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Fashion/패션 필로소피아

슈콤마보니 10주년 전시회-구두는 디자이너와 함께 늙는다

패션 큐레이터 2013. 4. 3. 18:17


서을 패션위크가 열리던 기간 동안, 여의도 IFC 몰에 있는 

콘래드 서울 호텔의 펜트하우스에서 슈즈 브랜드 슈콤마보니의 10주년

행사가 있어 들렀다. 매번 초대를 받고 제대로 가보질 못해, 이번엔 작심을 했다. 

나는 디자이너들을 발굴하고, 그들과 전시를 연다. 적어도 한국에서 패션 큐레이션이란 

영역은 철저하게 학문적인 학예의 세계만을 고집할 수 없다. 좋은 디자이너가 있으면 추천도 하고 

발굴해서 대기업에 연계시켜주기도 했다. 그렇게 상호간의 발전이 있으면 좋은 것일테니.



디자이너가 보여준 10여년간의 활동은 놀랍다. 사실 수제화 브랜드로 

성장한 디자이너들의 이름엔, 항상 이보현이란 슈콤마보니의 수장의 이름은 

제일 먼저 올라간다. 인정한다. 많은 여자들은 여전히 그녀가 만든 구두에 매혹된다. 



국내에서도 제대로 된 슈즈 전시를 한번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터라

국내의 구두 디자이너들과는 왕성하게 교류도 하고, 성수동 구두거리도 자주 나간다.

기술에 비해 브랜드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고, 기술을 빙자한 장인타령을 하는 자들도 많다. 

칭찬만 한다고 한 사회내부의 산업이 탄력이 붙거나 흥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고쳐야 

할 것은 과감하게 도려내야 하고, 고쳐야 한다. 성수동 구두거리에 대한 행정상

의 문제는 차제에 제대로 논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국내의 수제화 브랜드

와 디자이너들에 대해 이야기 해본다. 좁은 시장, 한정된 멤버들.

그 속에서도 슈콤마보니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해왔다. 



페북에서도 나는 그녀의 작업을 종종 본다. 해외출장이 잦아졌는지

작은 소회들이 올라오곤 한다. 디자이너들이 한번의 컬렉션에 들이는 에너지를

잘 알기에, 언제 어디서건 그들의 위로가 되어주려고 노력해왔다. 



콜라보레이션 작업들을 모아놓은 테이블이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잦은 협업은 결국 디자이너의 힘을 뺀다는 것. 슈콤마보니는 훌륭한 브랜드지만

적어도 디자이너로서 이보현을 가능하게 하고, 적어도 오랜 세월을 이끌어가려면, 어줍짢은 

협업이나 공동 마케팅은 다소 지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디자이너들 중엔 자신의 

시그너처, 개인의 농밀한 스타일과 문체를 확립한 디자이너가 드물다. 


패션은 계절별로 시장과 싸워야 하고 언제든 부침이 심하니 더더욱 

예술계의 논리를 들이밀긴 쉽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속성을

확고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한 노력만이 오랜 세월의 시금석을 버티는 힘이된다.



패션이 팝아트와 손을 잡는 것도 뭐라 할 수는 없다. 일종의 대세이기도 하고

그런데 팝아트는 소비주의 사회에서 생존전략으로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파는 걸 전략으로 삼아왔다. 그만큼 연예인의 이미지처럼, 빨리 소비되고 시장에서 사라진다.

자칭 예술가라고, 팝아티스트라 불리는 이들과 협업을 할 때는 철저하게 시장 내부의 

역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기간 이익에만 치중하니, 항상 디자이너의 작품

보다 협업하는 자의 작품이, 디자이너의 이름을 단 구두로 나온다. 이것은

스스로 자신의 영역을 자기잠식화 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콜라보레이션이란 이름으로 펼쳐지는 것들을 보면 기실, 그 속에서 

디자이너는 시장과 경쟁하며 자신을 달구고, 담금질 할 기회는 스스로 놓치고

그렇게 약해져간다. 철저하게 자신만의 디자인, 실루엣, 소재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옳다.



프레스들 불러다 한보따리씩 좋은 선물만 준다고 해결될 게 아니다. 

 10주년을 찬연하게 기념하려는 전시였다면, 더욱 섬세하게 디자인해야 했다.

호텔에서도 아트페어를 한다. 오히려 호텔이란 공간이 그림을 걸고 장식하는 일종의 

교본을 보여줄 수 있기에 외국에선 이런 기회가 더욱 소비자들의 입맛에 부합을 했다. 그런데 

구두를 호텔에서 하니, 나로서는 꼼꼼하게 구두 하나하나 살펴볼 마음이 없어졌다. 

지나온 자신의 디자인 구력, 디자이너로서의 삶과 정신을 보여주고 싶다면

작품을 제외한 배경은 너무 화려하면 안된다. 오히려 빈천함을 

권하고 싶다. 이번 슈콤마보니의 실수라고 지적해둔다.


1920년대 샤넬과 대립각을 세웠던 디자이너 엘자 스키아파렐리가

새롭게 재런칭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샤넬이나 그녀아 새로운 시대의 여성상

과 시대의 이미지를 만들었기에 아이콘이 되고, 시간의 시금석을 통과한 것이다. 그렇게

시대의 부름에 따라 새로 부활하기도 한다. 우리가 오래 견디는 브랜드를 가지려면

이런 정신을 유지할 수 밖에 없고, 상품기획 전반의 전략도 이 철학을 견지

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같은 국내의 판매 시스템에서는 디자이너만

단물이 빨리고 교체되는 것 이외에는 딱히 할말이 없어 보인다.

디자이너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늙는다.

슈콤마보니의 구두가 오랜동안 기억되길 바람하며.