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Travel/해를 등지고 놀다

비오는 북경-798에서 보낸 한철

패션 큐레이터 2013. 9. 24. 13:10


이번 추석연휴에 맞추어 북경에 다녀왔습니다. 친숙한 곳이었지만

여행이란 건 신기하게도 이전에 가진 모든 기억들을 포맷하는 강력한 장치

인듯 싶게, 모든게 또 새롭고 즐겁습니다. 798 다산쯔에 다녀왔습니다. 



북경여행하면 이곳을 빼놓지 않고 하다보니 

많은 분들에게 친숙한 곳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곳을 

제대로 깊게 보고 가는 분들은 의외로 적은 것 같습니다. 사실 

이곳을 단순하게 군수공장을 개조해 예술단지로 만든 곳 정도로 이해하기엔

중국현대미술의 프론티어로서, 여전히 입김이 센 곳이기에 저같은 컬렉터들에겐 항상 

쉽지 않게 스튜디오를 다니며 작가들을 만나서 의견을 나눠야 합니다. 



2006년 미술시장이 활황이던 시절, 저도 자칭 그때 돈을 좀 만졌습니다.

미술시장에 불던 시절이죠. 중국작가들 작품을 3천만원 주고 사면 3달 후에 뒤에 0이 

하나 더 붙던 시절입니다. 그때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을 제외하곤 후회를 꽤 많이 했던게 

이런 광풍들이 오히려 렌트비가 저렴한 군수공장을 중심으로 몰려든 신인 작가들이며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아우라로 만든 특정 영역의 값을 천정부지로 높일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예술가들은 자본가의 덫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죠.



이미 다산쯔도 그런 경향을 농후하게 보이고 있고요. 

정작 작가들의 레지던시보다, 커피숍과 일반 소비재용품점이

많아지면 그렇게 되더라구요. 전조같은 것이죠. 베이징의 소호라고 

하지만 정작 뉴욕의 소호 거리도 대형 갤러리 몇 군데를 빼놓으면 독립적인

작업을 보이던 공간들은 지가를 못이겨 벗어나고 말았던게 지금까지의 답습이니까요.



추석 연휴동안 떠난 북경여행, 아쉽게 3일 내내 비가 왔습니다.

우중산책을 할 수 있어 좋았기도 했고, 매연이 가라앉은 침착한 도시의 

실루엣을 조금씩 그 위로 걸어가는 마음이 즐거웠어요. 



우리는 항상 뭐가 뜬다 하면 그때, 그 흐름을 이용해 돈을 벌 생각으로 

이래저래 예술품에서 각종 펀드에 이르기까지 손을 댑니다. 그러나 정작 돈을 

번 이들은 그 분야가 뜨기 전, 선점한 사람들이죠. 저도 미술시장의 광풍이 불기 전 제가

컬렉팅 해놓은 그림으로 돈을 번 것이지, 그때 자칭 컨설턴트니 하는 자들의 조언을 듣고 한 것이

아닙니다. 뒤집어 말하면 어떤 대세의 흐름 속에서 견고하게 자본을 얻고 싶다면, 차라리

깊이있게 취미생활을 즐기며, 미술을 돈이 아닌, 내 생의 행복을 위한 부분으로

만들고 그것이 운좋게 대세가 되는 걸 기다리는 편이 오히려 낫습니다. 



저로서는 최근 들어 중국의 현대패션에 대해 공부하면서 패션시장으로서의 

중국의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배운다기 보다, 저 스스로 확인하고

이미 중국에서 자리를 잡은 디렉터들을 만나거나, 패션 사업으로 경험을 체득한 이들의 말을 

듣고 있죠. 저는 대학교수를 불러다가 자문을 듣는답시고, 죽은 지식을 듣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들의 말은 실제의 현장과 유리되어 있고 도움도 안되요.



중국현대미술을 한창 공부할 때, 정말 중국의 근대사를 열심히 

공부했던 적이 있습니다. 역사에서 유리된 미술작품이 없으니 하는 말이죠

패션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현대란 시간성을 인식의 틀로 들이대도, 결국 변하지 않는

그들만의 색감이 있거든요. 이걸 알아야 소비자들의 열망을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기가 어려워서 그런거죠.



추석 연휴동안 길고 길었던 중국 여행의 첫날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다산쯔에서 보낸 한철, 작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의 향과 중국 현대미술의 자장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군수공장에서 현대 예술의 핵심부로 변환한 이곳 

다산쯔, 공간이란 이렇게 그 기억을 지우기보다, 예술의 옷을 입힘으로써 더욱 강력하고 의미있는

곳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사람들만 끌어모은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