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Education/딸을 위한 미술 이야기

딸에게 들려주는 미술사 이야기-연두빛 치마가 빛난다

패션 큐레이터 2005. 6. 4. 14:46

다영아.....

이제 완연한 여름기운으로 이곳은 푹푹지는 듯 해.

이제는 연두빛을 넘어, 진한 청록과 인디언 블루빛의 숲들이

아빠가 묵고 있는 숙소 주변에 가득하다.

 

저번에 보낸 르네상스 이야기가 그다지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오늘은 잼있는 이야기를 한번 해 보려고 한다.

너도 알겠지만 아빠는 지금의 일을 하기전 패션분야에서 일을 했었단다.

그 당시 취미삼아 '복식사'에 관계된, 그러니깐 옷의 역사란 뜻이다, 책들을

많이 읽곤 했었단다. 그래서 오늘은 문득 회화에 나타난 '여성복식'에 관해서

써보려고 한다.

 

아빠의 서재 가득 담겨있는 화집중, 역시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가장 즐겨 찾아보곤 한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역시 아빠의 딸이 아니랄까봐

참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도 미술사를 한창 공부하던 초기, 역시 다가가기 쉬웠던

인상주의의 그림을 제일 좋아했다. 지나친 상징도 없고 규정도 없고, 도시와 풍경에 대한

화려한 색채와 인상에 기조하는 그 그림들이 아빠를 사로잡았지. 오늘은 그 인상주의 그림중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가지고 한번 이야기를 하련다.

 

 

 
클로드 모네의 1866년작 '정원의 여인들'이란 그림이다. 아마도 이 그림이 그려진 계절은 여름이지 싶다.
우선 여인들이 강한 햇살을 피하기 위해 얼굴을 가리는 양산을 들고 있는데다, 입고 있는 옷의
소재를 보니 가벼운 여름소재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우선 여름소재에 도트무늬(다영이는 땡땡이라고 하지)까지,
게다가 왼쪽의 서있는 여인은 사이언 블루의 스트라이프 패턴이 지금 우리가 보기에도 아주 시원하다.
전에도 한번 이야기 했던 같은데 인상주의는 옥외에서 자연광을 통해 비추어지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빛깔,
대기의 상태를 강조했던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모네는 그 강도가 더 심했던 사람이지.
 
그림속의 3명의 아가씨들이 입은 흩날리는 아름다운 드레스에는 풍성함을 더하기 위해
'크리놀린'이란 속의 구조물을 입었음을 여전히 발견하게 된다.
 
  크리놀린은 이 당시 여성들에게 다소 필수적인 요소
  였다고 알고 있다. 그 당대의 여성들에겐, 아름다움
  이란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스커트의 주름선이 보여
  주는 우아함이었다고 하지.
 
  원래 크리놀린은 말총으로 만들었는데 왼쪽에서 보듯
  시간이 지나면서 가는 철사로 일종의 구조물처럼 만들
  어 이것을 입고 위에서 드레스를 입는 그러한 방법으로
  옷을 입었다고 하는구나. 그 위에 레이스가 있는 페티코
  트를 입거나 혹은 시간이 지나 페티코트와 크리놀린은
  거의 같은 기능을 하게 되지.
 
  그런데 자세히 보면 마치 페티코트가 일종의 새장처럼
  느껴지지 않니? 여성의 하체를 그만큼 저렇게 견고한 물 체로  가득하게
구속을 했으니 얼마나 여성들이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여기에는 이때까지도 여전히 남아있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사회적 지배가
복식을 통해서 보여지고 표현된 시대였음을 기억하자꾸나. 누군가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저렇게 새장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가두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이러한
 
 
여성복식을 통해서 우리는 사회의 한 단편을 살펴보기도
한다. 크리놀린과 페티코트, 코르셋, 이 모든것들이 사실
은 궁정에서 부터 입었던 옷들이거든. 궁정이란 뭐냐?
쉽게 말해서 왕과 왕비와 공주와 왕자가 사는 곳이다.
그들이 주인공이고, 그 외에는 그들에게 아부하고 잘
보이기 위해, 왜냐면 그래야만 그들은 자신의 고장에서
혹은 그 곳에서 권력이란걸 휘두르며 남 위에 군림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역사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궁정시대'란 그의 책에
서 현대의 우리가 하는 모든 삶의 처세술들이 중세를 거쳐
 17세기에 이르는 궁정의 삶에서 나왔다고 말하고 있다.
 
