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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 <패션과 인간> 자문후기 및 리뷰-아쉬움과 한계 사이

패션 큐레이터 2015. 6. 2. 23:52



패션만 다루면 말아먹는 이유는 뭘까?


EBS의 다큐 <패션과 인간>2부를 봤습니다. 다큐자문위원으로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있습니다. 다큐 제작 초기 많은 시간을 할애, 다큐를 통해 살펴야 할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기획자, 방송작가분과 나누었습니다. 기획초기 도움을 드리다가, 기획자와 방송작가의 방향성이 와닿지 않아서 손을 놓고 있었는데요. 우려하던 부분이 나오는군요.1부는 일반론만 나열하며 변죽만 울렸습니다. 2부는 1부 보다는 나아진 느낌입니다만 2부작에서 끝냈어야 할 호흡과 내용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패션 디자이너 후세인 샬라얀이나 사회학자 다이애너 크레인의 인터뷰를 담은 건 좋습니다. 국내 다큐제작의 역량이 많이 성장한 거죠. 반면 국내 쪽 인터뷰이들은 횡설수설하는 느낌입니다. 정작 2부에 나온 의사선생님의 인터뷰가 자칭 교수들의 인터뷰보다 와닿더군요. 


패션철학 연구자가 없다 보니, 패션철학 책의 역자가 나와서 '딴에' 인문학적 분위기를 내볼려고 몇 마디 거드는데, 어설펐습니다. 국내의 연구역량이 미진하고 의상학과 중심의 서양복식사 연구자들에게는, 패션사 전반을 독해할 통찰이 없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죠. 해외 로케부터 다양한 인터뷰, 사회심리학 실험까지 집어넣긴 했는데, 폐쇄회로의 내부를 겉도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리뷰를 쓰며 허심탄회한 소회를 밝히는 저로서도 책임이 있습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좀 더 제작과정에, 연락이라도 넣어보고 상황들도 물어보고 저 스스로 머리 속으로 그림도 그려봤어야 했는데요. 아쉽습니다. 외부사람으로서의 한계인 것이죠. 저는 다큐의 제작진은 아니니까요. 오늘 다큐에서 바지 이야기는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건지, 사례와 역사적 사실, 인터뷰가 그냥 덧붙여진 느낌이었습니다. 속상했어요. 


사회심리학으로 패션을 읽으려고 한 시도는 좋습니다. EBS는 유독 사회심리학을 꽤 좋아하는 듯 보여요. 일종의 제작상의 자기복제 코드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사회심리학의 설명력이 수다꺼리 충족 정도의 함의 밖에 못 준다는 점입니다. 패션소비를 둘러싼 힘의 움직임을 읽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빅데이터 전문가가 나와서 키워드만 나열하고 이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없으니, 사건의 이면을 읽는 시도 자체가 '통론'의 그럴싸함에 빠져버리고 말죠. 왜 우리에겐 깊은 다큐가 만들어질 수 없는 걸까요? 예전 <누들로드>같은 다큐는 과연 예산과 시간이 부족해서 만들지 못하는 걸까요? 


저는 우리가 좀 더 진솔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해외 로케를 가고 인터뷰를 딴다고 다큐가 만들어지는게 아니란 것이죠. 다큐의 대상이 되는 지식의 체계와 핵심을 참신하게 포착할 수 있는 프레임과 현장에 기초한 지식이 없어서입니다. 명품 다큐에 대한 욕심만 내면 뭐합니까? 그저 대학교수 몇 명 같다 붙여서 인터뷰하면 내용이 풍성해지나요? 다큐란 것도 인류학자의 관찰처럼, 특정 영역을 오랜동안 공부해온 이들, 현장에서 그들의 내밀함을 '드러낼'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는 이가 진정 취할 수 있는 형식이 아닐까요?. 우리에겐 속성다큐가 아닌, '숙성'된 다큐가 필요해요. 패션의 영역도 잘 만들 수 있는 프로듀서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습니다. 음식분야만 해도 이욱정 피디의 작품들은 많은 이들의 칭찬을 듣던데, 왜 의식주 중 제일 먼저인 패션은 항상 제작상의 난맥상만을 보이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