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아라비아의 길> 전시를 봤다.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수교를 맺은지도 55년이 된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가 한번쯤은 열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는데, 이번에 중앙박물관에서 좋은 기회를 맞아 선보였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중근동 지역의 고대문명의 교차로로서 이집트,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와 같은 지역과 활발하게 교역을 하며 문화의 꽃을 피웠다. 13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 모양의 조각
마가르, 신석기시대,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아라비아에서 출토된 선사시대의 석기들은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인류가 아라비아를 거쳐 전 세계로 확장해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1만년 전 무렵의 아라비아는 수목이 무성하고 깊은 호수, 비옥한 습지, 풍부한 야생자원을 보유한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의 땅이었다. 이때의 아라비아를 사람들은 초록의 아라비아라고 불렀으며 말도 키웠다고 한다.
근동지방에 대한 연구가 미약하고, 이쪽 전문가도 많지 않다보니, 사실 전시를 보면서 갈증이 느껴지는 부분들을 찾아서 해결할 부분이 많지 않았다.다행히 두꺼운 도록이 유물 하나하나의 설명을 꼼꼼히 해놓아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BC 1000년경부터 아라비아를 가로지르는 전설적인 향료 교역로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 세기의 경제는 곧 희귀한 물품이 교역되는 길 위에서 번성하기 마련이다. 예전 요르단과 레바논, 이스라엘을 거쳐 아랍 주요 국가의 대학에 강의를 요청받아 간 적이 있다.
그때 들렀던 요르단의 페트라도 이 향의 재료들, 몰약과 같은 고대의 귀한 약재상들의 길이었다. 아라비아 북서쪽의 타이마에는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인 나보니두스가 10년간 지배하면서 새로운 예술 양식이 전파된다. 나보니두스는 달의 신을 섬기며 기존의 아라비아 지역 전역에 종교개혁운동을 일으켰었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 볼 만한 것들은 무엇보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박해를 피해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향한 후 이슬람교가 아라비아를 넘어 급속하게 퍼지는 과정, 그 과정에서 등장하게 되는 쿠란을 비롯한 성물들과 묘비들이었다.
이외에도 여인들의 향수병과 귀걸이와 같은 금속 장신구도 몇 점 눈에 띠었다.
사실 이 번 전시는 눈에 확 띠는 그런 내용으로 구성된 전시는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나라 자체가 여전히 낯설고, 중동지역을 여행한 이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유럽이나 북미지역에 반해 많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번 아랍으로 떠난 강의 차 여행을 통해, 한 문명의 또 다른 양상을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문화는 항상 어린시절, 천일야화라는 윤색된 서구의 관점에서 풀어낸 수많은 스토리텔링들 배후의 이면들을 보여주었다.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여전히 그와 나 사이에 놓여진 우원한 거리의 생의 기울어진 생각의 좌표들을 환대와 수용의 수준까지 고쳐가기엔 많은 오해와 이해의 길항작용이 필요한 것이다. 미지의 나라를 유물을 통해보는 낯선 시간은 내 안에서 누군가를 알고 싶다는 욕망으로 바뀐다. 전시에서 나를 사로잡은 건 묘비명이었다. 죽음의 순간에 기록된 한 줄의 말 앞에서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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