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Homo Viator
오늘은 '떠남과 안착'이라는 주제를 한번 골라보았습니다. 우리들은 흔히 인간을 다양한 시각속에서 규정합니다. 도구를 만드는 인간으로서의 호모 파베르, 유희하는 인간으로서의 호모 루덴스등으로 말입니다. 요즘들어 자주 사용되는 인간의 규정중에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라는 것이 있습니다. 방황하는 인간의 면모와 속성을 학명으로 표현한 것이죠. 점점더 가볍고 부박한 삶의 형태들, 온라인의 만남과 떠남은 바로 이러한 우리네 삶의 전체적인 모자이크 속으로 파고들어오고 있는 심미적 부박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디에도 묶여있지 않는 자유와 혼, 짚시들의 삶의 양식들을 일관된 방식으로 포착해온 작가. 오늘은 요제프 쿠델카를 한번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S#2-Sensitiviy of Analogue
요제프 쿠델카의 작품은 고도의 양식화된 방식으로 짚시들의 삶의 흔적을 섬세하게 그려온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1962년 이후 그는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동유럽과 잉글랜드, 아일랜드, 프랑스와 스페인등의 짚시들의 삶을 렌즈에 담아내왔습니다. 쿠델카는 한번도 상업적인 잡지나 프로젝트를 해본적이 없습니다. 일관되게 짚시들의 커뮤니티와 그들의 삶의 일상적 단편들과 제의들 가령 탄생과 결혼 죽음의 현장들을 카메라의 시간속에 응고시켜왔습니다. 그는 지금의 체코의 모라비아에서 출생해서 프라하 기술대학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합니다. 이후에 6년이란 세월을 엔지니어로 보내게 되지요. 공학도로 일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적 풍경들을 덧입히는 대상으로서의 짚시의 삶을 담았고 61년 처음으로 첫번째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S#3-Remaining Silent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 네 발 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 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고정희의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중에서
지금은 겨우겨우 명맥만을 유지한채 그 옛적의 이름만을 간직한 짚시의 삶. 짚시의 삶을 생각하면 저는 '리듬'이란 한음절의 단어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내 생에서 리듬은 시간과 공간에 의해 규정된채 우리의 신체와 영혼 속 깊이 프로그램 되는 일종의 언어입니다. 우리가 길들여진 공간을 떠나 이질적인 곳으로 갈때 우리는 불안함을 느낍니다. 그만큼 친숙함이란 요소를 우리내 생에서 제거될때 방황인의 면모또한 이러한 실존적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운명에 마주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짚시'들의 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이런 방황인의 면모는 작가의 생을 통해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체코에서 출생해서 1961년 영국으로 생의 첫번째 여행을 감행한 이후로 그는 1970년 자신의 고향을 완전히 떠나 영국에서 10여년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당대 최고의 사진그룹이었던'매그넘'에 가입을 하게 되지요. 사진의'결정적 순간'을 제창했던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과의 친밀한 작업과 관계맺기는 그후 쿠델카의 사진미학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짚시들은 어떤 일면에서 보면 국외에 체류하는 예술가 집단의 의미를 가집니다. 지리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삶의 체취가 뭍은 토양을 떠나 이방인의 땅에서 감성과 예술의 혼을 전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모국을 떠나 이방인의 땅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선 예술가에게 있어 모국의 풍토속에서 빚어내려온 언어와 예술적 뉘앙스들을 새로운 땅에 그대로 전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방의 땅에서 겪어야 하는 소외와 익명성의 두려움또한 그들의 생을 구속하는 요소가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곳에도 묶이지 않는 자유의 생을 택함으로써 이 세상에 잠시 우거하다가 지상의 집을 떠나는 순수한 영혼이 되어 그들의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가는 나그네임을 이야기합니다. 영원한 집은 이 지상의 제국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짚시들이 내면의 자유를 위해 정신적인 망명을 선택했듯 우리도 잠시 우거하는 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 미련과 구속으로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생의 의지가 , 그 자유를 복원할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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