즉 궁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이 서로 다른 귀족 패거리
들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기법, 사람들의 행동과 동기들을
연구하는 기법이 생겨났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
 
요즘 엄마랑 함께 보는 대하 드라마를 생각해보면 아주 간
단하지 않나 싶다. 대궐에서 어떻게 해서든 임금에게 선택을
받으려는 여자들. 그래서 그들은 저 서양의 페티코트마냥, 작은 궁궐의 우리 속에서 서로를 모사하고 싸우지.
오죽하면 베겟송사라고 해서 잠자리에서 임금에게 누굴 벌해달라는둥 어쩐대는둥 하지않니?
 
그래서 그런지 우리말의 베겟송사에 해당하는 영어표현이 Petticoat Influence 라고 한다.
페티코트의 영향력.....뭐 이렇게 해석하면 될까? 어찌되었든 이 당시의 페티코트는 궁중에서 입혀지다가
일반 시민들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모방심리에 의해 아래로 유행이 퍼지게 된다.
 
자 이제 똑같이 페티코트를 입은 또 다른 그림을 한번 보자

 

 

위의 그림은 프랑스의 사실주의 작가 도미에의

1885년작 "크리놀린 입은 여인의 겨울"이란 작품이다. 우선 리소그라프로 만들었던 판화작품

인것은 표면을 보고 알았으리라 생각하고, 그는 무엇보다도 풍자화와 커리커쳐로 유명한

작가인것은 너도 한번쯤 들었으리라 기억된다.

 

이 그림에는 크리놀린을 입은 귀족 부인이 눈오는 겨울 파리의 시내를 지나가고

그 뒤에는 다소 앙상하게 마른 늙은 노파가 거리의 눈을 치우는 장면이다.

우선 크리놀린이 주는 풍성한 여성미와 대비되는 노인의 깡마른 체구가

눈에 들어오지?

 

1850년대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은 하우스만 남작에게

파리 전체를 리모델링...그러니까 새롭게 개조하라고 명령을 내리게 되. 이 그림은 이러한 당시

의 모습을 아련하게 잡아낸 작품이야. 다영아,며칠 전이었나. 텔레비젼에서 사람들이 막 울고

해서 '저 사람들 왜 저렇게 울어' 하고 물었었지?' 그건 철거민촌에 있는 사람들이었고

공무원들이 와서 막 행패부리고 나가라고 내�는 거엿다고 기억한다.

 

어느 시대든, 도시의 풍경을 새롭게 건축한다는 것은 말이 이뻐 도시의 리뉴얼이니, 리 모델링

이니 하는 것이지, 이건 다시 말하면 도시 내에 산재해 있는 가난한 극빈층이나 혹은 저소득층

민중들을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이주시킨다는 말과 그리 다를바가 없다.

 

이 당시 1859년대 황제의 명령속에 이루어진 도시의 재개발도 이러한 맥락과 그리 다르지 않다.

원래 있던 자신의 자리를 빼았긴다는 것은, 그 곳에서 이루어졌던 모든 역사를 지워야 한다

는 말이고, 그들의 삶의 자리를 내어줘야 한다는 말이니까.

 

부자인데다, 귀부인인 저 페티코트의 여인이

가난한 노파의 저 빗자루질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았을까에 대해선 참 의문이구나.

어느 시대건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살림을 모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풂의 원리' '나눔의 희망'은 어느 사회든 있었고 지금도 우리에게 여전히

가능성을 기다리며 널브러져 있지.

 

우리는 후자의 사람들이 되자꾸나.

그러고 보니 우리 다영이를 얻은것도 겨울이구나.....아빠도 겨울생인데

우리 예쁜 딸.....콩쿨 준비 잘하고 그때 보자꾸나.

 

여름의 초입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어귀 마을에서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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