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책 읽기의 황홀

침묵의 예술을 배워야 할 때

패션 큐레이터 2017. 7. 5. 00:43



가장 깊은 감정은 언제나 침묵 속에 있다. 
-토머스 모어 


저는 하나의 주제를 정해 동일한 혹은 비슷한 제목의 책들을 골라 읽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번 제가 고른 열쇳말은 바로 '침묵(Silence)입니다.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의 <침묵의 기술>에서 부터 침묵에 관련된 최고의 책이라 생각하는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그리고 엔도 슈샤쿠의 <침묵>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역사가인 알랭 코르뱅의 <침묵의 예술>을 읽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알랭 코르뱅을 좋아합니다. 19세기 프랑스를 분석하기 위해 그가 고른 시간과 공간, 소리, 냄새 등 미시적인 테마들은 사실 패션의 역사를 심층깊게 읽고자 하는 제겐 항상 큰 도움을 주었지요. 

알랭 코르뱅은 참 흥미로운 책을 많이 썼습니다. 국내에도 그의 팬층이 꽤 두껍죠. 그중에서 고르라면 날씨와 사람의 심리변화의 진화를 역사적 관점에서 풀어낸 <날씨의 맛>을 고르겠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향수에도 관심이 많은 제겐 그가 쓴 <악취와 수선화>같은 작품도 좋았죠. 특히 이 책은 파트릭 쥐스킨트의 <향수>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타깝게 영문으로 읽어야 했습니다. 번역판이 없더라구요. 이번에 고른 <침묵의 예술>도 날씨의 맛과 느낌이 비슷합니다. 어찌보면 좀 난삽하게 읽혀지기도 합니다. 너무 많은 인용어구들, 문학작품에서 캐낸 문장들이 혼란스러울 정도지만, 노학자의 묵직한 뚝심으로 끄집어낸 문학작품 속 묘사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침묵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색하고 기도하고 창조해낼 수 있는 조건입니다. 옛사람들은 침묵을 말이 소리로 나오기 전에 명료하게 모습을 갖추는 내면의 장소라고 여겼다고 해요. 저는 이 문장이 너무 좋더라구요. 우리의 말이 아무리 순정품의 마음을 품고 있다 해도, 그것이 명징하게 어휘의 옷을 입고 모습을 갖추기 전, 결국 내면의 어떤 장소에서 오랜동안 '묵상 속에서 발효'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사막에는 정돈된 집과 같은 위대한 침묵이 군림한다. 사막의 고요는 무수한 침묵으로 이루어졌다라고요. 이 책은 침묵을 7장에 나누어 그 미세한 성격을 규정하고, 이에 맞추어 다양한 문학작품에서 추출한 문장들을 발췌해 보여줍니다. 문학만큼, 어떤 사물과 사건, 사람에 대해 인간의 내밀하고 온축된 감정을 투영하는 장르는 없으니까요. 철학자와 역사가들이 결국 인간의 감정을 설명할 때, 문학작품을 인용하는 것은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책에서는 이 침묵을 이용해 묵상기도를 하던 중세부터 현재까지, 침묵의 문화적 의미의 변화과정을 하나씩 짚어내어 설명합니다. 침묵은 신을 만나는 가장 성스로운 통로이며, 이 통로는 우리 스스로 수련을 통해 파내려가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침묵은 말의 변화된 한 형태라고요.구두로 표현되는 말과 같은 목적을 향해 작용하는 말이라고 말이죠 . 소로는 우리 삶의 소유권을 되찾으려면 침묵해야만 한다고 평가했습니다.정말 많은 소음들이 주변부에 널려있지요. 어찌보면 백색소음이라는 꽤 좋다는 소음도, 너무 오래 지속되니 내면 속에 황폐함의 그림자가 생겨납니다. 저 많은 이들의 말들, 그 말들의 뼈 속에는 어떤 침묵의 밀도가 있는 걸까요? 저 스스로 글을 쓰고, 연구하고, 지속적으로 피드에 올라오는 동영상과 이미지들을 체크합니다. 이미지와 이미지를 건너가며, 나름의 생각을 만들어야 할 때, 결국 저는 침묵이란 단어의 힘과 맞닿드리게 되더군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