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Education/딸을 위한 미술 이야기

울 이쁜 딸을 위한 노래.....

패션 큐레이터 2005. 8. 9. 23:03

 

다영아......지금쯤은 잠에서 깨어

학교갈 준비로 아주 부산하겠구나. 계속해서 미루어둔

모스크바와 베를린 출장건으로 새벽의 시간에 바지런히 집을 나와야 했던

아빠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네 모습만 가득하게

내 눈속에 담아두었다.

 

 

올해로 10살이 되는 우리 딸이 언제 그리 컷나 하고 새삼스레 놀라기도 하고

세월은 그렇게 우리를 함께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난 항상 너를 볼때마다

경이감에 빠진다.

 

이제 또 한 사람의 여행자가 우리 곁에 왔네. 그가 우리와 함께 지내는 날들이

웃음으로 가득하기를. 하늘의 따뜻한 바람이 그의 집위로 부드럽게 불기를

위대한 정령이 그의 집에 들어가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기를

그의 모카신 신발이 여기저기 눈 위에

행복한 발자국을 남기기를......<축복의 기도> 전문

 

위의 시는 체로키 인디언들이 아이들이 태어날때 축복하는 기도문이라고 해

너를 처음 안았을때의 아빠의 마음또한 이 시에 담긴 따스한 열정과 청초함과 그리

다르지 않았단다. 아빠는 오늘도 항상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 우리 딸이

우리 곁에서 '진정한 생의 여행을 위해'자라준 것에 대해서

엄마와 아빠가 키운 것이 아니라...."신의 정원에서 놀기 위해 네 스스로 성장하고

신의 영광과 그의 날개 아래서 네가 자란 것임을...."

 

 

자 이제 각설하고.....오늘 아빠가 우리 다영이에게 소개해줄 작가는 바로 인상주의 화가였던

더구나 여성작가였던 매리 카셋이란 사람이다. 엄마가 너를 임신했을때

원체가 만혼이었던데다, 태생적으로 빈혈이 심했던 터라, 많은 주의를 기울였었다.

라마즈 분만을 통해 너를 낳게 되면서 아빠는 항상 엄마에게 이 작가의 그림들이

담긴 화집들을 읽어주었고, 항상 행복한 시간의 앙금들과 추억들을

연상시키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오늘 네게 읽어줄 매리 카셋은 피츠버그의 부잣집 딸로 태어났다고 알고 있다.

조부가 프랑스인이었던 그녀는 어릴때 부터 프랑스에 대한 동경심이 강했다고 해

그녀는 펜실베니아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드가와 아주 친한 교분을 쌓게 되었고

이후 미국에 프랑스의 인상주의 그림을 소개하는데 열정을 쏟게 된단다.

 

사실 아빠가 그녀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간단하다.

보고 있으면 참 편하고 행복하다는 점이야. 그림 속에 나오는 엄마와 아이들이

너무나도 예쁘고 곱다. 아빠도 엄마와 돌아가면서 너를 안아서

그림속에 아이처럼 너를 씻기거나 혹은 아래 그림처럼

더운 여름.....유난히 에어컨도 틀지 못한채 보내야 했던

시간, 지쳐 일어나는 널 안고 살갖에 입맞추고 했던 기억들이

지금도 내 기억의 정원속엔 예쁜 향기로 남아있다.

 

 

유독히도 엄마를 잘 따르는 널 보면서

항상 출장과 비즈니스로 외국에 자주 나가는 아빠는 속이 아주 많이 상했었단다.

안그럴거 같이 생겼는데 젓을 빠는 힘이 하두 세서.....수유 하면서 엄마가 무척이나

애를 많이 먹었던 것도 기억난다.

 

손가락이 열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함민복의 '성선설'이라는 짧은 시편이야. 아빠는 이 짧은 시구를 읽을 때마다

이제 팔순의 할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막둥이로 태어난 아빠와

내 위로도 3명의 아이를 키워낸 베테랑 엄마인 할머니

 

하지만 사랑을 나누어 주는데는 항상 서툴러서

모든걸 다 주느라 자신의 것을 챙기지 못하는 것이 엄마의 숙명인 것을

세월이 지나면서 배우게 되었다.

 

 

어찌보면 어렸을 때 부터 미술을 좋아하던 너를

굳이 피아노와 무용을 가르쳐야 한다고 우겨댔던 아빠가 요즘은 좀 미워진다.

왜 그렇게 '자식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 되어 가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여전히 고쳐지지 않은 병증을 가진 사람처럼

아빠의 행동에 후회가 된다.

 

 

아빠는 산 보다는 물을 좋아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등산보다는 바다와 호수를 가는 걸 좋아했지. 뉴질랜드에서 보낸 한철은 실제로는

수정처럼 맑은 호숫가에서 보낸 시간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일까

누가 아빠딸 아니랄까봐......호수에서 꼭 아빠의 '노가다'를 필요로 하는

노젓기의 모습을 요구하던 너의 웃는 모습이 기억난다.

 

노 젓는라 쉽지 않았는데 다영이 널 보면서 '표정관리'하느라 쬐끔 힘들었었던

시절이었다. "아빠 힘내세요...우리가 있잖아요"라는 CF 배경노래가

떠오르곤 했다는....전설이 있다.

 

 

아빠는 베를린을 거쳐 벨기에로 들어가게 된다.

이번 기회에 새로 편집된 미술 화집들을 새로 구매할 생각이다.

다영이 방에 새로 놓아준 푸른 톤의 쇼파가 방안 가득하게

분위기를 밝혀주는 것 같아서 아주 좋다.....

 

2주 후에 보자꾸나.

우리 예쁜딸......세상의 경계를 넘어설때 마다, 내 마음속엔

내 첫사랑....우리 다영이의 영상이 오롯하게 새겨진단다.

우리 예쁜딸.....아빠가 자장가 불러줘야 자는 꾸러기....하지만

아빠는 네가 정말 좋단다.....사랑한다.....사랑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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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