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겨울 패션 흐름을 보다보면, 특히 남성복에서 유독 특대 크기의 옷을 입고 있는 남자모델 이미지들이 자주 눈에 띤다. 스트리트 패션의 여파라는 것은 분명하나, 솔직히 특정한 경향이 사회 내부에서 등장할 때,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도 많다. 이번 오버사이즈 패션경향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나 자신은 이런 루즈핏도 아닌, 과하게 큰 옷을 입는 심리에 동의하진 않는다. 중요한 건 사회 내부의 스타일이 태어날 때는 분명 이런 경향을 추인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할 필요도 있다.
베트멍과 로웨베, 캘빈 클라인과 코치, 버버리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브랜드들이 남성복의 특대경향을 밀고 있다. 날씬하고 몸을 절도있게 감싸주는 맞음새에 대해 남자들이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는 반증일까? 그렇지 않을것 같다. 여전히 맞음새(FIT)는 옷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고, 이것은 단순히 미의 문제를 넘어 스타일링 전반의 기반을 통제하는 원리이기도 한데, 왜 이런 엉뚱한 흐름들이 자꾸 나오는 것일까?
다시 물어본다. 남자들은 더 이상 질서와 규율, 균형과 절제를 요구받는 기존의 핏의 미학에서 자유롭고 싶은걸까? 유행분석가들의 논평들을 찾아서 읽어봐도 딱히 변증할 만한 내용은 눈에 띠지 않는다.
스트리트 패션의 왕자들이 이런 특대패션을 유행시켰다고 해서, 남성사회 전반의 정서적 동의를 얻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스트리트 패션이란 것도 결국 대중과 주류라는 하나의 흐름과 대칭된 관계에서, 자신들만의 코드를 만들어가는 착장의 문법이란 생각을 해본다면, 올해 가을과 겨울, 다양한 브랜드에서 내놓는 이 오버사이즈 패션은 단순한 패드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사실 스트리트 패션은 항상 느슨한 맞음새를 간직해왔다. 90년대 스트리트 패션도 마찬가지.
베트멍의 손을 덮는 상의와 트랙팬츠, 부츠는 한번 시도해보고 싶긴 하다. 그러고보니 90년대 후반에 종종 이런 차림으로 입고 다녔던 것 같다.
디올 옴므에서 나온 상의와 바지도 벨트 덕분에 잘 연결된다. 패턴 아래 패턴을 연출하는 스타일링이 될 듯하여 내겐 맞지 않겠다 싶다. 개인적으로 무늬를 너무 과하게 쓰거나, 상하로 무늬를 입는게 쉽지도 않고 자신도 없다. 맞음새를 둘러싼 시대의 변화는 인간의 몸을 둘러싼 해석의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비록 국부적인 트렌드라고 해도,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경향들을 섬세하게 읽어내기가 어려운 것은 바로 핏의 문제가 인간이 누려야 하는 자유의 정도를 표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패션기업들과 브랜드가 내놓는 모든 룩이 런웨이에서 비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니만큼, 이번 트렌드에 대해선 너무 과한 오버사이즈는 기각하기로 한다.
'Art & Fashion > 패션 필로소피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르딕 라이프스타일, 휘게-참 유감이다 (0) | 2017.01.11 |
---|---|
흑인 패션 디자이너들의 역사-패션은 정치다 (0) | 2016.12.12 |
잔향으로 남는 인간이 되기 (0) | 2016.10.10 |
버지니아 울프와 블룸즈베리 그룹-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0) | 2016.09.23 |
문예지의 발흥-패션계에 주는 함의는 무엇일까? (0) | 2016.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