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북유럽의 감성을 쇼핑하라-ARKET 을 생각함

패션 큐레이터 2017. 8. 23. 16:11


1.
예전 북유럽 전역을 디자인 연구를 위해 돌아다니던 시절, 한국에 COS란 브랜드가 상륙하기 전, 이 브랜드의 옷을 사와서 방송과 강연이 있을 때마다 입고 나갔다. H&M 브랜드가 선보였던 초기의 느낌이 점차 희석되고 있을 때라, 북유럽의 단아하고, 견고한 느낌, 무엇보다 의류 소재에 공을 들인 옷들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2. 
내일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에 H&M이 야심차게 준비한 ARKET 브랜드가 문을 연다. 이번 매장은 기존매장과 달리,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한 매장이다. 매장구성도 동선설계에 여백을 많이 두고, 상품진열장도 큐브 형태로 친근하게 상품과 접촉할 면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배치했다고.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회색을 많이 써서, 공간 자체의 압도적인 느낌을 빼려고 노력한 것 같다. 상품구성도 기존 브랜드와 방향성이 확연히 다르다. 북유럽 자체의 라이프스타일을 팔겠다는 의도가 강하게 보인다. 패브릭 제품도 많고, 리빙용품과 아동복과 용품까지 갖추어서 거의 미니 백화점이라고 해야 맞을 듯 싶다. 특히 코튼 티셔츠의 경우, 면의 중량에 따라 3단계로 나누어 상품을 구성했다. 그만큼 감식안이 있는 고객 내부의 층을 공략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3.
온라인 패션매출이 대세지만, 오프라인의 패션매장은 온라인이 줄 수 없는 촉각적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런티어다. 아르켓 브랜드는 자신의 매장을 현대의 '장터' 개념으로 구성할 것이라고 한다. 패션 상품 외에도 타 회사의 다양한 잡화들, 제품들을 함께 구성해서 한 자리에서 쇼핑이 가능하게끔 하겠다고. 언뜻 들어보면 일련의 편집샵들과 그 느낌이 어떻게 차별화될지는 직접 봐야 할 것 같다. 독특한 것은 매장 내에 유기농 카페도 만들어서 북유럽의 가정식을 맛볼 수 있도록 한다고. 한 마디로 북유럽의 라이프스타일을 다양하게 쪼개어, 그 속에서 살아숨쉬는 사람의 존재성, 취향을 함께 상품으로 팔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4.
‘촉감이 살아있는 쇼핑’의 실현은 오프라인 쇼핑의 존엄을 회복하는 길이다. 감촉은 종교적 감각이다. 종교라는 뜻의 ‘Religion’ 은 ‘결속하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 결합, 계약이란 개념은 촉각이란 감각과 연결돼 있다. 상점 내 물건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 자신이 독립했다는 느낌, 자율성을 느끼게 해준다. 자율성을 인간이 몸에 새길 있도록 해주는 것이 촉각이다. 촉각은 소비자와 판매자, 소비자와 상품, 소비자와 체험을 하나로 묶어내는 감각이다. 인스타를 통해서만, 일종의 신비주의를 유지하며 매장과 상품에 대한 느낌을 발산해왔던 ARKET의 이미지는 이런 식으로 내게 다가온다. 


5.
Arket 브랜드는 최근 SPA 까지도 동참한 친환경 패션의 영향을 고려하여 지속가능성 개념을 도입한 옷의 개발과 후처리까지 보여주겠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유리카 베르나르는 여성복의 클래식과 남성복의 고전적 문법이 결합된 옷들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두 개의 젠더가 묶이고 서로의 장점을 나눌 때 더욱 새로운 시각이 나온다.


6.
누구나 북유럽의 감성을 이야기한다. 미국 북중부 지역인 미네아폴리스도 그 선조가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이민자다. 미국내 기업운영에 가장 유리한 도시로 꼽히는 이 곳은 공동체적 도시로 손꼽힌다. 북유럽과 신규 브랜드를 이야기하면서 뜬금없이 미네아폴리스 같은 미국 내 도시를 논하는 것은, 이곳이 전통적으로 평등주의와 기능성, 실용성에 바탕한 삶의 방식을 고수해온 곳이기 때문이다. 법인세 수입 중 전년 대비 증가분을 지역에 골고루 배분해서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쓰고 있는 곳이다. 난 이런게 진짜 북유럽의 감성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옷에는 그들의 감성이 녹아있지만, 옷만 입는다고 북유럽의 장점을 입게 되는 것은 아닐테니까. 



7.

난 H&M에 대한 비평을 떠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산물 속에 숨어있는 살아있는, 체온을 가진 인간에 대한 존중감이 좋다. 패션은 도시의 산물이다. 갖혀진 중세적 가치의 마을개념에선 패션은 탄생하지 않는다. 서로 경합하고, 때로는 연대하되, 함께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것. 패션은 이런 인간의 숨은 미덕 위에서 푸른 꽃으로 피어난다. 올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아내와 함께 북유럽으로 떠날 생각이다. 디자이너인 아내에게도 디자인의 영감과 충분한 휴식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ARKET 매장도 꼭 들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