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따스한 단팥죽 한 그릇-미술관 옆 단팥죽 집

패션 큐레이터 2015. 11. 23. 14:28



창원의 경남도립미술관 특강을 마치고 김종영 선생님의 생가를 찾았다. 한국 현대조각의 아버지로서, 추상과 유기적 조각의 세계를 알린 그의 삶의 원천이 있는 곳이 궁금했다. 소답동이란 곳에 있는 그의 생가는 동화작가 이원수 선생님이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에 등장하는 집이라고. '울긋불긋 꽃대궐'이 바로 이 집이라고 한다. 고풍스런 한옥인데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너무 많은 연립주택들이 세워지면서 조금은 그 풍경을 헤친 느낌이다. 




강의 후 큐레이터 분이 데리고 간 단팥죽 집. 미술관 옆 단팥죽이란다. 서울의 삼청동에도 비슷한 제목의 가게가 있지아마. 미술관 옆 돈까스라고. 



반 지하로 들어가는 작은 유리문, 그 안에 소담하게 펼쳐지는 공간이다. 요리연구가인 따님과 어머니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라고 한다. 일본영화 <카모메 식당>을 연상시키는 그런 느낌이다. 헬싱키의 카우파토리에서 장을 보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고, 그녀가 사온 싱싱한 재료로 만들어내는 일본의 주먹밥과 다양한 요리들이 떠올랐다. 저녁 전이라, 예약제로 먹을 수 있다는 일식초밥을 먹어보지 못한게 아쉽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 시간이라 그런지, 여행전문가인 친구분이 어머니와 정담을 나누고 계신다. 이런 식당, 혹은 공간들이 좋다. 따스함, 온기에 대한 기억을 상기할 수 있는 곳. 요즘 서울에서 '밥집' 분위기를 되살린 레스토랑들이 인기를 얻어가는 건 다른데 이유가 있지 않을 것이다. 어느 한 순간부터 '우리 옆에서 사라져가는' 한 실체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멀리서 온 손님을 위해 이 집의 대표식단, 단팥죽을 만들고 계신 어머니다. 따스하게 맞아주셨다. 큐레이터가 워낙 이곳의 단골인 이유이기도 했고, 미술과 요리가 통한다고 믿으시는 분이기에, 이런 작은 믿음을 가진 분들이 하는 식당이라면 사람을 충분히 끌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가게 한 편에 놓인 소품들도 곱고.....




단팥죽도 맛있고,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도 곱다. 떨어진 나뭇잎 곱게 닦아 유기 수저를 올려놓은 품새도 좋다. 과하지 않게 정성스레 담아내는 음식엔 항상 '일상의 배후'를 채우는 힘이 존재한다. 한 끼의 식사가, 매번 정신의 척수를 세우는 힘을 발휘하는 것은 그런 이유겠지. 단팥죽에서 마치 어린시절, 시골에서 본 작은 풍경이 겹쳐진다. 송아지 코뚜레에서 나오는 따스한 콧김 같달까. 화장발없이, 자연스레 우리 내 생의 한기를 녹이는 달보드레한 미감이 혀 끝에서 아른거린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