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대 사진작가로서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듯 합니다.
예전부터 한번 다룬다 하면서도 계속해서 미루었음을, 그 게으름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네요.
바로 '신디 셔먼'입니다. 그녀는 뉴욕 버팔로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1976년 자신의 첫번째 전시회를 열게 됩니다.
자신의 사진작업 초기부터, 그녀를 사로잡은 것은 대중문화의 매스 미디어의 이미지와 신화의 허구성이었고 이러한 제조된 '동의'에 도전하기 위한 그녀의 사진은 많은 비평가들로 하여금 신랄한 메스를 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사실 그녀가 사진을 좋아하게 된 계기도 다소 엉뚱했습니다. 프린트 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F를 받았던 그녀에게 사진학 교수는 '개념미술'의 세계를 알려주게 되지요. 그 이후 개념미술은 그녀의 영혼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녀의 '정지사진' 시리즈에서 그녀는 미국의 B급 영화의 등장인물들의 역할을
자신이 떠맡으므로써 헐리우드의 대안적인 미학을 표현하는 B급 영화에 대한 향수를 드러냅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공부하면서 B 급영화의 대부였던 로저 코만이란 감독을 알게 되었죠.
화려한 브로드웨이를 위해 정신적 자양분이 되는 오프 브로드웨이가 있듯, 꿈의 공장이라는
헐리우드를 위해 B 급 영화들은 주류 영화들의 미학적 자장 속으로 편입될 시간만을 꿈꾸며
자신의 독립적인 영화 미학을 만들어 가던 시대였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작업은 1980년 Back Screen 1986년 Freaks 에서도 동일한 테마와 주제가 변주되어 나타나게 되지요.
그 후 그녀는 고전의 거장들 가령 카라밧지오나 라파엘과 같은 작가들이 그린 그림에 푹빠지게 되고 그림속의 주인공들과 동일한 의상을 입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러한 그녀의 사진들은 포스트 모던적인 유쾌함과 초상화를 통한 자아의 탐색이라는 두개의 경계선 위를 건너가는 것이라 볼수 있습니다.
물론 그녀가 마릴린 몬로의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거나 소피아 로렌의 의상을 입는 것 자체가 사진적인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녀가 자신의 사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구성체로서의 '정체성'의 문제라는 것이죠.
바로 우리를 규정하는 의상과 다양한 코드들 혹은 소품들이 제거될때 과연 그러한 과정 속에서도 우리라는 존재와 정체성이 존립할수 있는 가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후 바로크적인 '베니타스'를 주제로 하는 기괴함과 공포를 테마로 하는 사진또한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흔히 '베니타스'란 영어의 Vanity , 즉 허영에 대한 테마를 다룬 그림들을 의미합니다.
흔히 풍성한 보물과 함께 해골 과 유골들을 함께 병치시키기도 하는 이러한 그림들은 당시 발흥했던 상공업으로 인해 사람들이 초기의 기독교적 사고를 잃고 물질주의에 빠져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그림이었다고 합니다.
어찌되었든 그녀의 20여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그녀의 사진들은 무엇보다도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초상화로서의 사진미학을 갖게 되는데요. 그녀는 대중문화속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아이콘들을 통해서 여성이 어떻게 재현되고 상업이 어떻게 이것을 이용하는 가를 보여주는데 주로 관심이 있었다고 해요.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몇가지 생각이 났습니다.
나를 규정하는 정체성의 원천이 무엇인가 하는 그런 때로는 무서운 생각들이 말이죠.
맑은 주말의 오후입니다. 여러분 모두 봄의 기운에 가득하게 행복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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