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마케팅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각국의 요리들을 많이 먹어도 보고
좋은 곳이 있다면 빠지지 않고 가봤던 이력이 있습니다. 음식은 그 나라의 대표적인
미감을 드러내는 지표이고, 언제든 미각을 통해, 그 나라에 대한 전체적인 상을 그려보도록
도와주는 힘이 있죠. 추억의 절반이 맛이라는 책도 있었지만, 그만큼 추억이란 회로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 이 미각이란 게 촉발하는 힘이 크다는 뜻이겠지요
친구와 함께 들른 신사동의 프렌치 레스토랑 파씨오네, 예전부터 한번
들러야지 했는데 늦게서야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파씨오네의 이방원 셰프는 한국
의 스타급 쉐프 중 한명이시죠. 40대 쉐프의 기수입니다만 한국에서 오랜동안 경력을 쌓고
늦게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프랑스 요리를 배웠습니다. 제가 파씨오네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메뉴가 그날 공수한 신선한 재료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고, 점심과 저녁 오로지 정찬만 한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초점이 정찬에 맞춰져 있어서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때 좋다는 점이죠.
사진 속 고구마 벨루테도 프랑스의 전형적인 소스인 벨루테를 고구마와 베이컨으로
살짝 변형시켜 만든 요리입니다. 정찬에 들어가기 전, 입맛을 돋우기에 좋아요.
식전 빵과 버터, 좋은 레스토랑의 특징은 식재료의 신선함이 우선 아닐까 생각합니다.
프랑스 요리는 시각적으로 매우 아름답지만, 결국 프랑스 요리의 끝도 재료의 성실성에 있으니까요
양파 그라탕과 에스카르고, 달팽이 요리가 함께 나옵니다.
에스카르고가 작은 접시에 담겨 나옵니다. 버터와 허브로
조리를 해서 존득한 느낌의 에스카르고에 깔끔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배를 절임한 요리와 푸아그라가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푸아그라
가 입에 녹듯 너무 부드러워서 이 날 정찬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군요.
이건 돼지감자로 만든 요리고요. 개인적으로 돼지감자 요리를
어떻게 할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노란색 해바라기 꽃을 닮은 돼지감자
일명 뚱딴지라고 부르죠. 그만큼 감자의 형상이 정해진 바 없이 다양한 형태로 되어
있어서인데요. 최근엔 천연인슐린이 이 돼지감자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해서 당뇨를 앓는
분들에게는 자주 선호되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꿀에 오랜동안 숙성시킨 배를 먹는
식감과 맛이 제 입맛에 맞더라구요. 개인적으로 단순한 레시피겠지만 한번
익혀보고 싶은 소스의 맛이었고요. 어떻게 소스에 재는지 궁금했어요.
해물 모듬 요리였는데요. 능성어와 새우, 가재살 발린 것들이
나왔어요. 많은 분들이 능성어를 제주에서도 요즘은 희귀해진 다금바리의
대용으로 알고 계신 분이 있던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능성어 자체도 좋은 생선이에요
양고기 스테이크가 메인 요리로 나왔고요. 제가 뉴질랜드에 살면서
양고기를 참 많이 먹었어요.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양고기에 대해 냄새가 많이
난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데요. 선도 좋은 양고기 스테이크는 어정쩡한 비프 보다 훨씬
좋습니다. 육즙 상태도 좋고, 무엇보다 와인을 증류해 사용한 소스가 좋습니다.
이곳 후기에서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던 디저트, 바로 밀푀유입니다.
천 개의 잎사귀란 뜻에 걸맞게, 저는 주름진 옷이 아름답듯, 겹겹히 쌓인
페스트리를 보면 참 기분이 행복합니다. 여기에 요거트 아이스크림이 함께 나오고요
오전과 오후, 5잔의 커피를 들이킨지라, 이 날은 민트 차와 함께
밀푀튜를 먹었습니다. 하루 종일 원고 쓰다가 친구를 만나러 나가서인지
행복하게 밥을 먹는 건 좋은데 약간 졸렸나봐요. 민트티의 상큼한 향과 요거트
아이스크림이 의외로 잘 맞네요.
친구가 뉴욕에 출장 가기 전,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인 조말론의 향초와
크리스마스 선인장을 선물로 줬어요. 크리스마스 전후로 연분홍 빛의 꽃을 피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죠. 무엇보다 선인장이지만 줄기가 날카롭지 않아 좋습니다. 글을 쓰면서
친구가 준 향을 피웠어요. 그레이프프룻향이 방안 가득 퍼집니다. 제 글에도 좋은 향이 나면 좋겠어요.
2009년 <하하미술관> 이후로 거의 4년만에 미술 에세이 단행본을 냅니다.
에디터가 열심히 교정 중입니다. 따스한 내용도 담았지만, 시대에 대해 냉철한 감각을
요구하는 글도 실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얼마나 날것의 감성을 유지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말했고요. 항상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으로 제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정서를 이야기하는 게 참 좋
아요.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도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곧 나오겠네요. 여러분의 큰 사랑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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