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시네마 패션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몰락하는 삶의 에티카

패션 큐레이터 2016. 5. 26. 17:54



한 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이라는 작품이에요. 패션의 역사와 미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제게는 꽤 큰 울림을 만들어낸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한땀한땀의 바느질이란 낮간지러운 카피가 싫었습니다. 예전 모 드라마에서 '한땀한땀 이탈리아 장인'이 만들었다는 반짝이 트레이닝복이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 한땀한땀이란 말을 너무 과도하게 소비하면서, 함부로 써온탓에 사실 사람들은 저 '한땀한땀'이란 말의 정확한 뜻을 잘 모르고 있지는 않나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옷에 대한 해석, 관련된 강의와 다양한 글을 쓰고 전시기획을 하면서 갈증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옷을 만드는 것을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것 때문이었죠. 옷을 실제로 제작하고 재단할 줄 알고, 봉제도 해봐야 눈 앞에 펼쳐지는 다양한 옷을 제대로 읽어냅니다. 이걸 공부하려고 참 돈을 많이 썼습니다. 모델리스트 선생님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기초를 익히며 옷을 만드는 즐거움을 익혔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이치에는 할머니의 뒤를 이어 미나미 양장점을 꾸려갑니다. 


할머니가 만들어놓은 옷본과 패턴을 이용해 드레스를 만들고, 전통의 재봉틀만을 이용하며, 할머니의 옷을 가진 사람들의 옷을 수선합니다. 다이마루 백화점에서 패션상품기획자로 일하는 남자의 '브랜드화' 권유애도 그녀는 항상 과거의 한 시점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실 할머니가 만드신 빈티지 풍의 옷은 현대적으로 조금만 바꿔주면 언제든 수요가 생길 만큼 색감과 디자인이 좋거든요.  일본에서 150년전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인 고베와 항구를 배경으로, 싱어 재봉틀이 있는 한 켠의 방, 그곳에서 추억을 재료삼아 만들어내는 옷들은 지금봐도 너무 매력적입니다.  원래 다이마루 백화점은 이런 협업을 잘 합니다. 디자이너들을 발굴해 유치하고 수익을 나누는 일이요. 2차 세계 대전 이후 디올과 다이마루의 협업 작품은 굉장히 멋졌어요. 


이 영화는 어찌보면 패션의 윤리학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패션이 근대화의 속도와 함께 산업이 되고 그렇게 태어났지만, 속도의 광폭함 속에서 옷이란 사물이 존엄을 잃고 그저 입고 소비되고 버려지는 사물이 되고 마는 것. 그 옷을 입고 살아가며 배우고 느끼고 행복했던 기억의 담지체가 아닌, 언제든 소비하고 갖다 버리고 처분할 수 있는 손 쉬운 사물. 그 사물과 함께 그 사물을 입고 있는 인간의 삶도 사물의 운명을 닳아갑니다.  할머니가 워낙 유명한 쿠튀리에이다 보니, 사실 손녀의 어깨는 무겁기만 합니다. 2대는 1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뛰어난 할머니를 가진 그녀의 부담은 크기만 하죠. 사실 영화 속 이야기만도 아닙니다.


1세대에서 2세대로 자기 자식에게 물려줄 때, 결국은 스타일의 변화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들을 풀어가야 하고, 이 과정에서 조상의 입김에서 벗어나 독립할 수 있는 내공과 시장력도 함께 가져야 하니까요. 그러다보니 자신만의 디자인을 갖기를 두려워하고 자기의 스타일로 선대의 것을 풀어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전통은 머물러 있는게 아니라, 앞을 향해 가는 일을 포함합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내는 이 순간이, 곧 전통이란 이름으로 다가오는 다양한 것들 중에서 발췌되어 한 순간으로 응고되는 것이니까요. 옷을 만들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녀를 배웅하던 사람들이 할머니가 만들어준 옷을 입고 도열해 있는 모습은 인상깊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혹은 사람과 함께 변해가며 인간을 안아주는 한 벌의 옷. 그런 옷의 존엄이 곧 우리 삶의 윤리를 빚는 토대가 되길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