 바로 그러한 철학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네요.
저는 이 그림을 볼때마다 딱 한가지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제 친구가 제 칼럼에 올려준 사랑의 정의.....'사랑이란 사랑하는 이의
잠을 깨우지 않는 것이다'
함께 날기위해서는 내 사랑에 대한 지나친 확신과 의존성으로 부터 벗어나
자유와 주체성을 부여하는 일....그래요, 처음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잊지 마세요. 이러한 용기를 통해 생은 다시 환한
사랑의 충전을 얻게 될테니 말입니다. 아셨죠?
아!...달콤한 잠이나 한숨 자야 겠다구요? 뭐 그러셔도 저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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