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월스트리트에 불타는 하이힐을 던져라

패션 큐레이터 2017. 3. 9. 13:17



교묘한 그들과 싸우기 위해 


어제 영국의 가디언지를 보다가 놀라운 기사를 발견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국내 포털을 여니 댓글이 가장 많은 기사로 떴다. 미국 경제의 중심을 넘어, 세계 경제의 핵심인 월스트리트를 상징하는 황소 상 앞에 소녀상이 세워졌다는 것이었다. 국제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월가에서 자행되는 성적 불평등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작품이라는 것. 차징 불(Charging Bull)이라 불리는 황소상은 증권과 금융으로 유명한 월가의 상징 그 자체다. 황소는 증권시장의 호황을 뜻하며, 그 기원을 담아 세운 동상은 연일 많은 이들을 끌어모은다. 나도 종종 들러 인증샷을 찍곤 했다. 월스트리트는 냉혹한 남성적 세계의 상징이다. 치밀한 계산과 냉철한 이성의 세계 아래, 세계의 돈줄을 쥐고 흔드는 남자들의 자존심이 돌올하게 뭉쳐있는 곳이었다. 2011년 이 곳에서는 신자유주의로 귀결된 경제적 모순의 해결을 위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시위 운동이 일어났었다. 공교롭게도 그 때 뉴욕에 패션전시 때문에 가있던 차라, 지인과 이곳에 들러, 노상에서 텐트를 치고 시위중인 이들의 모습을 담았었다. 그랬던 이곳에 페미니즘의 기치를 담은 단호한 동상이 세워진 것이다. 감회가 새롭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월스트리트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불평등의 문제에 동참하고 있다. 소녀의 조각상 이름은 '겁없는 소녀(Fearless Girl)'이다. 양 다리를 벌리고, 양 손을 허리춤에 척 올리며 '한판 붙자'며 황소를 응시한다. 조각가 크리스텐 비르발은 이 작품을 통해 여성의 힘을 나타내는 아이콘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동상은 이런 것이다. 그저 어느 한 공간을 점유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 내부의 모순을 바라보고, 균열을 낼 수 있는 집단적 에너지를 끌어모을 수 있는 시각적 장치다. 이 동상을 제작할 수 있도록 제작비 전액을 부담한 회사가 있다. 투자자문회사로 랭킹 3위인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다. 소녀상의 발 아래에는 "여성 리더십의 힘을 깨달아라, 그녀야 말로 차이를 만들지니" 라고 쓰여있다. 


어느 사회든 기업문화가 존재한다. 기업 내 가부장적 성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수적 성향의 산업으로 갈수록 남성중심적 의사결정이 더 많고, 이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가부장적 사고가 기업 경영에 접목될 때, 이걸 가장 손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이사회의 구성비율이다. 이사회를 구성하는 남녀비율은 한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양쪽 성별의 의견, 문제해결을 위한 논리를 누가 주도하는가를 보여준다. 남성들의 의견이 지배적이다보니, 여성들의 관점과 해석이 들어갈 여지가 좁다. 미국의 대기업에서 여성 이사 비율이 16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이 보다도 더 못하고. 결국 소비주체가 남성과 여성을 다 아우름에도 최종 의사결정은 항상 남자들의 목소리가 우세했던 점이다. 소비주체로 등장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마케팅 영역에서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곤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런 소비재 회사를 평가하는 기준은 남성일색인 금융회사의 분석자들이란 점. 



남자들의 세계에, 하이힐을 던져라 


내가 이 기사에 관심이 갔던 것은, 이런 남성중심적 기업문화는 여성들에게 웃기지도 않는 복장규정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말로는 없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말뿐이다. 최근 영국 의회에선 회사가 강요한 하이힐을 벗고, 플랫슈즈를 신었던 안내원을 해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띤 토론에 들어갔다. 2015년 프라이스 워터스 쿠퍼스에서 근무하던 안내인을 기업내 복장규정을 들먹이며 해고했다. 5센티에서 10센티의 하이힐을 신고, 염색한 머리가 모자 밖으로 나와서는 안되며, 정기적으로 머리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었다. 당사자는 이 문제를 온라인에 청원했고, 15만 6천명의 사람이 동의를 했다. 얼마나 해묵은 문제였지만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였던가를 보여주지 않는가. 이번 조선비즈에 쓰는 패션 칼럼에서 '하이힐과 플랫슈즈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면서 이 문제를 조금 다루었다. 여성이 직장에서 조금이라도 편한 양태로 일을 하는 것, 그런 권리를 획득하기 까지 걸린 시간이 굉장히 길다. 무엇보다 여성의 목소리가 봉쇄되면, 여성 소비자들을 포함한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를 담기가 어려워진다. 



이 지루한 꼰대들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리더십을 믿는 일은 중요하다. 결국은 그 믿음은 행동으로 연결되며, 그 행동은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과 경영 의사결정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고객의 돈을 유치하고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성향을 놓고 양쪽 성별을 평가해보면 어떤 쪽이 더 안전지향일까? 통계치를 보면 오히려 여성들이 더 뛰어난 부분이 있던데, 왜 월스트리트는 이 부분을 간과할까? 결국은 오랜동안 구축된 문화의 벽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문화에도 균열은 가기 마련이다. 월스트리트에 진정, 저 소녀의 열정과 시선의 힘이, 여성의 리더십을 믿는 작은 계기를 만들어낼 불꽃이 되어주길 바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