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부터 인사동에 나섰습니다. 오랜만에 밀린 전시를 봤죠
지난 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알폰스 무하의 전시를 보고난 후
다시 한번 우기의 시간을 전시와 공연을 통해 버텨보자 마음먹었습니다. 인사동으로 나선
날도 회색빛 구름이 잔뜩 층으로 걸려, 언제든 굵은 물방울로 변할 것 같던 어느 날.
관훈미술관을 비롯해 사진전문 갤러리에 들러 밀어두었던 전시리뷰를
생각하고, 인사아트센터에 갔습니다. 환절기라 그런지, 전시도 눈에 띠는 게 별로
없었는데요. 그 중에서 딱 하나 '이건 한번 봐야지' 했던 전시가 했습니다. 조각가 김택기
선생님의 전시였습니다. 2013년 광복절을 맞아, 독도 프로젝트를 기획하던 작가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뜻하지 않게 한국의 로봇태권브이가 일본의 마징가 제트의 표절이기에, 정치적으로 급조된
행사란 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여기에 <로봇태권브이, 독도에 서다>란 프로젝트 명도 일본의 <건담, 대지에서다>
를 표절한 것이다란 말까지 나왔지요. 독도에 대해선 워낙 국내의 여론이 뜨겁고 최근들어 일본의 정치권이
보여주는 후안무치의 행태를 생각하면, 독도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넣거나 혹은 사용하는 문제가
얼마나 쉽지 않은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캐릭터를 뭘 쓰자 하는 문제로도 '둘리'를 쓰자
'뽀로로'를 쓰자 다양한 의견이 나오죠. 어떤 캐릭터를 쓰던 쓴 소리를 들을 겁니다.
저는 그냥 조각가 김택기 선생님의 작업만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전시회에 놓여진 작품들을 보고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쯤을 할 수 있을테니까요. 강철 튜브를 소재로 이용해 빚어내는 로봇태권브이는
기본적으로 상당히 낭만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연주하는 로봇, 지휘하는 로봇, 때에 따라선
트롬본을 불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 로봇태권브이는 어린시절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사실 로봇
태권브이를 차용해 그림을 그리는 많은 팝아티스트들이 있습니다. 인간형 로봇인 태권브이를 처음 만든 창작가
김청기 감독도 마징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했다고 하지요. 표절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합니다. 70년대 아이들의 아이콘을 그냥 추억의 한 일환으로만 남겨야 하는 것인지
혹은 또 다른 답은 있는 것인지. 그런데 자칭 그 답을 내놓는 정치성향 강한 이들의
답도 제가 보기엔 호불호가 갈리는 것들이 많던데요. 이래저리 힘드네요.
중요한 것은 로봇이란 소재를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맥락에
놓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경단의 일부로, 혹은 대적할 자가 없는
힘의 상징이 아닌, 평화의 상징으로 맥락을 바꿔볼수도 있을텐데요. 그래서인지
저는 음악을 연주하는 로봇태권브이가 그리 싫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작가의 순수한
의지는 현실적으로 일본과 대치하고 있는 '독도'란 땅을 둘러싼 정서에는 너무 나약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스스로도 독도를 둘러싼 일본의 망언을 들으면
일단 주관적인 감정부터 가슴 속에서 튀어나오니까요.
로봇들은 하나같이 산뜻한 크롬강 소재로 되어 있어서 보기에는
시원한 느낌, 철이 가진 의외의 물성, 따스함이 함께 곁들여 있습니다. 제가
김택기의 작품에서 느끼는 힘의 원천은 무엇보다 음악이라는 소재를 조각에 결합시켰
다는 점일 겁니다. 음악은 곳 목소리입니다. 일본과 한국 양국이 독도를 둘러싼 문제에 있어서
조금도 화해화 화합의 길로 갈 수 있는 선율을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염원을
담은 작품으로 그냥 읽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로봇태권브이가 마징가
가 표절이란 문제, 이 문제도 되집어 뿌리를 향해 렌즈를 들이대면 우리의
많은 부분이 일본이란 타자를 극복하기 위한 근대화의 일면이 분명
자리한다는 점이죠. 우리의 삶 전체를 봐야 할 문제입니다.
철로 만든 첼로에선, 어떤 현의 선율을 낼까요.
작가는 분명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가
함께 작곡하고 만들어야 할 노래일 것입니다. 군국주의의 쓴 뿌리를 벗어버리지 못한 일본.
그 속에서 미해결로 남아있는 저 지긋지긋한 문제들을 언제쯤, 우리는 해결할 수 있을까요? 어느 쪽도
명쾌한 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답답한 마음이 한켠에 가득합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으로 용해된다"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기억합니다.
지금 우리가 선연하고 열띠게 싸우는 이 모든 것들도 어느 때인가 녹아 내리는
날이 오겠죠. 비가 그친 오후입니다. 제 피아노가 그리운 하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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