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부산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KBS 아침뉴스 타임과
인터뷰를 하고, 청담동 사거리를 걸었습니다. 매달 세번째 월요일이 되면
청담동에 있는 갤러리 두에서 토크 갤러리 프로그램을 진행했죠. 패션의 인문학
강의를 했습니다. 패션이란 주제를 다루지만, 매번 내용과 강조점은 다릅니다. 제 강의는
초기에는 복식사 위주였지만 요즘은 사회사와 장식미술, 신체담론, 고전강독과
같은 다양한 내용들이 결합되고 있고, 여기에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링
보석의 역사까지 곁들여져서 내용이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갤러리에서 열리는 작은 인문학 공부모임이지만 우연한 기회에
페이스북으로 알게 된 대표님의 부탁으로 이 프로그램에 동참하게 되었고
오늘 마지막 강의를 마쳤습니다. 남자분들도 많아서 저로서는 아주 기분이 좋았죠.
남자분들이 강의를 듣고 나서, 여성복 위주로 편집된 강의 내용에 대해 섭섭함을 표시하는
분들이 많아서, 최근에는 남성복에 대한 내용들, 역사적인 사실들을 포함하기도 했죠.
저는 패션을, 유경희 선생님께서는 미술을, 영화감독이자 교수님인
김홍준 선생님께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인문학이 푸대접을 받고, 대학에선 과정이 존폐의 위기를 맞고 있다지만
사실 밖으로 나오면 사정은 다릅니다. 저는 올 한해 강의가 가득차있고, 만나야 할
독자들과 대상들도 다양한 계층을 아우릅니다. 저로서는 신나고 행복하지만 한편으론 생각
해볼 문제들이 있습니다. 저는 강의 할 때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늘어
놓습니다. 교양과 지식을 쌓는 것, 물론 공통교양을 공부한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항상 인문학은
당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생각의 틀과 비판을 만들어가는 것에
그 중심을 둔다는 것입니다. 패션도 분명 그런 관점에서 읽을 수 있고요.
요즘 패션 큐레이션이란 단어가 인기인 모양입니다. 제가 6년의 세월을
고생해서 그래도 사회 속에서 조금씩 정착되는 이 단어를 함부로 쓰는 집단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패션계입니다. 패션 큐레이션은 신종 직업도 아닐 뿐더러, 학문적
연구와 학예가 기본이 되어야 하는 지난하고 고단한 일입니다. 패스트 패션 매장가서 옷 맞춰
입도록 도와주는 도우미가 아니란 말이지요. 말끝마다 패션 큐레이터란 말을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이는
일도 있더군요. 패션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합네, 또 어떤 기업에선 패션 큐레이터 1기생을 뽑네 합니다. 솔직히
이 직업이 무슨 돈을 잘 버는 일도 아니고, 패션이란 대상을, 사회적으로 고민하고 박물관과 미술의 영역과
눈을 통해 해석하고 풀어내는 일을 하느라 고단합니다. 패션 큐레이터란 단어가 좀 있어 보이나
봅니다. 직군의 이름을 함부로 차용하고 쓰는 것 좋습니다. 다만 여기에 해당하는 책무를
다해주기 바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한 사회 내에서 신종 직군을 만들고 그것을
수요로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큐레이션이란 용어의 의미가
편집샵 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의 의미로 쓰는 분이 많더군요. 스타일리스트
분들이 전시기획을 하셔도 좋고, 나은 시각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다만 학예기능은
쑥 빼놓고, 미술관을 성소로 생각하는 큐레이터들이,오랜 준비 끝에 올려놓는 전시와 그 내면의
준비과정은 쏙 빼고 패션잡지 화보 찍듯, 작업해서 보여주는게 큐레이션이라고 알고 계시다면, 박봉에도
신념 하나만 가지고 버티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함부로 이 단어를 쓰지 않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한편
그만큼 제가 한국사회에서 만들어내고 싶던 한 직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있다는 반증이니 감사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직업군으로서 존재론과 의의를 갖는 일이어야 하고, 그것의 테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KBS 뉴스와의 인터뷰를 하는데, 이 분도 패션
큐레이터란 직업이 기존의 스타일리스트와 같은 것인줄 알고 계시더라구요. 이런
혼란을 넘어, 스타일리스트나 큐레이터나 각자의 영역에서 경합하고 때론
연합하면서 멋지게 패션계의 무대를 넓혀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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