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Holic/영화에 홀리다

영화 '룸'-희망은 한뼘의 땅 아래서도 자란다

패션 큐레이터 2016. 3. 31. 12:44



영화, 우리를 소환하는 푸른 꿈


늦은 밤, 아내와 영화 한 편을 봤다. 아내는 회사일로, 나는 밀린 원고와 저술작업으로 사실 언제부터인가 '은막'이라는 극장에 가본게 언제인가 싶다. 극장에 가면 마치 잃어버린 뭔가를 찾을 수 있을것처럼, 호들갑을 떨곤 했었다. 영화는 영사행위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삶의 저편'에 놓여있는 진실을 찾고자 하는 절박한 인간을 소환한다. 인간의 내면을 흐트러뜨리고, 때로는 몰입시키며 이야기 속에 봉합시킨다. 우리가 영화가 주는 쾌감과 이야기의 매력에 푹 빠지는 이유다. 영화 '룸'은 오랜만에 내 안에 있는 먹먹함을 마음 속 한 뼘의 땅에 불러내는 작품이었다. 줄거리는 생략한다. 


뒤늦은 리뷰를 쓰면서 주절거리기엔, 영화가 주는 다층적이고 겹겹히 주름잡힌 생의 문제들을 다 읽어보기에도 벅차니까. 7년간을 감금되어있던 한 여인의 이야기, 게다가 자신을 납치해 감금한 이의 아이까지 갖게 되고, 그 아이와 함께 '룸'이라 불리는 한뼘의 땅을 탈출, 새로운 세계와 만나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다. 나는 항상 예술은 삶의 이야기를 상상력을 통해 풀어내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한 편의 서사를 만난다. 서사는 세상 속에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판단체계가 포착하지 못하는 미세한 생의 진실을, 한 단면을 표면으로 끄집어내는 능력이 있다. 


각자가 서로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간다. 영화의 개수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지 싶다. 각 이야기에는 그들만의 진실이 있다.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내린 선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 선택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틀 속에서 또 내릴 수 있는 세계. 영화를 포함한 서사를 가진 모든 예술이 유지되는 근거다. 영화 룸은 어떤 사랑의 방식을 보여준다. 이 사랑은 우리가 흔히 정의내리는 '통칭명사'로서의 사랑으로 규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 사랑에는 현실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몇 가지 요소들이 서로 상충한다. 그래서 놀라운거다. 영화 속 사랑이 너무 큰 것이어서. 


범죄자의 아이, 원하지 않았던 아이,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통해 납치자의 영혼을 매일 봐야 했을 거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의 연대는 자신들을 둘러싼 절망의 세계를 돌파하는 힘이다. 여기엔 '룸'이란 한정적 공간에서는 유지될 수 있겠지만, 환한 대낯으로 나왔을 때는 '영화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이 영화 룸의 치명적인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실화의 잔혹성과 달리 상당히 '세탁된(sanitized)' 해석의 안온한 세계를 그리려 한다. 실제로 이런 현실을 맞이하고, 아이를 실제 자신의 아이로 입양할 경우, 아이에 대해 분노를 투사하거나 아동학대로 이어진 사례들이 꽤 많아서다. 불편할 수 있는 생의 진실이 너무 쉽게, 영화 속에선 봉합된다. 


모 정신과의사는 이 영화를 통해 모성애를 이야기했다. 옥시토신이란 호르몬 작용을 이야기하며, 희망을 위해 연대하는 인간, 아프고 서러운 자들이 서로를 껴안고 보살피다보면 희망의 근거가 생긴다고. 맞는 말이다. 문제는 이런 설명은 영화 이후의 'Ever After'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없다는 점. 주인공 여자가 아이와 함께 탈출에 성공, 부모를 만났을 때를 되돌아보자. 그 부모의 삶은 이미 납치된 아이로 인해 파괴된 상태다. 게다가 납치한 인간의 아이를 손주로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문제도 남는다. 이건 엄밀한 주관적 평가가 필요한 문제다. 꽤나 무거운 윤리적 심급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는 영화다. 


영화를 본 후 먹먹해진 이유는 사실 희망과 절망의 이중주 보다는, 현실적인 윤리적 심금과 판단 때문이었다. 모든 걸 모성애로 환원한 탓에, 영화는 그저 모성애의 승리, 두 사람의 연대에만 초점을 맞추었지만, 현실은 절대로 녹록치 않았을텐데. 잭이란 아이가 과연 주인공에게 삶의 근거가 되고 '힘샘(Wellspring of Power)'이 된다는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환한 세상으로 나온 이상, 그들에게는 새로운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영화는 그들이 세상이란 타자와 만나는 적응기간의 '심리적 초상화'를 그린다. 이 영화의 미덕은 바로 이 적응기간에 대한 충실한 묘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Room 이란 단어는 다양한 어원이 있지만 난 고지독일어의 어원들이 끌렸다. '범위와 기회'란 뜻을 가진 Ruman 에서 나왔다. 네덜란드어로는 '배의 정착지'란 뜻도 있다. 그들이 감금된 창고, 꼭대기로 난 한 뼘의 창을 통해 잭은 우주를 본다. 그들에게 룸은 희망을 위해 정박한 배의 닻을 올려야 할 땅이었다. 그들의 항해는 성공적일까? 영화를 본 이후로 계속 내 머리속을 떠도는 생각들이다. 이 영화가 여전히 희망을 말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먹먹하게 하는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