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칼더를 만나는 시간
리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알렉산더 칼더 전에 다녀왔습니다. 알렉산더 칼더는 흔히 미술사에서 움직이는 조각, 모빌을 처음으로 만든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모빌은 현대조각사에서 혁신이었습니다. 역사는 항상 첫번째로 범주를 만든 이들을 기록하합니다. 그는 미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의 주변부에서 항상 일상처럼 벌어지는 예술의 세계에 자연스레 젖어들었습니다. 학부에선 공학을 전공했고 뉴욕의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공부 했지만 1926년 7월 파리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예술작업에 들어가게 되죠.
저로서는 이번 전시에서 그가 디자인한 다양한 주얼리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특히 그가 주얼리를 선보였던 50년대는 뉴욕에서는 미국만의 색다른 디자인의 주얼리가 한참 나오던 시절이었거든요. 그의 디자인 작품들과 이외의 작품들 또한 디지털 화면으로 큼직하게 볼 수 있어 제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르셀 뒤샹과 알렉산더 칼더 칼더는 파리에서 마르셀 뒤샹과 페르낭 레제와 같은 예술가들과 교류합니다. 특히 뒤샹은 칼더의 움직이는 조각에 모빌(Mobile)이라는 이름을 부여해주었죠. 불어로 모빌은 움직이는 것이란 뜻과, 동기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작품의 모티브란 뜻이 되겠죠. 그러니 움직이는 것 자체에 의미성을 담보하고 있음을 이미 뒤샹은 간파한 것이겠죠. 칼더는 뒤샹으로 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독특한 위트, 레디메이드 오브제, 우연성을 의도한 작품 전개 방식등을 그를 통해 배우게 되죠. 한 예술가의 성장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영향이 함께 배어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군들 홀로인 섬이 아니니까요.
철사의 왕, 시대를 구부리다 그가 초기부터 움직이는 모빌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철사로 모든 일상의 사물을 귀신처럼 만들어낸다고 해서 당시 그를 둘러싼 파리의 작가들은 그를 철사의 왕(King of Wire)라고 불렀다지요. 뒤샹과 더불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작가로는 페르낭 레제가 있습니다. 레제는 1923년, 1년여에 걸쳐 독특한 전위 영화 한 편을 연출합니다. 당시 아방가르드 예술가 집단에서 그 이름이 높던 레제답게, 레제가 만들었던 작품 제목도 독특합니다. <기계적 발레>란 작품인데요. 이것은 영화 속 서사가 없이 즉 시나리오를 통한 촬영이 아닌 일상의 사물이 움직이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은 것입니다. 이런 일상적 사물의 모습을 인간의 발레양식에 비유한 것일 테구요. 레제는 이 작품을 통해 일상의 물건이 가진 조형적 가능성을 새롭게 풀어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사물을 주인공으로한 애니메이션을 생각해보세요.
인간의 만남, 떨림이 중요하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는 "생명을 지니고 있은 낯선 창조물"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지요. 여기에는 아마도 칼더가 자신의 조형작품을 빛을 통해 재구성하는 능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그는 스스로를 조명 엔지니어라 부르며 전시장 조명과 그림자 연출에 관여를 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방식입니다.
칼더는 사물이 서로 어울리는 상황, 이질적인 것이 서로 맞물리고 어울리며 관계를 맺기 위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한 작가입니다. 그는 모빌을 만들기 전에, 사물들의 균형을 잡기 위해, 중심이 되는 지점을 찾기 위해 수도 없이 실로 매달아서 딱 한개의 중심점을 찾으려 노력을 했다네요. 저는 이 말이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의 관계도 그렇지요. 정말 사람과 사람이 만나 그 중심의 힘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지점은 분명 있습니다. 그것을 찾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해야 하잖아요.
예술을 구성하는 요소들 수학에서 크기와 방향을 표현하는 화살표를 벡터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고하고 활동하는 일들의 크기와 방향성을 의미합니다. 칼더는 1932년 자신의 글 <예술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How Can Art be Realized>에서 자신의 예술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부피와 움직임, 공간, 덩어리, 벡터를 들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 요소들이 우연하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서로를 껴안고, 변화해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요소라고 믿는다는 점이죠.
결국 예술을 구현하는 각각의 요소들이 일시적인 순간의 매력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며 빚어내는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저는 여기에 큰 감동을 받습니다. 지속적인 관계, 그것을 통한 변화의 힘보다 그저 일시적이고 한번의 만남으로 모든 걸 판단하거나, 그저 이용만 해먹으려고 드는 이 세상에, 그의 움직이는 조각은, 인간의 움직임이 어떤 방향성을 띠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사랑의 방향도 그래야겠죠. 대중문화에선 항상 사랑에 대한 신화를 만듭니다. 어떤것이 당연하다라는 식의 사유 속엔 거짓 희망과 방법론만 가득합니다. 연애를 글로 배우는 세대, 특정 성에 대해 편견의 양만 늘면서도 자신들은 진보적이라고 믿고 있는 남/녀는 그렇게 또 늘어납니다. 누군가를 만나, 자신의 내부속에 결합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는 서툴기만 합니다. 다양한 빛깔이 어떻게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이들에게 칼더의 작품을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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